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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 14:36:53

Opinion :이철호 칼럼

“이준석은 불안하나 그가 가져올 변화가 기대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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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구·경북(TK)에서 이준석 후보(이하 경칭 생략)의 열대성 저기압이 초대형 태풍으로 발달한 변곡점은 지난달 20일 개그맨 강성범의 화교 발언이다. “아버지가 화교라는 소문에 이준석이 ‘아버지·어머니 다 대구 분’이라 해명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화교가 낫지 않나 싶었다.” 첫 반응은 “TK가 왜 화교보다 못하냐”며 지역 비하에 따른 분노였다. 하지만 물밑으론 전혀 다른 파문이 번져갔다. “준석이 고향이 서울 노원인 줄 알았는데, 아부지·어무이 둘 다 대구 출신이라 카네. 맞나?” TK의 지역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정치판 쓰나미 이준석과 윤희숙
일시적 바람을 넘는 시대적 흐름
말러는 제자의 곡을 듣고 말했다
“그래…젊으니까, 당신이 옳다”

나경원·주호영 두 후보가 지난달 26일부터 “이준석은 유승민계”라 공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일부 TK에 남아있는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계파 프레임이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TK 보수층 SNS에는 오래전의 여성 잡지 인터뷰가 돌아다녔다. “(제) 할아버지는 대구 세무서에서 평생 6급인가 7급 공무원으로 사셨다….” 여기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준석이 저그 할배도 대구 사람이라 카면 완전 우리 고향 핏줄이네.” TK의 지지율이 50% 가까이 치솟았다.

TK의 이런 선택은 내년 대선을 내다보는 전략적 계산이다. 태극기를 흔들며 ‘사기 탄핵’을 외쳤지만 선거 때마다 참패한 학습효과도 컸다. 이준석 역시 예비경선 1위 배경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 열망이라든지 당원들의 대선 승리 갈망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봅니다.” 여권 원로 유인태 전 의원의 분석도 날카롭다. “젊은 이준석 후보의 성공은 그동안 방송이나 매체에 나와서 상식에 근거한 얘기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에 민주당 내부에서 ‘대선 끝난 것 아니냐’는 위기감까지 돌고 있다.”

이준석이 지난 3일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도 TK의 분위기 반전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영리하게 두 가지 이야기를 보탰다. 우선 “그 엄격해진 (탄핵) 법리가 문재인 정부 등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며 TK의 분노를 무장해제 시켰다. “탄핵이 정당하다는 생각까지 대구·경북이 품어주셔야 윤석열 전 총장이 위축되지 않을 것이며 더 큰 덩어리에 합류할 것”이란 말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묻어야 한다는 설득이다. 윤 전 총장 입당의 걸림돌을 치우고 수도권 중도층까지 끌어당기는 묘수다.

이준석이 승세를 굳혔는데도 막판까지 나·주 후보를 독하게 압박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당 대표가 되더라도 수도권 의원들은 중도 보수가 많아 별 걱정 없을 것이다. 문제는 TK다. 지역 민심과 정통 보수를 내세워 언제든 30대 중반의 당 대표를 흔들 수 있다. 이번에 TK에서 크게 이겨두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당 대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보수 정치권에 이준석과 윤희숙 등 젊은 전략적 자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파들에 꽉 잡혀 꼼짝달싹도 못 하는 민주당 초선들과 대비된다. 이준석 카드는 당선 여부를 떠나 이미 경선 흥행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최근 팩트와 논리로 이재명 경기지사의 급소를 찌르는 윤 의원도 돋보인다.

그동안 정치판은 진영 논리로 갈리고, 의리냐 배신이냐로 치고받았다. 능력이나 콘텐트는 필요 없었다. 정파 논리만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이에 비해 이준석과 윤희숙은 중요 사안마다 상식적으로 접근하고 합리적 의견을 내놓는다. 자기만의 말과 글이 있다. 자유주의·시장 경제 등 신념과 논리도 분명하다. 앞으로 보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어느 때보다 정치판의 변동성이 커졌다. 이미 정부의 무능과 독선에 실망한 분노의 유증기가 꽉 차 있다. 민심은 SNS를 타고 광속으로 퍼진다.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순식간에 폭발한다. 오세훈은 LH 사태(3월 2일)-윤 검찰총장 사퇴(3월 4일) 이후 불과 한 달 동안 나경원-안철수-박영선을 차례로 꺾었다. 이준석 태풍도 보름 만에 한반도에 상륙했다. 자칫 한 방에 훅 갈지 모를 위기와 함께 새 정치 스타가 탄생할 기회가 넓어졌다.

경남 지역 한 야당 의원의 이야기다. “솔직히 정치 선수들 사이엔 이준석이 좀 불안한 게 사실이다. 고참 선배에게 던진 ‘호들갑’‘망상’ 같은 표현도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지역에 내려가면 기존 정치 문법과 정반대다. 오히려 할 말을 한다는 쪽이다. ‘이준석은 불안할지 몰라도 이준석이 가져올 변화를 더 기대한다’는 반응이 대세다. 한마디로 ‘디비삐자(뒤집어 버리자)’는 분위기다.”

가끔 음악도 정치에 참고가 된다. 19세기 말과 20세기의 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제자인 아널드 쇤베르크가 어느 날 난해한 표현주의 음악을 들고 나왔다. 새 음악은 대중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고 연주까지 거부당했다. 오직 말러만 곡이 끝나자 고개를 흔들면서도 이런 말을 남겼다. “그래… 젊으니까, 자네가 옳다.” 실제로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이준석 쓰나미가 대단하다. 한 번쯤 100년 전 말러의 명언(名言)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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