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빠르게 살면 빠르게 죽어, 재밌게 사는 게 잘사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37호 19면

이현삼 전 ‘해피콜’ 회장의 인생 2막

강원도 홍천 공작산 밑에 자리한 거처.

강원도 홍천 공작산 밑에 자리한 거처.

경상남도 거창의 외진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 호롱불을 켜고 살았던 소년은 부자가 되는 게 소원이었다. 스물다섯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남대문 시장 길바닥에서 장사를 배운 청년은 ‘해피콜’이라는 주방용품 브랜드를 만들어 대박을 냈다. 어린 시절 소원처럼 매일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성공을 거뒀다. 해외 법인 5개. 사업무대는 날로 확장됐지만 그만큼 몸은 쇠약해졌다.

무작정 상경한 가난한 산골 청년 #사업 크게 성공했지만 몸 망가져 #6년 전 회사 넘기고 농부 삶 시작 #“50그루서 사과 10개만 따도 행복 #멋진 신세계는 웃음 위에 세워져” #죽염·천연비누 만들며 느린 삶 즐겨

“군대시절 입었던 동상과 사업 스트레스로 늘 몸살을 앓았어요. 체온이 떨어져서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 수 없을 만큼 추웠죠.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어요. 수면제랑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았습니다.”

곧 출간되는 이현삼 전 회장의 에세이집.

곧 출간되는 이현삼 전 회장의 에세이집.

그는 ‘살기 위해’ 기업을 매각하고 강원도 홍천 공작산으로 터전을 옮겨 농부가 됐다. ‘해피콜’ 이현삼(56) 전 회장은 6년 전 그렇게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막내동생의 장인이 공작산에서 산삼 캐는 심마니를 소개시켜줬다. 처음 만난 심마니는 이 회장의 몰골을 보더니 산삼 한 뿌리를 건네며 “이것 드시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황토와 나무로만 지은 집에는 구들이 있었다. 장작불을 잔뜩 지핀 구들에서 땀을 뻘뻘 흘렸던 그날 밤, 이 회장은 쉽게 잠들 수 있었다고 했다. 산책을 하고, 채식을 하고, 다시 온돌에 몸을 맡기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몸은 천천히 회복됐다.

“이후 10년 간 몸이 아프면 심마니의 집에 들러 1~2주간 몸을 회복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 일하기를 반복했죠. 처음엔 6개월에 한 번 다녀오면 살 만하더니 3개월에 한 번으로 공작산을 찾는 시간이 잦아졌어요. 잠깐씩의 요양만으로는 몸이 버틸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사업을 정리하고 공작산에 들어왔다. 자신을 살려준 심마니는 3년 전 돌아가시고, 그 가족들이 공작산 밑의 집과 땅을 이 회장에게 부탁했다. 전국을 뒤져 공작산과 같은 환경을 찾았던 이 회장으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공작산 아래 사는 행복한 농부로 변신

1989년 10월, 군대에서 입던 옷가지 몇 벌과 속옷 몇 개 들고 서울로 올라온 청년은 막노동으로 매일을 버텼다. 남대문시장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게 노점에서 팔던 ‘토스트 팬’. 온종일 지켜보니 하루에 100개 이상이 팔렸다. 무작정 토스트 팬 가게에 쳐들어가 사장님에게 장사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렇게 남대문 신화는 시작됐다. “골라, 골라, 500원, 골라!” “반값의 절반, 절반의 반값!” 장사꾼들이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치고 외치는 소리를 ‘다다구리’라고 하는데, 이 회장은 자신의 사업 마케팅 실력은 시장바닥에서 배운 이 다다구리 기술에서 시작됐다고 털어 놓았다.

천연 비누용 죽염도 직접 굽는다.

천연 비누용 죽염도 직접 굽는다.

붕어빵 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회장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생선을 구워주는 양면 팬을 만들었다. 홈쇼핑 방송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물건이다. ‘해피콜’은 이름만큼  승승장구했다. 해피콜은 행복을 부른다는 의미, (홈쇼핑 시장을 겨냥해) 행복한 주문 전화를 걸어달라는 의미다.

그가 곧 출간하는 에세이집 『농부 하는 중입니다』(디자인하우스 발행)에는 ‘해피콜 성공의 7법칙’이 나온다. 첫째,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라. 둘째,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어야 한다. 셋째,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라. 넷째, 제품 개발은 쉼 없이 미리미리 준비해라. 다섯째, 최고의 디자인과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아라. 여섯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잘 팔아야 한다. 일곱째, 마지막 5%까지 최선을 다해라.

직접 키운 제철 식재료로 차린 식탁.

직접 키운 제철 식재료로 차린 식탁.

