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미국이 중국 견제하는 사이 기술 개발 능력 축적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6.0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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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왜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동맹을 크게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동맹을 크게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

미·중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문재인 정권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미명 아래 선택을 회피하던 비전략적 양상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 이전의 외교는 불안하기 그지없었고,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깨를 서로 맞대고 협력을 논의하는 데 한국만 외톨이로 바깥을 빙빙 도는 모습이었다.

미국과 협력은 한국 얕잡아보지 못하게 할 지렛대이자 안보 보험
한·미 정상회담 통해 전략적 모호성 벗어나 정상궤도로 돌아와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자유 항행·무역·통신의 제도적 기반 보장
한·미 동맹은 우리를 제약하기보다 선택지를 넓혀주는 역할 커

한·미 정상회담이 안도감을 준 이유는 동맹을 전면적·포괄적으로 강화한 데 있다. 우선 한·미 관계의 기초인 안보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사일 지침을 종료해 미사일 주권을 회복하는 한편, 확장억제 제공을 서로 확인했다.

또 한·미 경제·기술 동맹을 심화하는 계기가 됐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 영역에 44조원이라는 투자를 약속하며 미래산업 분야에서 한편에 섰다. 글로벌 백신 동맹의 길도 열었다. 미국의 기술과 한국의 대량 생산 능력을 결합해 지역과 세계에 백신 공급을 늘리자는 것은 비전통 안보 분야의 동맹 광역화를 의미한다. 나아가 대만해협 평화·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중국해 등에서 자유 항행의 원칙 준수를 확인한 것은 지역 동맹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동맹 표류를 바로잡은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미국 중심 외교 복귀는 비정상의 정상화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기여는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국제적 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한국의 중국 경사론은 두 가지 검증되지 않은 부풀린 기대감에 기인한다. 하나는 중국의 힘을 빌려 북한을 움직여 보려는 기대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선택을 한다는 점을 외면한 일방적 기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70주년에 천안문 망루에 오른 것도, 현 정부가 몸을 사리며 저자세로 중국을 대한 것도 북한을 움직여 주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의 기대만큼 북한을 움직일 수 없고, 북한도 중국을 따르지만은 않는다.

또 하나의 검증되지 않은 기대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력과 기술 추격이 미국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중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다 보니 중국이 싫어하는 선택은 아예 배제하고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하거나 인도 태평양전략, 쿼드 등 미국 주도 전략에서 뒷걸음치는 양상이었다. 심지어 사드 보복 후 3불 입장을 천명한 것처럼 한국의 군사 주권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까지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세 가지 환상 벗어나야

하지만 애초부터 한국에 있어 중국이 미국에 우선하는 전략적 선택지는 될 수 없었다. 중국이 한국의 안보 문제까지 관여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중국이 한국의 우호적인 태도에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이라는 환상, 그리고 중국은 한국을 기술 면에서 따라잡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은 군사·안보 면에서 미국을 대체해 한국을 지켜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북한을 옹호하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한·미 동맹을 약화하는 게 전략적 이득이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강해지는 마당에 한국 안보를 담보하는 동맹을 약화하는 세력을 불러들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중국은 역사공정과 문화공정이라는 소프트한 공세뿐만 아니라, 서해 지역에서 한국의 영해를 반복해서 침범하는가 하면, 중국 어선들은 한국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회색지대 안보 위협(gray zone security threat)’을 증가시키고 있어 우리 안보에 위협적이다.

또 중국은 한국이 저자세, 때로 굴종적인 태도까지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편익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사드 보복 이후 한한령(限韓令·중국의 한류 금지령)이 공식적으로 해제되었다는 방증도 없고, 한국 기업이나 국민에게 혜택을 안겨준 것도 없다. 중국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자기네 요구를 따라주기만 바라고 있을 뿐, 대등한 상호주의에 기반을 둔 배려를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이 고압적·위계적·공세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한국 내에서 중국을 보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위압적 태도의 결과다.

아울러 한·중은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가 심화하고 있지만, 중국이 한국을 추격(catch up)할 단계가 코앞에 이르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철강·화학·통신 등 다양한 한국의 전략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한국을 곧 따라잡을 기세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이고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고 현실과 거리가 멀다.

한·미 동맹 이점 활용하는 지혜

미국과의 협력은 한반도 주변 국가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고압적 태도와 묵시적 경시를 극복하고 한국을 얕잡아 볼 수 없도록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렛대이자 유사시 영토에 대한 야욕을 가지지 않고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안보 보험이다. 한·중·일 간 관계가 불안정적이고 신뢰를 결여한 상태에서 역외 동맹인 미국은 지역 세력 균형화의 초석이다. 미·중 경쟁의 역학 속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해주는 동안 한국은 중국의 추격을 조금은 늦추어가면서 첨단 기술 개발 능력을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자유 항행, 자유 무역, 자유 통신의 제도적 기반을 보장해 주는 것도 미국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를 제약하는 요인보다 선택지를 넓혀주는 역할이 더 크다.

미·중 관계 복합 3중주, 대결·경쟁·협력
미·중이 군사·안보 전략 경쟁에 그치지 않고 경제·기술 패권, 그리고 체제·가치관을 둘러싼 이념적 대결의 양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미·중이 맞서는 구도가 강해지는 추세 속에서도 양국이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것만은 아니다.

미·중은 두 가지 영역에서 양보할 수 없는 대결과 대립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하나는 군사 안보와 관련된 지정학적 경쟁이다. 동맹 강화, 민주주의 네트워크 확장, 군사·안보 기술 유출 방지 등은 이를 위한 정책 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첨단 기술 분야를 둘러싼 미래 경쟁력 확보 경쟁이다. 반도체·배터리, 차세대 통신 능력, 슈퍼컴퓨터 등 디지털 첨단 기술 분야에서 사활을 건 경쟁에 진입했다. 한국은 이들 분야에서 미국의 편에 서 왔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 편에 서야 한다.

경제와 국제 개발 영역은 미·중이 서로 경쟁하는 분야다. 경제는 일국이 독점할 수 없고 제로섬 영역도 아니다. 상호 의존하고 있지만, 동등한 입장의 경쟁은 아니라서 서로에게 민감하고 취약한 분야를 둘러싼 날 선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미·중 양국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벗어나 디커플링할 가능성은 적다. 부분적인 불관여와 선택적인 불공정 경쟁이 있을 공산이 크다. 개발·원조 부분에서도 미·중은 세계 도처에서 개도국의 호감을 사기 위한 매력 경쟁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중국과 첨단 기술 분야를 제외한 일반 상거래는 유지하면서, 한국의 개발·인프라 건설 등 국제 경쟁 우위를 살릴 수 있는 영역을 살려 나가야 한다.

글로벌 문제나 초국경 과제들은 미·중이 반드시 제살깎기 경쟁을 할 분야는 아니다. 기후변화, 환경, 의료보건 등 국제 공공재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미·중이 경쟁하는 와중에도 서로 손을 잡아야 하는 분야다. 초국경 과제들은 어느 한 나라만 혜택을 누리는 분야도 아닐뿐더러 상대국 배제의 이익도 크지 않은 부분이다.

따라서 미·중이 협력 가능한 분야에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국제 공공재 창출을 위해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가야 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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