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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골 급물살 '죽음의 수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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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갯벌의 물길 역할을 하는 갯골은 물이 들고 날 때 늪이 되어 어른도 빠져나오기 힘들다. 최근 4명의 중.고생이 숨진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갯벌에서 피서객들이 2일 낮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강화=조용철 기자

2일 오후 1시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의 동막해수욕장.

1800만 평의 광활한 강화 남단 갯벌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 해수욕장은 1000여 명의 피서객으로 붐볐다. 유치원생 100여 명의 갯벌 체험교실이 열리는 옆에서 교회.기업.친목단체가 주최한 수련회에 참가한 피서객들이 조개.새우 등을 잡느라 물이 빠져 나간 갯벌은 활기에 넘쳤다. 여행사 등이 내건 'OO 갯벌체험단' 현수막 10여 개가 바람에 나부꼈다.

본격 피서철을 맞아 갯벌체험이 붐을 이루고 있다. 서해안 시.군은 관광수입 증대를 위해, 환경단체 등은 생태체험을 내세워 인적이 드물었던 해변을 체험 행사장으로 개발하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 곳은 58곳이지만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치면 300곳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갯벌에는 도시민이 잘 알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 H교회가 주관한 수련회에 참가한 중.고생 4명이 1일 강화도에서 숨진 것도 갯골의 위험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 우후죽순 갯벌체험=갯벌이 발달한 서해안 전체가 생태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강화도.영흥도.대부도.제부도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의 경우 주말에 하루 5000여 명, 충남 서천군의 장포리 갯벌은 2000여 명, 전북 부안군 변산면 모항 갯벌에는 500여 명이 게.조개.고둥 등을 잡으며 즐긴다. 갯벌체험 관광객이 늘자 강화군은 최근 화도면 여차리와 장화리에 각각 3층 규모의 강화갯벌센터를 건립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방치된 안전.생태계=초등학생 딸 두 명과 1일 동막 해수욕장을 찾은 이영주(48.서울 이촌동)씨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왔지만 물이 언제 들고 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피서객들은 동해안보다 수심이 얕은 서해안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화도 길상소방서 수상구조대 정의경 소방교는 "갯벌의 수로라 할 수 있는 갯골에서는 물이 들고 날 때면 어른도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위험하다"고 말했다. 갯골 비탈의 개흙이 물을 먹으면 미끄러워져 헤어나오려 할수록 오히려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물이 들고 날 때는 갯골이 늪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밀물과 썰물이 수면 위에서는 서서히 불어나거나 줄지만 물밑에서는 빠른 속도의 조류가 소용돌이쳐 순식간에 휘말린다.

더욱이 해변마다 갯벌의 특성이 달라 이를 모른 채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1일 사고가 난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 주민 주모(42.여)씨는 "사고가 난 해변은 갯골 물살이 워낙 세 동네사람도 좀처럼 접근하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 부근 갯벌은 잇따른 방조제 건설로 물의 흐름이 빨라졌다. 해경 강화파출소의 한 관계자는 "사설 수련원이나 단체 피서객들은 인파 많은 해수욕장을 피해 차를 타고 가다 한적한 바다가 나오면 바로 갯벌에 달려간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의 관리 소홀도 문제다. 사고가 난 장화리 해변의 경우 위험을 알리는 경고 문구 하나 없고, 대부분의 갯벌 체험장은 피서객에게 간조.만조의 시간을 알려주는 알림판조차 없다.

강화군 관계자는 "우후죽순 격으로 체험행사가 늘어나 해변을 뒤덮다시피 하지만 행정력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너무 많은 체험객이 몰려 갯벌이 굳어지는 등 생태계 파괴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평주 서산.태안 환경연합 사무국장은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갯벌체험이 오히려 갯벌을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정기환.정영진.김방현 기자<einbau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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