맨 주먹으로 시작한 이 회장은 정말 최선을 다했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미련 없이 회사를 정리했다. 2016년 ‘해피콜’을 1800억원에 이스트브릿지&골드먼삭스에 매각했다. 다른 회사들도 인수 의향을 밝혀왔지만 조건이 있었다. 최소 2년 간 최고경영자로 근무해달라는 조건이었다. 연봉은 100억원. 하지만 이 회장은 “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 무조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이 회장에게는 28세 딸과 24세 아들이 있다. 전문경영인을 두고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줘도 됐을 텐데 왜 무작정 매각만 고집했을까.

장뇌삼.

장뇌삼.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한다는 건 성공과 추락의 피 말리는 롤러코스터를 견뎌야하는 일이에요. 가족도, 나 자신도 버리고 오로지 일에만 파묻혀 살다가 결국 나처럼 불치병만 얻게 되기 십상이죠. 나조차도 살기 위해 버리려 한 그 길을 어떻게 자식들에게 가라고 합니까. 못 하죠. 안 되죠.”

기쁨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에서 온다

‘해피콜’ CEO 시절.

‘해피콜’ CEO 시절.

“하마터면 성공하고도 가난할 뻔 했다.”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살았고,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 행복할 것.” 이 회장의 에세이에서 눈에 띈 대목들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죽을 때 억울하면 어쩝니까. 되돌릴 수도 없는데. 인생은 마라톤이에요. 100미터 1등하면 뭐 합니까. 재밌게 살면 그게 잘 산 인생이죠. 그러려면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먹거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 회장이 인생 2막으로 ‘농부’의 삶을 살고 있는 이유다.

심마니는 생전에 공작산 아래 개인 휴양림을 일궈놓았다. 5만평 땅에 펜션으로 쓸 수 있는 집들까지 여러 채 지어 놨다. 이 회장은 현재 그 집들을 수리해 네 명의 형제와 그 가족들까지 불러 ‘독수리 5형제’의 보금자리를 일구고 있다. 양봉도 하고, 버섯도 키운다. 가장 흥미를 갖게 된 일은 천연 약재를 사용한 ‘비누 만들기’다.

“체온이 떨어지고 혈액순환이 안 되니까 온몸이 건조해지면서 각질이 허옇게 일어났어요. 어디 가서 맨 살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였죠. 직접 키우고 산에서 얻은 천연 재료들을 먹고 몸이 좋아지면서 피부를 회복시킬 연구를 했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이현삼 전 회장은 ‘행복한 농부’가 됐다. [사진 디자인하우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이현삼 전 회장은 ‘행복한 농부’가 됐다. [사진 디자인하우스]

결론은 매일 몸을 씻을 때 사용하는 비누를 제대로 만드는 거였다. 자극적인 화학약품을 일체 쓰지 않고 천연 재료들만 이용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비누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실천력 갑’ 이 회장은 전국은 물론 외국에까지 좋다는 천연 수제 비누들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발견한 게 춘천에서 5대째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작은 회사에서 만든 비누다. 화학약품이 없던 때부터 몸을 씻는 비누를 만들었으니 이건 제대로라고 생각했다. 회사와 가문에 전해지는 비법을 사들였다.

물과 기름을 뭉치게 하는 화학약품 ‘가성소다’ 대신 죽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내고 공작산 집터에 가마를 만들고 직접 죽염을 굽고 있다. 중요한 약재인 천궁·작약·당귀·측백·방풍·장뇌삼 등을 키우고 산에서 캐는 일도 가족들과 함께 직접 한다. 이렇게 정성들여 만든 비누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게 요즘 이 회장의 행복이다. 비누를 직접 써본 지인들은 “각질이 사라졌다”고 칭찬 일색이다. 산이 여러 개 겹쳤다는 의미로 ‘사안(SAAN)’이라는 제품명까지 만들었지만, 시판은 아직 계획이 없다. 어느 큰 병원의 사모님이 외국 손님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부탁했을 때 개당 12만원에 판 적이 있을 뿐. “비누 1개를 만들려면 꼬박 1년이 걸려요. 재료 키우고 얻는 일까지 하면 최소 2~3년이 걸리죠.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아직 준비가 많이 필요해요.”

이 회장은 "자연과 연애를 즐기는 중”이라고 했다. 아내와 형제들과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일하고, 웃고, 먹고, 마시고, 노는 일상은 자연과의 밀당이다. 비누 역시 자연이 준 선물이다.

“연애할 때는 데이트 약속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언제 손을 잡을지. 농약 안 치고 키운 사과나무 50그루에서 사과를 고작 10개만 땄어도 그것으로 행복해요. 기쁨과 행복은 결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이 회장의 에세이는 항상 곁을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의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은퇴한 남자는 아내 없이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기 어렵다. 누구라도 아내 없이는 두 번째 인생의 해피콜을 울리기 어렵다.” “나의 아내 ‘김진숙’. 우리는 얼굴만 마주치면 아침부터 밤까지 웃는다. ‘멋진 신세계’, 그것은 웃음의 세계에서 세워진다.”

홍천=서정민 기자/중앙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meantr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