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 논문조작 발표에도 변치 않는 황 교수 지지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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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하나만 매장시키면 된다는 그 무리와 끝까지 싸워 이길 것입니다."

21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앞 열린시민마당. 전국에서 모여든 황우석 교수 지지자 2500여 명이 손에 든 태극기를 흔들며 '연구 재개' '특허 수호' 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아침이슬'을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한 여성은 "나라 위해 일하신 당신의 손/사랑스럽습니다/당신의 손 외면하는 자/거짓을 말하는 자/죽을 것입니다"라며 헌정시를 낭독했다.

참석자들이 '아, 대한민국'을 합창한 뒤 재미 과학자로 소개된 조모씨가 단상에 올라 "난자 공여 등 소모적인 윤리논쟁을 중단하고 우리의 생존권을 사수하자"고 소리쳤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촛불집회는 '아이러브 황우석'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황우석연구재개국민연합'이 주최한 행사다. 황 교수와 아무 관련 없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일반 시민들도 상당수였다.

서울대 조사위가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을 발표했지만 황 교수에 대한 이들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이번 주 중 서울대 정명희 조사위원장을 황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일단 서울대 조사위를 못 믿겠다고 한다. 이영실 국민연합 대외협력국장은 "서울대 조사위는 기본적으로 검증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저명한 해외 학자들도 평가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일반 교수들이 평가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일본 도쿄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그는 "조사위 최종 발표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서울로 왔다"고 했다.

논문 조작도 지엽적 문제로 본다. 척수장애인협회 정하균 회장은 "도공이 훌륭한 작품을 만든 뒤 이 사람 저 사람 보다가 깨져버린 상황인데 도공의 기술은 인정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가 주변의 조직적인 음모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는 강한 심증도 갖고 있다. 5살.3살 두 아이를 데리고 집회에 나온 주부 장미숙(42)씨는 "서울대 의대 측의 기득권 수호 책략이나 미국과의 특허관계에 얽힌 음모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치열한 국가 간 경쟁 속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황 교수 연구를 재개시켜야 한다는 애국주의.민족주의적 시각도 짙다. 회사원 이화룡(49)씨는 "최소한 황 교수의 특허만이라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사회심리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대 장덕진(사회학)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인질과 납치범이 협력관계를 형성하는'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며 "황 교수가 국가적인 영웅이었기 때문에 독도 문제처럼 국운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황 교수에 대해 너무 많은 희망을 가져왔다"며 "종말론자들이 종말이 온다고 했다가 안 오면 낙담을 하기보다 '이번이 아니라 10년 후에 온다더라'하고 또 다른 희망을 갖게 되는데 이번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득하려는 인지부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스톡홀름 증후군이란=인질극 상황에서 인질들이 그들을 풀어주려는 군이나 경찰보다 인질범에게 동조하는 심리상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벌어진 은행 강도사건을 계기로 생겨난 용어다. 사건 초반 강도들을 두려워하던 인질들은 인질극이 진행될수록 강도들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6일간의 인질극이 끝난 뒤 실시된 경찰 조사에서 인질들은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여성 인질은 강도 한 명에게 애정을 느껴 이미 약혼한 남성과 파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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