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넘게 일 시키고, 연장근무 시간 입력 못하게 하고…

중앙일보

입력 2021.06.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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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야간노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직원들이 ‘오징어 배가 뜬다’는 자조했겠나. 수출 역군으로 불렸던 봉제 노동자에서 디지털 노동자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장시간 저임금 노동은 변한 게 없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7년에 한 말이다. 당시 밤낮없이 사무실에 불을 밝히는 정보기술(IT) 업계의 현실을 오징어잡이 어선에 빗댔다.

서비스 출시 앞두고 휴무일 작업
동의 없이 임산부 시간외 근무
동료 평가제로 심적 스트레스도
“노사 대화로 성과시스템 개선을”

정부는 2018년 7월부터 원칙적으로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금지하는 제도를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나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등에 밀집한 IT 업계 종사자들의 근로 환경은 많이 달라졌다. 네이버·엔씨소프트·카카오 등에선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보수가 1억원을 넘어섰다. 겉으로만 봐선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하지만 직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물리적인 근무강도가 여전히 세다는 것도 불만의 이유로 꼽는다. 지난 3월 카카오 직원들은 사내 제보를 모아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청원서를 제출했다. 고용부는 카카오에 대한 근로감독을 진행한 뒤 여섯 개 항목에서 위반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초과 근무 외에도 임산부의 시간외 근무, 연장근무 시간의 미입력 강요 등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 근로자는 본인의 동의와 고용부 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으면 사용자가 야간이나 휴일 근무를 시킬 수 없다. 또 근로자가 야간이나 휴일에 연장근로를 하면 사용자는 시간외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네이버 노동조합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비즈·포레스트·튠 등 사내 독립기업(CIC) 세 곳의 조합원들이었다. 응답자의 10%는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 조사에 응한 조합원들은 긴급 장애 대응이나 서비스 출시 등을 이유로 임시 휴무일에 업무를 한 경우가 있었다고 답했다. 초과 근무를 하면서 사내 시스템에 근무시간을 입력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있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6개월 이내에서 일시적으로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할 수 있다. 이 경우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직원들 사이에선 조직문화와 인사평가 시스템 등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초 카카오에선 ‘동료 평가’ 제도가 논란이 됐다. 인사평가를 할 때 “○○○와 다시 함께 일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본인에게 알려준다. 카카오 직원들 사이에선 이런 식의 평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T 업계는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다. 밤을 새워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과중 노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노사가 대화를 통해 목표치의 합리적인 범위를 책정하는 등 성과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서비스와 사업 분야가 디지털이라고 해서 조직 운영 방식도 수평적이고 유연할 것이란 건 착시”라고 말했다. 그는 “네이버·카카오 모두 사업분야에선 21세기적 진화를 했지만 경영방식은 20세기 권위주의적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조직을 경영하는 구조와 시스템·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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