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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자산어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장편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설경구)의 이야기다. 서학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유배길에 오른 그는 흑산도에 도착한다. 대역죄인이라며 경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거처를 정한 집의 가거댁(이정은)처럼 반기는 이도 있다. 정약전은 그곳에서 만난 창대(변요한)의 도움으로 물고기에 대한 책을 쓰게 되고, 그 책은 이 영화의 제목인 바로 ‘자산어보’다. 이 영화는 책을 쓰는 과정보다는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꼼꼼히 따라가며 감정을 만들어낸다.

자산어보

자산어보

섬에 도착할 때만 해도 정약전은 ‘깨어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삶 자체에서 성리학적 세계관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 상태였다. 이후 흑산도에서 세월을 보내며, 그 자연과 사람들에 융화되며, 그는 변해간다.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바로 약전과 가거댁의 툇마루 신이다. 두 사람의 거처를 가르던 공간에 그들은 실루엣에 가까운 뒷모습으로 앉아 있다. 조용히 현악의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는 조용히 들어간다. 먼저 가거댁이 약전에게 다가가 고개를 기댄다. 약전이 슬쩍 밀어낸다. 가거댁은 겸연쩍은 듯 물러난다. 이번엔 약전이 다가간다. 그리고 가거댁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아마도 이준익 감독의 가장 로맨틱한 장면으로 기록될 이 30초는 최근 한국영화의 잊을 수 없는 투 숏이다. 흑백 화면 안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로맨틱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 진정 힐링 되는 장면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