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짬밥의 정치학: 육대전에 놀라 군대로 달려간 여ㆍ야…해결책은 미궁?

중앙일보

입력

시작은 현역 장병이 올린 사진 한장이었다. 지난달 18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는 육군 51사단 소속 군인이 “밥이 이런 식인데 감방이랑 뭐가 다르죠”라는 글과 함께 부실해 보이는 급식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다른 부대 소속의 장병들도 “21세기 사회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 “무슨 두 살짜리 애 밥 먹이는 거냐”며 부실 급식 사진을 잇달아 올렸다.

지난달 18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18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이대남’의 커진 정치 영향력…놀란 정치권

‘짬밥’이라고도 불리는 군 급식이 부실하단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치인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4ㆍ7 재ㆍ보궐선거 이후 ‘이대남’(20대 남성)의 정치적 영향력이 꽤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육대전에 올라온 게시글에 댓글을 단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0일 육대전에 올라온 게시글에 댓글을 단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캡처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0일 육대전에 올라온 부실 급식 사진에 “지금 세상에 먹는 것 때문에 설움 겪게 하다니…. 꼭 고쳐야 할 악습입니다”라는 댓글을 직접 달았다. 22일엔 본인 페이스북에 육대전 게시글을 링크해 “국민의 일을 대신하는 공직자로서 많이 수치스럽고 죄송하다”라고 썼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전 경기 양주시 72사단 202여단을 방문해 장병 급식 및 격리 장병 급식을 살펴보고 있다. 2021.5.27 오종택 기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전 경기 양주시 72사단 202여단을 방문해 장병 급식 및 격리 장병 급식을 살펴보고 있다. 2021.5.27 오종택 기자

국회에서도 여야가 경쟁하듯 나섰다. 지난 26일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각각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와 경기 화성 51사단을 방문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27일 경기 양주에 위치한 72사단을 찾아 “급식 예산이 한 끼에 2930원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기동민 간사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이 지난 2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 장병 급식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기동민 의원실 제공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기동민 간사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이 지난 2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 장병 급식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기동민 의원실 제공

지난 26일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이 육군 51사단을 방문해 장병들의 복지 실태를 확인했다. 뉴스1

지난 26일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이 육군 51사단을 방문해 장병들의 복지 실태를 확인했다. 뉴스1

국회 논의 활발하지만…수많은 난관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다”는 말이 여야 모두에서 나온다. “상당히 많은 문제가 얽혀있더라”(민주당 국방위 관계자)는 거다.

①예산 문제일까?=이번 논란 후 국방부는 지난 7일 내년 1인당 기본급식비를 하루 1만500원(한 끼 35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기준 하루 8790원(한 끼 2930원)에서 19.5% 오른 금액이다.

군인 1인당 1일 급식비. 그래픽=신재민 기자

군인 1인당 1일 급식비.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엇갈린다. 국방위 소속 설훈 민주당 의원은 “군 장병 급식비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한 반면, 육군 중장 출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군 급식비엔 인건비나 가스비 등이 안 들어간다. 대량 구매로 재료를 싸게 사기 때문에 한 끼 당 2930원이 적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집단 전체의 통일성이 중요한 군대 특성도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꼽힌다. 국방부는 1970년 농협과 체결한 ‘군 급식 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에 따라 장병의 선호와 상관없이 통상 1년 치 식재료를 국산으로 미리 계약한다. 또 군은 1976년부터 ‘1식 3찬’ 체계를 도입해, 한 끼에 밥과 국, 3개의 반찬을 동일하게 제공한다. 국방위 관계자는 “부대별 자율성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데, 오랜 군 조직 문화상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②높아진 눈높이=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급식 체계의 발전보다 새로운 세대의 눈높이가 빠르게 높아진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병들의 급식 불만족도는 2005년 15.1%에서 2019년 37.7%로 크게 늘었다.

군 장병 급식 만족도. 그래픽=신재민 기자

군 장병 급식 만족도. 그래픽=신재민 기자

보고서를 작성한 나달숙 백석대 교수(경찰학)는 “일상에서 누리는 음식의 질이 과거보다 크게 좋아졌고 입맛도 다양해졌다. 군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주더라도, 본인 입맛에 안 맞으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도 “삶의 질이 높아져서 만족의 기준도 높아졌는데, 군이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③사람·인력의 문제?=부실 급식이 군 전체의 문제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부실 급식이 나오는 데도 있지만, 또 어느 부대에선 급식이 잘 나오기도 한다. 부대별 편차가 큰 건, 조리병의 음식 솜씨나 간부들의 관심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육대전엔 “결국 소속 간부들 정성의 차이”라며 잘 나온 급식 사진들도 올라오곤 한다.

지난달 23일 육대전에 올라온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3일 육대전에 올라온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부대 병력 75명당 1명의 조리병만 배치되는 등 인력의 한계도 있다. 군은 1996년부터 민간 조리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2015~2019년 편성 인원 대비 채용률은 평균 80% 수준이다. 국방위 관계자는 “군부대가 오지에 있는 데다 급여가 적어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점진적 개선 전망 속, 속도 빨라질 수도”

결국 전문가들도 “한 번에 해결되기보단, 점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군 내 폭력 문제가 서서히 개선됐던 것과 비슷할 거란 뜻이다.

다만 “정치인들의 관심으로, 생각보다 개선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지난 7일 국방부에서 서욱 국방장관이 주관한 전군지휘관회의. 이날 국방부는 논의를 통해 군 급식혁신사업안을 발표했다.

지난 7일 국방부에서 서욱 국방장관이 주관한 전군지휘관회의. 이날 국방부는 논의를 통해 군 급식혁신사업안을 발표했다.

정치인 입김에 민감한 군은 이미 지난 7일 감독관(간부) 배식관리체계 정립, 육류 10% 증량, 월 1회 브런치 제공, ‘간편 뷔페식’ 시범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급식혁신사업안을 발표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27일 육군 51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리병을 비롯한 급양 관리관, 영양사, 민간조리원이 증원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논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법안 제ㆍ개정도 추진 중이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학교 급식처럼 군 급식 위탁사업자도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고, 한기호 의원은 군 급식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군 급식법(가칭) 제정안을 준비 중이다.

김준영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