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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장한나와 3주…'목포 신동' 자매는 꿈을 놓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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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0년 전 중앙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공동 기획한 '꿈을 후원합니다'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가운데)와 만난 장가행(오른쪽), 장신행 자매는 지금도 음악을 계속 하고 있다. 사진은 10년 전인 2011년 첼리스트 장한나(가운데)씨가 자신이 지휘하는 엡솔루트클래식 오케스트라에 초청한 장가행(오른쪽), 장신행 자매와 포즈를 취하는 모습 중앙포토

10년 전 중앙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공동 기획한 '꿈을 후원합니다'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가운데)와 만난 장가행(오른쪽), 장신행 자매는 지금도 음악을 계속 하고 있다. 사진은 10년 전인 2011년 첼리스트 장한나(가운데)씨가 자신이 지휘하는 엡솔루트클래식 오케스트라에 초청한 장가행(오른쪽), 장신행 자매와 포즈를 취하는 모습 중앙포토

“너희 음악 계속하려면 아빠 택시 팔아야 해.”

음악가를 꿈꾸던 장가행(25), 신행(23) 자매는 10년 전 어머니 김경란(52)씨의 폭탄선언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장 자매의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이후 사업이 어려워지며 빚을 내 마련한 개인택시로 생계를 이어갔다. 신장이 좋지 않은 할머니 병시중은 자매 어머니 김씨 몫이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다.

중앙일보·초록우산 ‘꿈 후원’ 그후 #어려운 형편 속 평생의 자극제 돼 #언니 장가행, 중등 음악교사 합격 #동생 신행은 서울대서 첼로 전공

가행·신행 자매가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자매는 광주교대 목포 부설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는 방과 후 활동으로 ‘1인 1악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악기를 골라보라”며 담당 교사가 악기별로 연주를 해주던 순간 언니는 가행 씨는 바이올린에, 동생 신행씨는 첼로 소리를 듣고 “필(feel)이 꽂혔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점심시간 딱 5분만 레슨다운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자매는 남들보다 월등했다. 자매 모두 전남 청소년교향악단에 들어갔고 콩쿠르에서 상도 탔다. ‘목포 신동’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친구들이 아이돌에 빠졌을 때도 언니 가행씨는 인터넷으로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Itzhak Perlman)에 대해 찾아보며 꿈을 키웠다. 신행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는 신체는 건강했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의 연주자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동생 신행씨도 음악이 좋았다. 성이 같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씨 연주 영상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보며 장한나 특유의 표정까지 따라 했다.

장신행씨가 지난 2017 제6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나눔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모습. 신행씨는 현재 서울대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하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제공 장신행씨

장신행씨가 지난 2017 제6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나눔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모습. 신행씨는 현재 서울대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하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제공 장신행씨

개인 연습실이 없어 음악 교사에게 빈 음악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매일 남들보다 1시간 일찍 등교했다. 그렇게 음악을 사랑한 자매에게 현실의 벽은 차가웠다. 택시를 팔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언니 가행씨는 “음악을 포기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속돼있던 교향악단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당시 교향악단의 단장은 아동복지단체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자였다. 그는 자매에게 인재양성 지원 서비스를 추천했다. 자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의 아동·청소년 가운데 재능이 있는 아이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 ‘아이리더’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기적이 이어졌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중앙일보가 함께 기획한 ‘꿈을 후원합니다’를 통해 우상이던 첼리스트 장한나씨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2011년 8월 가행·신행 자매는 장한나씨가 지휘를 맡은 연주회에 참여해 공연을 펼쳤다. 경기도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합숙연습 한 3주는 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장가행 씨는 “장한나 멘토를 만나면 묻기 위해 10개도 넘게 질문을 준비했는데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서 하나도 못 물어봤다”고 말했다.

이날 합주는 우물 안에 있던 자매에게 큰 자극이었다고 한다. 가행 씨는 “당시 명문대에 다니던 언니들은 활로 소리 내는 법 자체가 달랐다”고 했다. 신행 씨는“보통 연주회를 위해 밤 8시가 넘어가면 연습을 쉬었는데 저희 자매는 매일 자정에 연습실 문 닫힐 때 경비아저씨와 ‘하이파이브’하고 숙소로 왔다”고 했다. 장한나 씨는 자매에게 “소리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0년 뒤 자매는 

그 뒤 10년이 흘렀다.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가 해주는 5분 레슨에 목말라했던 초등학생 자매는 어느덧 어른이 됐다. 언니 가행씨는 지난 3월 임용고시에 합격해 음악 교사가 됐다. 동생 신행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있다. 가행씨는 “아이들이 성장할 때 문화적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저 역시 생계 지원만 받았다면 절대로 음악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임용고시에 합격해 음악 교사가 된 장가행(가운데) 씨가 제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 제공 장가행씨

지난 3월 임용고시에 합격해 음악 교사가 된 장가행(가운데) 씨가 제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 제공 장가행씨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대가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을 가족, 학교가 주면 좋지만 저는 사회에서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받은 사랑을 교사로서 음악가로서 꼭 돌려주며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꿀 수 있게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행씨는 “장한나 멘토와의 만남은 인생에서 처음 ‘하면 된다’는 걸 알게 해준 경험이다”며 “꿈을 따라갈 때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이 온다. 그래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아이리더’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009년부터 612명의 아이에게 147억 원을 지원했다. 장씨 자매 외에도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씨도 이 프로그램의 후원을 받았다. 김수정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 사회복지사는 “부모의 교육 및 소득 수준에 따라 아이의 교육 편차는 최대 10배 이상 난다. 문화적 격차는 더 하다”며 “생계형 지원이 아닌 문화 지원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아이들이 현실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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