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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의 원조 약속…유엔 대북제재, 중국이 뒷문 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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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중 간 철도 운행 재개를 계기로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북 제재에 대해 확고한 원칙을 확인한 만큼 북한이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당장의 경제난 타개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미 밀착에 북·중 결속 강화 #이용남 주중대사 만나 지원 약속 #북한, 중국 업고 버티기 들어가면 #미국과 경색국면 장기화 가능성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9일 ‘중국이 제재를 받는 이웃, 북한에 경제 지원을 약속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7일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를 만난 소식을 전하며 “‘힘 닿는 한 북한에 도움을 주겠다’는 왕 위원의 발언은 중국이 단둥(丹東)을 지나 북한으로 가는 화물열차 운행의 재개를 준비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북·중 국경 도시인 단둥(丹東)에 북한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화물용 열차가 늘어났다.

왕이 “힘닿는 대로 도움 줄 것” … 북·중 화물열차도 재개 준비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와 회담에 앞서 팔짱을 끼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와 회담에 앞서 팔짱을 끼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국경 폐쇄라는 강수를 뒀던 북한이 조만간 중국과 교역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꾸준히 제기된다.

SCMP는 21일 한·미 정상회담 뒤에도 북한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제재 완화를 꺼리고, 비핵화 약속 없이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상기했다. 이어 “최근 몇 주 사이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서 미국 주도의 포위 전략에 따른 피해 경감을 위해 북한·이란·러시아와 더욱 적극적으로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며 “중국도 미국의 제재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미·중 전략 대결 속에서 우방과 힘을 합칠 필요가 있고, 북한은 경제난 타개가 절실한 만큼 중국이 철도 운행 재개 등을 계기로 대북 원조를 제공하면서 결속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3월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 관계 강화와 북한 인민 생활 향상을 강조한 구두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그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원하는 것이 제재 해제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 뒤엔 공개적으로 대북 제재 결의 5건의 해제를 요구했는데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 역시 대북 제재에선 원칙이 확고하다. 한·미 정상회담 뒤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북한과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의지가 있다고 밝혔지만 대북 제재는 다른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그 직후 인터뷰에서 “공은 북한 코트로 넘어갔고 우리는 외교적인 문제 해결을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왔다”면서도 “제재는 현 상태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유엔이 금지한 행동들을 지속적이고 명백하게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가장 필요한 게 제재 해제인데, 여기서 섣부른 유인책을 제공하며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미 의회조사국(CSR)은 26일 기존의 ‘한국: 배경과 미국과의 관계’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단계적인 조치가 있으면 부분적으로 제재를 점점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꺼리는 ‘리비아식 모델’, 즉 북한이 먼저 핵을 모두 제거하면 제재를 나중에 한꺼번에 푸는 식의 일괄타격식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했다. 결국 제재 완화는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할 경우에만 이에 대한 대가로서, 이에 상응하는 정도로만 하겠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중국의 원조로 일단 숨통을 틔우며 ‘버티기 전술’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북·미 관계 경색 국면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제재 뒷문’ 열어주기를 경계한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우리는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고 했는데 여기에 ‘국제사회’라는 표현을 넣은 데는 중·러 등도 제재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압박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8일 위성사진을 근거로 북한의 영변 핵시설 단지가 계속 가동되는 징후가 포착된다고 보도했다. 38노스는 영변 핵시설 내 방사화학실험실과 이를 지원하는 화력발전소에서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연료봉 이동의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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