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조국 사태’와 관련, “민주당이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했다. 민주당 대표가 조국 사태에 사과한 건 2019년 10월 이해찬 대표가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고 했던 것에 이어 두 번째다.
‘국민소통ㆍ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라는 제목이 달린 이날 기자회견은 원래 지난달 2일 대표로 선출 뒤 송 대표가 이어온 민심 경청 행보의 결과를 풀어놓는 자리였지만 지난달 31일 조국 전 법무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이 발간되자 ‘조국 사태’에 대한 송 대표의 입장 표명 여부와 수위에 관심이 집중됐다.
“입시 비리 반성한다…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송 대표는 이날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한 뒤 사과했다.
사과 이유는 입시 비리 등 조 전 장관 자녀 관련 문제로 국한됐다. 송 대표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면서 공정과 정의를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남을 단죄했던 우리가 과연 자기 문제와 자녀들의 문제에 그런 원칙을 지켜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조 전 장관도 수차례 공개적으로 반성했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또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와 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 하듯 스펙 쌓게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라고도 말했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1심 판결에서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해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7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혐의 중엔 인턴 활동 등 스펙 품앗이도 포함된다. 그러나 송 대표는 ‘법률적 문제와 별개’라고 표현했고 스펙 품앗이에 대해선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보였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2019년 8월), “합법이라고 해도 혜택을 입은 점을 반성한다”(지난 5월) 등 합법을 강조해 온 조 전 장관의 입장과 결을 같이한 부분이다.
“윤석열 가족 비리도 동일하게 수사해야”
송 대표는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입시 비리 문제에 대한 사과 앞에 달았다. “윤 전 총장이 자신의 대권과 정치적인 야욕을 위해서 자기 상급자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사건”(김용민 최고위원)이라는 당내 검찰개혁 강경파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의 시간』에 대해선 “일부 언론이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하여 융단폭격해 온 것에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기계적 균형’ 조차 지키지 않고 검찰의 일방적 주장과 미확인 혐의를 무차별적으로 보도하였기에, 늦게나마 책으로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하는 것”(1일 페이스북)이라는 조 전 장관의 책 소개와 같은 맥락이다.
송 대표는 보고회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조국 사태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법률적 측면으론 검찰의 가혹한 수사가 있고, 그와 별개로 입시 교육 문제가 공정의 가치를 훼손해 청년들에게 상처를 줬다”며 “조 전 장관이 수차례 사과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도 이날 송 대표의 보고회 직후 사과문을 페이스북에 공유한 뒤 “겸허히 받아드린다. 저는 공직을 떠난 사인(私人)으로, 검찰의 칼질에 도륙된 집안의 가장으로 자기방어와 치유에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해찬 3줄 사과보단 진전했지만…당내서도 “반쪽짜리”
당초 송 대표의 사과 수위는 “과거 이해찬 전 대표의 사과와 달리, 진정성 있게 나올 것”이란 전망이 측근에게서도 나왔었다. 조 전 장관의 자진 사퇴(2019년 10월14일) 16일 만에 나온 이 전 대표의 사과는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는 등의 세 문장이었다. 사과 중엔 ‘조국’이란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이 ‘사과가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러시아 갔다 오는 바람에 (늦어졌다)”고 답했다.
하지만 송 대표의 사과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 전 장관이 해왔던 사과와 뭐가 다른가. 이 전 대표보단 낫지만 그래도 반쪽짜리 사과”(서울 초선)라는 평이 나왔다.
이 전 대표 사과 당시 야당에선 “송구하다는 몇 마디를 제외하면 사과가 아닌 변명과 핑계,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을 뿐”(이만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이 대표의 사과, 총선을 의식한 퍼포먼스일 뿐”(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이란 비판이 나왔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