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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출산 공론화 첫발…10명 중 6명 비혼 출산 佛서는 입법 진통 중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비혼(非婚) 출산의 공론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해외에서도 합법 여부와 관계없이 관련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은 있지만 출산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자는 목소리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2019년 보건복지부 용역을 받아 작성한 ‘생식세포 및 배아의 안전한 보관·활용을 위한 관리체계 구축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체외수정(IVF) 같은 보조생식술을 규제하는 법은 없다. 특정 주를 제외하고 대체로 규제하지 않는다. 미국생식의학회(ASRM) 등에서는 보조생식술 제공에 대해 결혼 여부나 파트너의 상태, 성적 지향 등과 상관없이 개인들 요구에 동일하게 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싱글인 개인, 결혼하지 않은 이성,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 접근을 막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방송인 사유리. 일간스포츠

방송인 사유리. 일간스포츠

프랑스에서는 독신 여성이나 동성 커플도 보조생식술을 통해 출산할 수 있게 한 법안 통과를 두고 찬반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는 결혼한 부부나 동거한 지 2년 넘은 이성 부부에게만 체외수정과 인공수정, 정자기증을 허용하는데 2013년 동성 결혼을 허용하면서 동성 커플이나 비혼 여성에게도 재생산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관련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마련되긴 했지만 의회에서 최종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19년 기준 신생아 10명 중 6명(61%)이 혼외 출산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41%, 2018년 기준)보다 높다. 평등권 단체들은 영국·스페인·벨기에 등 대부분의 주변 유럽 국가 사례를 들어 비혼 출산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명 윤리 기반을 흔든다며 전통적인 가톨릭 단체나 극우주의자들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지난 2019년 파리에서 보조생식술 확대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수만 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냉동정자의 모습. 사진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냉동정자의 모습. 사진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캐나다에서도 보조생식술을 받으려는 이들의 성적 취향이나 결혼 여부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단 18세 미만에게 생식 세포를 기증받는 행위는 금지한다.

전문가 집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는 일본서도 여성이 정자 기증으로 출산할 수 있는 길을 터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 제도에 의한 게 아니라 의사학회 등에서의 지침, 견해에 따라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출산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방송인 사유리(42·후지타 사유리)가 비혼 단독 출산 문제를 어젠다로 띄웠고, 여성가족부가 27일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20대 55%, 30대 56% 정도가 수용할 수 있다고 답한다”며 “비혼 출산에 대한 우리 사회 수용도가 많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비혼 출산을 금지하는 법 조항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관계부처인 복지부는 일단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설문조사를 거치고 전문가 간담회 등을 열어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삼식 고령사회연구원장(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비혼 출산에 대해 도덕적으로 찬반을 논하면 공허한 얘기로 그친다”며 “사회적으로 비혼 출산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모성과 아동 보호 등의 큰 차원에서 목표를 정한 뒤 관련 제도를 일단 만들어 정착시켜 가야 한다. 그래야 문화가 성숙해지고 사회적인 수용성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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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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