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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초상화 주문은 주름 푹푹 넣어 그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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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문성식 작가가 그린 윤여정 초상화. [사진 국제갤러리, 문성식]

문성식 작가가 그린 윤여정 초상화. [사진 국제갤러리, 문성식]

“초상화 주문이 ‘못생기게 그려라, 늙은 거 주름 푹푹 넣어 그려라’였다. (웃음) 원래 쿨한 건 알았는데 첫 만남부터 내숭 같은 게 없었다. 화가로서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다.”

문성식 화가 4년 전 초상화 작업 #“그림 보고 첫 반응 별로 안 닮았네”

지난 2017년 패션잡지 ‘바자’ 의뢰로 윤여정 등 다섯 여배우의 초상화를 그렸던 문성식(41) 작가는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미술계에서 ‘평범한 일상을 세필로 포착하는 풍경화가’로 이름난 그가 초상화 작업에 나선 것은 “흥미를 느낀 인물들을 만나고 싶은 것도 한 이유”였다. 특히 그가 꼭 만나길 원했던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첫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타면서 문 작가는 ‘오스카 수상자를 그린 화가’가 됐다.

문성식

문성식

초상화를 그린 계기는.
“국제갤러리와 잡지사 공동으로 추진한 작업이었다. 매력이 느껴지고 작가로서 영감이 떠오르는 분들을 꼽아달라기에 후보군을 드렸는데 섭외가 맞아떨어진 배우가 윤여정·임수정·김옥빈·천우희·정은채다. 특히 윤여정은 다들 원했고, 나 역시 나이 든 분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젊은 분들은 요구가…(웃음)”
피사체로서 윤여정은 어땠나.
“꾸미지 않고 직설적인 분이다. 평소 표정이 굉장히 시니컬한데 만나보니 그대로였다. 바쁜 분이라 계속 앉혀놓고 그릴 순 없어서 사진 촬영을 했는데 인위적 포즈를 취하기보다 ‘아, 그만 찍어’ 이런 식이셨다.”
기초 스케치. [사진 국제갤러리, 문성식]

기초 스케치. [사진 국제갤러리, 문성식]

그는 배우 각각에 특정한 꽃을 결부시켜 배경에 그렸는데 윤여정은 ‘저먼 아이리스’(독일 붓꽃)라는 품종이다. ‘꽃과 여자5’라는 제목의 작품 속 윤여정은 길쭉길쭉한 꽃들을 배경으로 마치 모딜리아니 인물화 속 여인처럼 길쭉한 모습이다. “꽃이 우아하면서 그로테스크한 게 윤여정씨와 잘 어울린다 싶었다. 내가 인물을 전형적으로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목과 팔길이를 왜곡했고 뚱한 표정을 잡아냈다. 개인적으론 다섯 분 가운데 가장 닮게 그린 것 같다.”

완성된 초상화를 봤을 때 윤여정의 첫 반응은 “나랑 별로 안 닮았네”였다고. 그러면서 “문성식 작가가 원래 똑같이 그리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자기 방식대로 그리는 화가라고, 좋네요”라고 덧붙였다. 초상화 경험에 대해선 “내 나이에 신기한 일은 별로 없다. 그저 나는 피사체가 되는 거고 저이는 프로페셔널이니까 그가 임무를 완수하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다섯 여배우 초상화 중 현재까지 윤여정 작품만 팔렸다.

문 작가는 “그날 현장에서 전자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잡지에 실릴 초상화라 그걸 그릴 순 없었다. 기회가 되면 그 모습을 담고 싶다. 회색 머리카락 할머니가 주변을 개의치 않고 담배를 문 모습, 참 매력적이더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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