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처방률 공개…반응 엇갈려

중앙일보

입력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9일 목감기와 인후염 등 급성상기도감염 환자에 대한 병원별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한 데 대해 각 병원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특히 항생제 처방률이 전혀 없는(0%) 것으로 나타난 일부 병원은 "감기에 항생제를 쓸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 반면 처방률이 높게 나타난 병원은 나름대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면서 항변했다.

하지만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병원일수록 단순 감기환자를 진료한 경우가 많았 고, 항생제 처방률이 높게 나타난 병원은 감기로 인한 합병증 환자가 상당수를 차지 한 것으로 분석됐다.

항생제 처방률 0%로 집계된 부산 동석의원의 김홍술(72)씨는 "대부분의 환자가 감기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면서 "감기 합병증이 아니고 일반적인 감기증상이라면 굳이 항생제를 쓸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만약 감기로 인해 다른 합병증이 발생했다면 항생제를 처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동석의원은) 동네 병원이다 보니 중증 환자가 없어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남 강진군에서 후생의원을 개업 중인 김옥경(78.여)씨도 "특별히 항생제 처방을 안하려고 한 게 아니고 대부분이 일반적인 감기증상이어서 항생제가 불필요했다"면서 "감기로 인한 합병증 환자가 적은 게 항생제 처방을 많이 내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당수 동네 의원 등의 경우 단순 감기 환자를 상대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의료기관으로 지목된 병.의원들은 나름대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댔다.

종합전문병원 가운데 항생제 처방률 3위로 집계된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경우 백혈병 및 혈액종양환자가 많아 항생제 처방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백혈병, 혈액종양환자, 조혈모세포이식 환자가 전체 환자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타 병원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면서 "면역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의 치료과정에서 감염의 의한 사망을 줄이기 위해 부득이 항생제 사용이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백혈병이나 혈액종양환자 등의 경우 치료과정에서 감기 등의 급성 상기도염이 발생할 경우 자칫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는 만큼 항생제 처방으로 감염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항생제 처방이 많았다는 게 병원측 설명이다.

항생제 처방률 7위와 10위에 오른 인제대 백병원과 부산 백병원도 중환자 비율이 높은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항생제 처방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서울 백병원의 경우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의 감염을 막는 차원에서 항생제 처방이 많았다"면서 "부산지역에서 중환자 비중이 높은 부산 백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병원 고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는 것은 자칫 의료 소비자들한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이번 정부의 발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일반 의원 가운데 항생제 처방률이 99%에 달한 것으로 집계된 한 병원 의사는 "환자들이 감기 합병증에 해당하는 호흡기 질환이나 중이염, 장염 환자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면서 "환자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항생제 처방률이 높다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종근)도 이날 성명을 내고 "자칫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배제하는 붕어빵식의 진료를 의사에게 요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협의회는 병의원 항생제 처방율 공개로 인한 의사들의 소신진료 위축 및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 침해, 국민 건강권 침해 등의 악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공개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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