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문 연재소설·삽화, 넘기며 보는 재미의 재발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15 00:20

업데이트 2021.05.15 01:05

지면보기

736호 19면

미술과 문학의 연대

일제 강점기,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만든 주요 책과 잡지의 표지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일제 강점기,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만든 주요 책과 잡지의 표지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30일까지)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2월 4일 개막해 지난 13일까지 85일간의 관람객이 5만7000명을 넘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예약제 및 회당(1시간, 평일 8회·수토 11회) 관람 인원 100명이라는 제한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671명이 찾고 있다. 직전 전시였던 박래현전의 일평균 428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회 인기
이상·구본웅, 백석·정현웅 등
문인과 화가들 관계 이색 조명

그림 115점 중 개인 소장품 76점
85일간 관람객 5만7000명 밀물

이번 전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0~40년대를 중심으로 미술과 문학의 연대, 즉 시인 및 소설가와 화가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이상과 구본웅, 김기림과 이여성, 백석과 정현웅, 이태준과 김용준, 김광균과 최재덕, 구상과 이중섭이 대표적인 ‘커플’이다. 누가 글을 쓰면 누구는 그림을 그려 같이 신문에 소설을 연재했고, 책을 만들었으며, 잡지를 냈다. 불황에 역병이 겹쳐 경제적으로 힘들고 정치적 갈라치기로 마음까지 힘든 요즘, 서로 힘을 합쳐 뭔가를 이뤄낸 결과물들이 주는 기운이 전시장엔 가득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학예연구실 근대미술팀장은 “흔히 일제 강점기를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기로만 생각하는데,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믿고 추구하던 이들의 ‘연대감’은 오히려 어두웠던  시절이었던 만큼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라며 “다들 고단하고 고립된 요즘, 서로 연결돼 있으면서 시대를 뚫고 나간 예술인들의 모습에 위안을 받는다는 분들이 많고 n차 관람까지 해주시는 덕분에 성황을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잡지 ‘여성’의 편집자로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백석이 정현웅과 함께 쓰고 그린 화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잡지 ‘여성’의 편집자로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백석이 정현웅과 함께 쓰고 그린 화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특이한 공간은 ‘제2전시실’이다. 부제가 ‘지상(紙上) 미술관’이다. 테이블마다 스탠드 조명이 있는 유럽의 오래된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디스플레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탁자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신문 소설과 연재 삽화를 카피해 직접 넘겨볼 수 있도록 했는가 하면, 문인과 화가가 협업한 ‘화문(畵文)’을 멀티미디어로 즐길 수 있게 했다. 백석의 시와 정현웅의 그림이 어우러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태블릿으로 보며 헤드폰으로는 시낭송을 듣는 식이다.

김 팀장은 “‘(회화) 작품이 없는 방’을 꾸미는 모험이 관람객들에게 통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며 “MZ세대들이 종이 신문을 일종의 오브제로 보고 넘겨 보는 것을 퍼포먼스처럼 여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용주 전시운영디자인기획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 전시물 대부분이 문서와 책이었기에, 보는 전시가 아닌 ‘읽는’ 전시로 가고자 했다. 최근 이미지 소비를 위한 인스타용 전시가 많은데, 예약 입장한 소수의 인원이 전시물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읽는 모습 자체가 전시의 신(scene)을 완성한다고 생각했다.”

이상이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28일자에 실은 ‘오감도’의 ‘시 제4호’. 특히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상이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28일자에 실은 ‘오감도’의 ‘시 제4호’. 특히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난해하기로 소문난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34년 7월 24일부터 실제 연재된 모습으로 보는 경험은 강렬했다. 당시 독자들의 빗발치는 비난으로 결국 15회 만에 연재가 중단됐는데, 이상의 아내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화가 김환기와 결혼해 김향안으로 개명)의 언급은 흥미롭다. “반세기 가까이 지나서 유럽에 유행한 개념의 예술-시는 보고(그림처럼), 그림은 읽는(시처럼)-을 시도한 것”으로 “동양의 불길한 ‘까마귀’와 서양의 불길한 숫자 ‘13’을 구성해서 무서운 그림을 그린 것이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등 희귀한 책들을 유리장 안에 넣어 가치 있는 작품으로 디스플레이한 공간에서는 상허 이태준이 『무서록』에서 언급한 한 대목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이기 때문이다.”

