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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집단 우울증’ 앓는 한국사회 시급히 치유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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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울증을 치료받은 사람이 지난해 1년간 100만명을 넘었고 3년 새 2배로 늘었다는 충격적 사실이 최근 발표된 국민건강보험 자료에서 확인됐다.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병원을 방문하는 비율이 약 22% 정도이니 실제로는 400만~500만 명이 우울 증상을 보인다고 유추할 수 있다.

코로나 장기화, 성과 압력이 원인 #공정·상식 통하는 사회 만들어야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관계가 차단된 지 벌써 1년을 훌쩍 넘겼다. 한 연구 보고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외부 활동의 제한과 사회적 고립으로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람이 75%나 된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은 우울·분노·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증가시킨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은 이런 증상을 심화시키기에 코로나로 인해 소상공인의 매출이 25%나 감소했다는 통계에도 주목할 만 한다.

이처럼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가 불러온 변화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울을 넘어 무기력과 의욕상실은 물론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좌절감과 열심히 해도 달라질 수 없다는 허무감에 빠지는 ‘소진(burn-out) 증후군’을 보인다

LH 투기 사건, 내로남불, 평등과 공정의 가치 상실 등으로 인해 민심의 분노가 이번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폭발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특히 젊은 층인 20·30세대의 좌절과 분노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거주에 대한 불안정과 취업 절벽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분노의 이면에는 우울이 있다. 우울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이다. 정신적 에너지가 자신에게 향하면 우울해지지만, 외부로 향하면 분노로 표출된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과 급격한 세금 부담 증가는 국민에게 심리적 박탈감·무력감·우울감과 동시에 분노를 심어 줬다.

프로이트는 우울 증상은 상실에서 온다고 분석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의 상실로 사회 전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문화비평가인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인 『우울 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우울·불안·과로 등의 신경증적 요소로 가득 찬 사회로 특징지었다. 심리적 구속과 정체성의 불안정성, 개인의 무력감이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또한 우울증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좌초됨으로써 얻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한병철은 우울증의 배후에는 이러한 성과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압력이 놓여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으로부터 개인의 반성과 자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울과 분노의 사회인 한국사회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한병철의 관점에서 보면 성과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 보다 삶의 질, 도덕성, 공정성과 같은 원칙, 그리고 이로 인해 젊은 층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거짓과 가식, 불법으로 얻은 정보를 통한 부의 축적, 부정 입학으로 인한 기득권 유지는 지나친 성과 중심 사회가 가져온 어두운 단면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눈에 공정·정의·평등이라는 상식적인 가치의 혼란을 초래한다. 이러한 가치의 상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상실도 사회 전체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코로나 극복은 물론이고, 동시에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의 복귀가 현재의 암울한 우울 사회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복귀가 시급하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속하는 사회적 고립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가족·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재정립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도 우울감을 벗어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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