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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코로나 백신 부작용때 적극적 피해 보상 약속 지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백신 이상 반응

지난 11일 서울 동대문구체육관 예방접종 센터에서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 모니터링을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 백신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인과성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엔 너그럽게 보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서울 동대문구체육관 예방접종 센터에서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 모니터링을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 백신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인과성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엔 너그럽게 보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접종자 수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9월 말까지 2500만 명 이상이 더 접종을 받아야 한다.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지금은 접종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18세 미만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접종을 받아야 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우리 국민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접종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백신 이상 반응을 잘 관리해야 한다. 접종률이 높아져야 우리 사회가 집단면역에 가까이 갈 수 있고 국민을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보호할 수 있다.

지난해 말 백신 부작용 때 적극적 피해 보상 약속했으나 #실제론 백신 이상 반응 인과성 평가 기준 더 엄격해지며 #급성 마비, 뇌염 등으로 고통받는 접종자 지원 못 받아 #부작용 인과성 판정이 엄격하더라도 보상은 너그러워야

지난해 말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이상 반응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기치 않은 백신 부작용이 발생하면 피해보상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짧은 기간에 개발되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르는 새로운 백신을 국민이 너무 불안해하지 않고 맞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같은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코로나19 백신에서 이상 반응의 인과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기존 백신과 비교하면 더 엄격해졌다. 기존에는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과 기저 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의 가능성이 비슷한 경우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 백신 부작용일 가능성이 더 높아야만 인과성을 인정한다. 코로나19 백신처럼 새로 개발된 백신에서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르니 당연히 인과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판정 기준을 정반대로 바꾼 것이다.

백신 이상 반응자 0.5%만 지원받아

정부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과성 판정 기준을 만든 것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지난 5월 슬그머니 다른 예방 접종의 부작용 판정 기준을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판정 기준에 맞춰 변경했다. 국제적인 백신 부작용 판정 기준을 사용한다는 질병관리청의 설명도 정확히 말하면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납득할만한 설명이나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불합리하게 바뀐 기준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기존에 학술적으로 인과성이 입증된 백신 부작용만 인정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상 인과성이 인정되는 심각한 부작용은 아나필락시스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희귀 혈전증뿐이다. 그 외에는 통증이나 발열·두드러기 같은 가벼운 이상 반응만 부작용으로 인정하고 있다. 정작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을 받아야 치료비 지원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급성 마비, 뇌염, 경련, 혈소판 감소증과 같은 심각한 이상 반응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은 지원을 못 받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처럼 새로 개발된 백신에서는 어떤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의 희귀 혈전증과 화이자 백신의 심근염이 새로 발견된 가능한 부작용의 예다. 선진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심각한 이상 반응이 발생하면 백신과의 인과성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인과성을 밝히면 그때 가서 부작용으로 인정하겠다는 안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을 경험한 국민은 다른 나라에서 같은 부작용의 인과성이 입증되기까지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백신 이상 반응이 발생하면 인과성이 부족해도 치료비를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해 놓고 실제 지원 대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난 5일까지 심각한 백신 이상 반응을 경험한 1315명 중 진료비 지원을 받은 사람은 7명에 불과하다. 치료비를 지원해준다는 정부 말을 믿고 있다가 지원을 못 받는 국민의 원성은 자자하다. 일선 보건소 직원들은 국민 항의에 응대하느라 시달리고 있다. 지난 1년 반 가까이 쉴 틈 없이 코로나19 방역에 매달려온 일선 방역 인력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다.

백신 이상 반응 신고 포기하기도

이처럼 제도가 있어도 정작 국민이 백신으로 인한 피해 보상이나 치료비 지원을 못 받는 이유는 질병관리청이 판정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일부 시·도에서 역학 조사를 거쳐 백신 부작용이라고 판정한 사례 14건 중 인과성을 인정받은 경우는 약 15%에 불과했으며 치료비 지원 대상으로 판정한 사례 6건 중 인정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백신 부작용을 인정받은 사례도 시·도와 질병관리청의 백신 이상 반응에 대한 판정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청은 엄격한 판정 기준을 고집하고 있다.

백신 부작용이 의심되어도 부작용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보니 현장에서는 백신 이상 반응 신고를 포기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어차피 인정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 의사들은 백신 이상 반응을 신고하지 않으려고 하고, 환자는 진료비 부담 때문에 확진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심각한 백신 이상 반응을 겪을 국민은 약 7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국민은 자신을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집단면역에 가까운 상태로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백신을 접종받는다. 우리 모두를 위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후 이상 반응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정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인과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백신 부작용의 인과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에 대해 과학적인 판정은 엄격하게 하더라도 보상과 지원을 위해 판정은 너그럽게 하는 것이 맞다.

엄격한 기준 강화로 인정받지 못하는 백신 이상 반응

#사례 1. 65세 남성 A씨는 화이자 백신 접종 이틀 후부터 고열과 두통이 있다가 접종 4일째 경련과 함께 의식이 저하되어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1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뇌출혈과 뇌 손상을 입었지만 이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며 경련이 있었던 적도 없었다. 코로나19 백신이 직접 경련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근거는 없지만, 백신 접종 후 생긴 고열이 오래전 교통사고로 인한 뇌 손상을 악화시켜 경련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A씨가 원래 가지고 있던 기저질환인 뇌 손상 때문에 오롯이 경련이 생겼을 수도 있다. 기저질환인 뇌 손상과 백신중 어느 것이 경련을 일으킨 원인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다.

이 사례는 기존 백신 이상 반응 인과성 판정 기준에 따르면 부작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상 반응이 백신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과 기저질환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비슷하면 인과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뀐 판정 기준으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이상 반응이 다른 이유보다 백신 접종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에만 부작용으로 인정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례 2. 55세 여성 B씨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7일 후 허벅지에 통증과 피멍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 혈관 조영 CT 검사에서 심부정맥혈전증이 발견되었다. 기저질환은 없었고 혈액 응고 검사 결과도 정상이었다. 혈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부정맥혈전증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지 않아 아직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에게서 백신 접종 후에 발생하는 심부정맥혈전증은 백신 부작용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발생 양상을 지속해서 감시해야 할 중대 이상 반응으로 분류하고 있다. 볼거리 백신 접종 후 부작용으로 심부정맥혈전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사례는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심부정맥혈전증이 발생한다는 근거가 아직 없기 때문에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물론 의학적 근거도 없이 부작용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외국은 부작용일 가능성이 있는 중대한 이상 반응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부작용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서 부작용으로 인정되면 그때 가서야 인과성을 인정하겠다고 한다.(※위의 두 사례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사례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