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어디일까. 가장 살기 좋은 아파트는?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남 더힐’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강북 도심과 강남의 중심을 관통하는 한남대로를 사이에 놓고 마주한 ‘나인원 한남’과 함께.
심재학당과 함께하는 풍수 답사 #(2) 서울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은 부자들이 사는 터 # 남산 자락 한남동은 부자가 되는 터" # BTS 숙소 한남더힐, 최고가 아파트 명성 # 영사관·대사관 몰려 외교 1번지로도 꼽혀
실제 한남 더힐은 지난 2014년부터 지금까지 공식 통계상 ‘가장 비싼 아파트’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한 채당 80억~90억 원에 거래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BTS(방탄소년단)의 숙소로 알려져 있고, 김태희·비 부부 같은 유명 연예인은 물론 구광모 LG회장 등 재벌 총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돈 많은 기업인이 많이 산다고 소문났다.
나인원 한남(341가구)도 한남 더힐(600가구)보다 단지 규모는 작지만, 빅뱅의 지드래곤, 배우 배용준 등 거주인 유명세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남동의 진짜 알짜배기는 하얏트호텔 인근 주택가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모여 사는 집단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동네 가장 높은 자리에 삼성 승지원(承志園)이 자리 잡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거주지였고,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업무를 보거나 중요한 손님을 맞는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승지원은 인근 리움미술관과 함께 삼성 가문의 상징적 장소다.
현대·SK·LG 등 4대 재벌은 물론 금호·두산·동부·롯데·태평양·신세계·농심·한진 등 상당수 재벌이 이웃사촌이다. 행정구역상 이태원동인 곳도 있지만, 통상 이 동네 전체를 한남동이라 부른다.
한국 최고 부자들이 한남동에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꼽는 이유가 하나 있다. 풍수지리다. 실제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이 동네 아파트와 주택을 소개할 때 ‘풍수가 좋은 곳’이라는 점을 핵심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풍수에서는 산의 형세를 사물이나 사람 혹은 동물에 비유하곤 한다. 이른바 형국론이다. 산· 물·바람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형성된 전체 모습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유물신앙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와우형(臥牛形)’은 소가 옆으로 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자자손손 누워서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부자가 나온다는 식이다.
풍수 전문가들은 한남동의 형세를 ‘영구음수(靈龜飮水)형’으로 본다. 남산에서 뻗어온 용맥이 한강을 만나는 형상을 신령스런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모습에 빗댔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의미한다. 장수(長壽)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거북이가 마르지 않는 한강 물을 취한다는 것은 그만큼 재물도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곳 사람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한강 조망권만은 양보 못 하는 이유가 바로 ‘물을 막는 것은 곧 재물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남산의 생김새가 말안장 같다고 한남동 형세를 ‘주마탈안(走馬脫鞍)형’이라고도 한다. 한반도 백두대간 1000리를 힘차게 달려온 말(좋은 기운)이 남산에 이르러 한강을 바라보며 안장을 벗고 편안하게 쉰다는 의미다. 영구음수형과 비슷한 뜻이다.
한남동 부자촌은 뒤로는 남산, 앞으로는 한강을 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고 그 사이로 (지금은 대부분 복개됐지만) 명당수 한남천이 흐른다. 더구나 삼대가 적선을 해야 얻는다는 남향이다. 통상 좌청룡은 명예와 귄위의 터이고, 우백호는 재물과 예술의 터로 해석한다. 그 사이 한가운데인 하얏트호텔 앞쪽은 둘을 아우르는 귀한 터로 보기도 한다.
서울의 부자 동네 중 성북동과 평창동은 옛날부터 왕(경복궁)이나 권력자(청와대)와 가까워 ‘부자들이 사는 터’이고, 한남동은 ‘부자가 되는 터’라는 말이 있다. 이 구분법의 핵심은 재물을 상징하는 물줄기(한강)의 유무일 것이다.
바로 이 한강 때문에 한남동을 에워싼 용산은 예로부터 도읍지 후보로 여겨졌다.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인 1101년. 고려 숙종은 풍수설에 따라 도읍지를 옮기려 했다. 후보는 지금 경복궁이 있는 백악(북악)과 용산이었다.
당시 도읍지 선정에 관여했던 재상 최사추가 살핀 용산의 핵심은 남산의 중심 산줄기(中出脈)가 지금의 하얏트 호텔 입구-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녹사평역-둔지산-미군기지-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지고 그 끝이 한강과 닿아 있는 점이다. 백악은 방어와 경관에 좋지만, 강을 끼고 있는 용산은 상업 발전과 무역을 통한 대외진출의 적지로 여겨졌을 터이다.
조선 건국 후에도 도읍지를 정할 때 태종의 측근 하륜은 백악보다는 무악(현재 연세대 일대)을 제안했다. 마포를 통한 한강 조운의 이로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하륜은 “숭례문에서 용산까지 운하를 파서 배를 통행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도읍지까지는 아니라도 그때 운하가 개통되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마을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 옆으로 난 길 이름이 유관순 길이다. 과거 이 주변에 있었던 공동묘지에 묻혔던 유관순 열사를 기념해 붙였다고 한다. 용산을 좌우로 내려다보는 길지다. 그 아래 녹사평 지하철역은 이용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규모로는 전국 1·2등을 다툰다.
지난 2000년 건설 당시 역 주변에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한다. 현대에도 도읍지급의 관청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되는 입지인 셈이다.
바다를 향한 길목인 용산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탓에 침략을 노린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다. 고려말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 기지로 사용했고,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진을 쳤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했고, 해방 이후에는 주한미군 기지로 쓰여 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남동은 부촌이기에 앞서 외교 1번지로 꼽힌다. 수시로 외교 사절들의 만남이 이어지는 외교부 장관 공관이 자리 잡고 있고, 30여 개 나라의 대사관과 영사관이 있다. 게다가 이태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글로벌 타운이다.
용산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得龍山 得天下)는 말이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닌 듯하다.
글=심재학당, 그림·사진=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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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학당은 풍수학자 심재(心齋) 김두규 교수와 함께 영역이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공부한다. 고서 강독과 답사를 하며 풍수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