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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자’서 ‘피의자’로…불법도박에 몰락한 ‘135승 전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4월 7일 오후 문학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9년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말 삼성 선발투수 윤성환이 호수비를 선보인 중견수 김헌곤을 향해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2019년 4월 7일 오후 문학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9년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말 삼성 선발투수 윤성환이 호수비를 선보인 중견수 김헌곤을 향해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황태자. ‘삼성 왕조’ 주축으로 활약하며 135승을 기록한 베테랑 투수. 삼성 라이온즈 최다승과 KBO 통산 다승 8위 기록을 보유한 전설.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후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프랜차이즈 스타 윤성환(39) 전 선수에게 붙은 수식어들이다.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레전드’ 선수 중 하나로 꼽힐 만한 이력이다. 장원삼(롯데)·배영수(은퇴)·차우찬(LG) 등과 과거 ‘삼성 왕조’의 선발진을 구성한 주역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슈추적] 윤성환, 불법도박 혐의 입건…승부조작 의혹도

선수 시절 화려한 명예 속에서만 살아온 그에게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게 됐다. 바로 ‘불법도박 혐의’다. 2015년부터 꼬리표처럼 붙은 ‘도박’ 의혹은 결국 그를 불법도박과 피의자로 만들었다.

2일 대구경찰청 등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해 9월 대구시 달서구 한 카페에서 40대 남성으로부터 현금 5억원을 받아 불법 도박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윤씨는 지난 1일부터 이틀째 경찰 조사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2일 오전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윤씨가 지난해 프로야구 특정 경기에서 ‘고의로 볼넷을 내달라’는 의뢰를 받은 뒤 실제로 가담해 의뢰자로부터 대가를 받은 혐의도 수사 중이다. 야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8월 21일 인천에서 열린 SK(현 SSG) 대 삼성과의 경기에서 삼성 선발투수로 등판한 윤씨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의 불법도박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진행해 왔고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4조3에는 ‘선수·감독·코치·심판 및 경기단체의 임직원은 운동경기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불법도박 의혹 사실?…경찰, 구속영장 신청

윤씨는 지난 1일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불법도박과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이와 별개로 지난해 9월 지인에게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씨는 사기 혐의로 피소된 사실만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성환 전 삼성 라이온즈 선수. 일간스포츠

윤성환 전 삼성 라이온즈 선수. 일간스포츠

윤씨가 불법도박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 2015년 KBO리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프로야구 선수 상습 도박 사건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때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 투수로 활약하던 윤성환이 ‘레전드’에서 ‘피의자’로 전락하게 된 경위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당국과 윤씨의 주장이 서로 엇갈려서다. 하지만 그가 불법 도박을 했다는 의혹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제기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16일 ‘삼성의 30대 프랜차이즈 선수 A씨가 거액의 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A씨가 상습 도박으로 100억 원대 빚을 지고 있고, 조직폭력배들이 수시로 A씨를 찾아 빚 독촉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A씨는 윤성환이다.

이와 별개로 윤씨가 3억 원대 채무 문제 때문에 지인에게 지난해 9월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도 알려졌다. 지인에게 진 채무가 있다는 사실은 윤씨도 인정한 부분이다. 그러면서 순조롭게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윤씨는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채무가 있는 건 맞지만, 도박과는 무관하다. 조직 폭력배와 연루됐다는 건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정말 억울하다. 결백을 밝히고 싶다. 경찰이 조사하겠다고 부른 적도 없다. 경찰이 부르면 언제든 가겠다. 지금은 내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전했다.

윤성환 “채무는 맞지만 도박 의혹 사실 아냐” 

본인이 강하게 결백을 주장했지만 삼성에서의 선수 생활은 불명예스럽게 막을 내렸다. 삼성은 윤씨의 불법 도박 의혹이 불거진 당일 “윤성환을 자유계약선수(FA)로 방출한다”고 했다. 그가 팀에 기여한 공로라면 구단 영구결번까지 가능할 정도였지만 은퇴식조차 하지 못한 쓸쓸한 퇴장이었다.

2016년 4월 3일 오후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원정도박 관련 물의를 일으킨 삼성 윤성환과 안지만이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2016년 4월 3일 오후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원정도박 관련 물의를 일으킨 삼성 윤성환과 안지만이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윤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에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9월에 삼성 구단 관계자가 ‘우리는 윤성환 선수와 2021 시즌에 계약할 수 없다. 은퇴하거나 FA로 풀어주는 등 선수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며 “정말 서운했다. 나는 삼성에서만 뛰었고,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은퇴는 삼성에서 하고 싶었다. 나는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를 구단이 예우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윤씨에 대한 도박 의혹은 2015년에도 나왔다. 윤씨는 2015년 10월 마카오 해외 원정 도박과 국내 인터넷 도박 혐의(상습도박)로 그해 열린 한국시리즈를 뛰지 못했다. 긴 수사 끝에 2016년 7월 참고인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돼 사건이 일단락됐다. 한 달 뒤 검찰은 해외 원정 도박에 대해서는 참고인 중지 처분을, 국내 인터넷 도박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때부터 윤씨에게는 ‘도박 의혹’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야구계는 숨죽이며 윤성환에 관한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윤씨의 불법 도박 의혹이 국내 야구계 전반에 걸친 불법 도박이나 승부조작 사건 수사로 번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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