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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로 건넨 말에 더 상처받아”…젊은 암환자들의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유방암은 요즘엔 암도 아니래. 착한 암이라잖아.”

“내 지인도 그거 진단받았대. 말기 아니라 다행이다.”

“젊으니까 괜찮을 거야.”

5년 전, 28살의 나이로 유방암 2기를 진단받은 조연우(32)씨가 숱하게 들은 위로의 말이다. 하지만, 조씨는 “암에 착한 게 어디 있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애써 분위기 전환을 해주려는 말인 건 알지만, 내겐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젊은 암 환자들의 고민이다.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발생한 15~39세의 암 환자는 약 1만 8000명이다. 젊은 암 환자는 2016년 1만 6900명, 2017년 1만 7000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가수 보아의 친오빠인 권순욱 감독(40)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네트워크(SNS)에 “복막염을 앓은 지 5개월 만에 전이에 의한 4기 암을 판정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젊은 암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권 감독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멀쩡했던 나에게 젊은 나이의 암은 정말 확장 속도가 굉장히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젊은 암 환자’에 대한 편견

2년 전 직장암 3기를 진단받은 신현학씨는 '직장이 없는 남자'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2년 전 직장암 3기를 진단받은 신현학씨는 '직장이 없는 남자'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조씨는 “사람들이 암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저 사람은 건강 관리를 대체 얼마나 못했으면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냐’고 하는데, 평소 건강했던 나는 진단받기 하루 전에도 암이라는 걸 상상도 못 했다”며 “내 잘못도 아닌데 아픈 이유가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다고 말했다.

8살에 횡문근육종이라는 소아암을 겪은 후 2년 전 직장암 3기를 진단받은 신현학(24) 씨도 비슷한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신씨는 “얼마나 막살았으면 암에 걸리냐는 말을 듣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며 “요즘 암은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 별거 아닌 것에 사활을 걸고 싸운다”고 말했다.

신씨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18시간이라고 한다. 화장실에서 6시간 정도를 보내야 나머지 시간 동안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서다. “젊으니까 더 잘 이겨낸다는 생각도 많이들 하는데, 주변에 암으로 죽어 나간 제 또래만 해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2017년, 유방암 2기 B를 진단받은 조연우씨가 항암치료 중 가발을 쓰지 않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어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라고 한다. 지난해 조씨가 출간한 자서전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의 책 표지에도 이 사진을 넣었다. 조연우씨 제공

2017년, 유방암 2기 B를 진단받은 조연우씨가 항암치료 중 가발을 쓰지 않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어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라고 한다. 지난해 조씨가 출간한 자서전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의 책 표지에도 이 사진을 넣었다. 조연우씨 제공

한창 학교나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나이인 젊은 암 환자는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았다. 영업직에 종사하던 조연우씨는 항암 치료가 확정된 다음 날 퇴사를 했다. 회사와 가족 외에는 암 진단 사실을 숨겼다. 조씨는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취업하는 등 한창 사회생활을 할 28살의 나이에 암이라니, 억울한 마음에 자격지심도 있었고 친구들에게 선뜻 입이 안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외로운 백수’가 되니 나만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래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헤매더라도 세상 밖에서 헤매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못해 ‘강제 휴직’ 상태가 됐지만, 계속해서 블로그와 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암 치료 후 사회 복귀가 굉장히 힘들다”며 “다들 투병 사실을 밝혀도 될지, 다시 몸이 아프면 어떡할지 등의 걱정이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나도 아팠지만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암 환자라고 숨지 마세요”

2019년 12월부터 캔서테이너(cancer+entertainer)로도 활동하고 있는 한윤정씨. 직장과 대학 생활을 병행 중이다. 한윤정씨 제공

2019년 12월부터 캔서테이너(cancer+entertainer)로도 활동하고 있는 한윤정씨. 직장과 대학 생활을 병행 중이다. 한윤정씨 제공

7년 전 횡문근육종을 앓은 한윤정 씨는 올해 26살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했다. 한창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할 시기를 투병 생활로 보냈기에 대학을 졸업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한씨는 “항암 치료를 받고 난 지가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 안심이 안 된다. 아플 때도 있고 응급실에 갈 때도 있고 끝나지 않은 숙제 같다”며 “그래도 취직도 하고, 대학에 입학도 하고, 암 경험자들을 위한 토크콘서트 등 여러 목표를 이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공통으로 전한 메시지는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였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 교육센터장은 “흔히 우리가 젊은 사람들보고 ‘철을 씹어먹어도 소화가 될 나이’라고 하는데, 젊은 암 환자들은 남들이 한창 일하고 멀쩡할 나이에 아프다 보니 학교와 직장 등에서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애가 왜…’라며 불쌍하게 혹은 이상하게 볼 필요도 없고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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