탁자마다 스탠드를 설치해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서관처럼 꾸며 놓은 덕수궁관 제2전시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탁자마다 스탠드를 설치해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서관처럼 꾸며 놓은 덕수궁관 제2전시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 소장품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림의 경우 115점 중 개인 소장이 76점으로 66%에 해당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뜻이다. 김 팀장은 “전시를 위해 문인 유족들을 많이 찾아다녀야 했는데, 존재를 몰랐던 작품들을 찾아내고 빌려오게 된 것은 의외의 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일제 말기 한글 잡지 ‘문장’에서 실무자로 일하던 조풍연이 41년 결혼할 때 받은 축하 화첩이 대표적이다. 정지용이 붓으로 글을 쓰고 길진섭·김규택·김용준·김환기·윤희순·이승만·정현웅 등 쟁쟁한 화가들이 축하 그림을 그린 30㎝ 내외의 화첩이다. 80년대 중반 한 미술 잡지에 일부만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혹시 몰라 물었더니 아직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이번에 대중 앞에 처음 공개된 사례다.

화가 최재덕의 그림도 마찬가지. 시인 김광균과의 인맥으로 최재덕의 유족을 수소문해 ‘한강의 포플라 나무’ 등 4점의 유화를 처음 선보일 수 있었다.

김인혜 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영역이 문인과 그 가족들이 소장한 미술 작품들에까지 미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이번 전시의 의미를 부여했다.

추사 후예가 제호 쓰고 단원 후손이 장정화 그린, ‘아름다운 책’들
김진악

김진악

김진악(86·사진) 전 배재대 교수가 최근 펴낸 『아름다운 책』(시간의물레)은 책이나 잡지의 장정에 참여한 문인과 화가의 작품을 모은 책인데, 특히 제호를 쓴 서예가들에 처음으로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특이하다. 1960년대부터 고서점을 다니며 모아온 수많은 책 중에서 고르고 추린 책의 제호와 표지 그림, 삽화, 낙관, 작가 자화상과 캐리커처, 그리고 권미에 들어가는 판권 인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사람별로 구분해 놓았다. 1부에서만 10명의 서예가와 18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2000년 정년 퇴임을 하고 범우사의 ‘책과 인생’, 월간 서예지 ‘까마’ 등에 틈틈이 연재해온 글과 사진을 묶었다. 영인문학관 등 3곳에 이미 수많은 책을 기증했는데, 주요 자료는 일일이 사진을 찍어 놓았던 것이 요긴하게 쓰였다.

사진 5

사진 5

사진 6

사진 6

“시간만 나면 고서점에 들러 이런저런 책을 구했지요. 전주의 한 책방에서 『진달래꽃』 초판도 구했는데, 나중에 배재역사박물관에 기증했어요. 소월이 배재 출신이니까. 나중에 TV 진품명품에 그 책이 나왔는데, 감정가가 3억원이라 하더만요. 집사람이 당장 찾아오라고 하더라고. 허허.”

『현대문학』과 노산 이은상이 번역한 『난중일기』의 제호를 쓴 소전 손재형,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사의 제호와 『한국의 목칠가구』(사진5) 등을 쓴 일중 김충현, 한국미술전집 『국보』의 여초 김응현, 국내 최대 판형(450 x 580㎜)에 가장 무거운(20㎏) 책으로 꼽히는 『백제』(사진6)의 제호를 쓴 하석 박원규 등이 참여한 책 표지와 글씨, 그림이 한가득 펼쳐진다. "대표적인 문예지 ‘문장’의 제호는 이태준이 추사의 글자를 채집해 썼다”(사진1)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추사의 후예들이 제호를 쓰고 단원의 후손들이 장정화를 그린, 온 세상에 유례가 드문 한국 책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시라”는 게 노학자의 권유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