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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거리에서 감동ㆍ존중 대상으로…대중문화 속 군대가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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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강철부대'의 한 장면 [자료 채널A]

채널A '강철부대'의 한 장면 [자료 채널A]

대중문화 속 군대의 위상이 달라졌다. 풍자와 희화가 아니라 이해와 존중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한때 남성들의 전유물이자 폭력과 억압의 상징으로 다뤄졌던 밀리터리 문화가 ‘책임’ ‘투지’ ‘페어플레이’ 등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호감을 끌어내고 있다.

지난해 휴대전화 허용 이후 #군인들, 문화소비층으로 부상

출발은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가짜 사나이’다. 유튜브 제작사 피지컬갤러리와 글로벌 보안 전문회사 무사트가 제작한 ‘가짜 사나이’는 유행어를 양산하고 누적 조회수가 1억6000만건에 이르는 등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는 과정 자체가 감동을 끌어낸 것이다.

이어 tvN에서는 여성판 ‘가짜 사나이’라고 불린 ‘나는 살아있다’를 제작했고, CJ CGV는 올해 초 ‘가짜 사나이 2’의 극장판인  ‘토이 솔져스: 가짜사나이 2 더 컴플리트’를 내놓았다. 4DX 상영관을 통해 선착순 달리기, 엎드려 뻗기, 뒤로 눕기, 버피 등의 훈련 장면에서 모션 시트 효과를 주고 직접 훈련을 받는 듯한 간접 체험의 느낌을 제공했다.

'가짜사나이2'

'가짜사나이2'

최근엔 TV 예능 ‘강철부대’(채널A)가 인기를 끈다.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팀을 구성해 각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지난 4일 방송에서는 SDT 부대원들이 40kg 군장 산악 행군 데스매치에서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과제를 포기하지 않으며 화제가 됐다. 부상당한 동료의 군장을 메는 바람에 80kg의 무게를 고스란히 홀로 지게 됐지만, 다른 부대의 도움 제안도 거부한 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워킹맘 김영아(40)씨는 “‘강철부대’를 보면서 최선을 다하면 승부에서 패배하더라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도 ‘동작 그만’이나 ‘푸른 거탑’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제작돼 큰 인기를 얻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군대 내 부조리를 풍자하거나 희화화하면서 화제가 됐을 뿐, 군대에 대한 시각이 기존과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비중 역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한 코너를 맡는 ‘감초’ 역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원래 군대는 대중문화에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대표적 소재”라며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간 지적되어 온 희화화, 가학성 같은 요소가 점차 사라지고 명예, 자부심, 포기하지 않는 정신 등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우애나 희생, 공정한 승부 같은 서사를 담아내면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트가 됐다”고 덧붙였다.

브레이브걸스 역주행을 촉발시킨 유튜브 동영상 중 한 장면. 군인들의 열광적인 리액션이 화제를 불러왔다. [유튜브 캡처]

브레이브걸스 역주행을 촉발시킨 유튜브 동영상 중 한 장면. 군인들의 열광적인 리액션이 화제를 불러왔다. [유튜브 캡처]

대중문화 소비자로서 군대의 중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현상 역시 그 사례다. 이들은 ‘군통령’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부대 위문공연 위주로 활동해왔다. 그러다가 올해 초 브레이브 걸스에 열광하는 군부대 장병들의 반응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됐고, 브레이브 걸스는 팀 결성 10년 만에 가요계 정상에 섰다. ‘밀보드(군대 빌보드)’ 인기곡이 민간 차트까지 점령한 것이다. 3월 14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한 브레이브걸스는 “국군 장병, 예비역, 민방위 모두 감사합니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본격 허용된 휴대전화의 보급도 변화의 한 축이 되고 있다. 과거 문화 시장에서 ‘열외(列外)’라고 분류했던 군인이 60만명이라는 거대 문화 소비층으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지난달 전역한 김상현(26)씨는 “병영에서 유튜브 영상도 보고, TV 프로그램 게시판에 댓글도 달고, 가요프로그램 순위 투표에도 참여하는 등 훈련 후에는 문화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편”이라고 전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아직 군대 맞춤형 이벤트 같은 것을 기획하는 것은 없지만,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주목하고 있다”면서 “한동안 대세가 됐던 ‘센 언니’나 ‘걸크러시’ 같은 여초형 걸그룹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에 오른 롯데리아 '밀리터리 버거' 관련 게시물 [네이버 캡쳐]

포털 사이트에 오른 롯데리아 '밀리터리 버거' 관련 게시물 [네이버 캡쳐]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방송 외 분야에서도 밀리터리는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밀리터리 버거’를 출시해 인기를 끄는가 하면 의류브랜드 ‘휠라’도 지난해 하반기에 방탄소년단을 내세워 ‘밀리터리룩 제품을 내놓았다. 경기 연천군은 2016년부터 ’세계 밀리터리룩 페스티벌‘을 열고 있으며, 올해도 5회 행사가 다음 달 25일부터 열린다. ’전방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문화 행사로 발전시킨 예다.

한편 이러한 시선의 변화에 대해 군에서는 ’연예인 군 복무‘도 꼽는다.

군 관계자는 “연예인 군 복무가 ’황제 복무‘ 같은 아쉬운 논란을 남긴 것도 사실이지만 현빈, 조인성, 박보검 등 많은 인기 연예인들이 모범적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면서 군대에 대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군 복무를 명예로운 의무로서 부각한 점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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