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드, 3월부터 “백신 협력” 선언…모호성 집착, 쿼드 멀리한 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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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대구 수성구 육상진흥센터에 설치된 수성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수성구 접종센터는 전날부터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23일 대구 수성구 육상진흥센터에 설치된 수성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수성구 접종센터는 전날부터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미국이 코로나19 백신에서도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협력’을 꺼냈다. 백신을 핵심 기제로 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재건 과정에서 쿼드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쿼드 참여를 피해온 한국이 백신 수급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美 국무부 연일 “쿼드와 백신 조율”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인도에 대한 백신 원료 수출 규제를 완화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미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가지 못 하도록 하는 데도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캐나다, 멕시코와 백신 대여 약속을 했고, 인도에 대해서는 백신 생산 역량 증강을 포함, 쿼드 차원에서 조율해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날 백신 관련 질문에도 “우리는 쿼드와 백신 문제를 조율해왔다. 우리가 국내 백신 접종 노력에 있어 보다 편안하고 자신있는 상황이 되면서 우리가 그(백신 국내 공급) 이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재로서는 국내 접종이 우리의 초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자국민 건강이 최우선이란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백신 문제를 글로벌 리더십 재건과도 연결시키는 분위기다. 프라이스 대변인도 백신 관련 설명 중 수차례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썼다. 또 미국이 현재 국내 접종에 집중하는 또다른 이유에 대해 “미국이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국가이기 때문에 미 본토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잡지 못하면 변이가 발생하고, 다른 곳으로 퍼질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미국의 누적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게 사실이다.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 때의 ‘아메리카 퍼스트’같은 자국 이기주의는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한 셈이다.

쿼드, 세계 ‘백신 질서’ 지분 확보

이런 가운데 미국이 백신 협력에서 지속적으로 쿼드를 언급하는 것은 이를 이미 전략적 판단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이 여유분의 백신을 곧바로 쿼드 국가들에게 주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하지만 향후 백신이라는 전략물자를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다시 쓰여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쿼드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다양한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백신 접종률이 국가 경제 성장률과 직결된다는 지표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과도 연결시켜 생각해볼 문제다.
사실 미국이 ‘백신 판’도 쿼드와 함께 짜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화상으로 열린 쿼드 정상회의 뒤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4개국은 이미 백신 협력 방침을 천명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쿼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쿼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4개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안전하고, 감당할 수 있는(비용의), 효과적인 백신을 위해 힘을 합칠 것”이라며 “우리는 인도 태평양의 공평한 백신 접근권 강화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 보급을 위한 우리의 선구자적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백신 전문가 워킹 그룹을 창설하고, 우리 4개국의 의학ㆍ과학ㆍ재정ㆍ제조ㆍ배송ㆍ개발 역량을 결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쿼드 백신 전문가 회의도 소집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미국은 어제 쿼드 백신 전문가 그룹 회의를 주최했다. 2022년 말까지 세계에서 최소 10억회 분의 코로나19 백신이 사용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회의 공동성명이 선언적 내용에 그친 게 아니라 구체적 계획으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ㆍ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며 쿼드에 연관되는 것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쿼드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상 중국 견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쿼드 정상회의 직후인 지난달 17~18일에는 미국 국무ㆍ국방장관이 방한해 한ㆍ미 간 외교ㆍ국방(2+2) 장관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백신 분야에서 쿼드와 협력의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공동성명에는 쿼드란 단어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백신과 관련한 내용도 없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 국방 장관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 국방 장관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당시 회의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쿼드는 모든 이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생각이 비슷한 국가들 간의 비공식적(informal) 모임”이라며 한국과 긴밀하게 계속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이 쿼드 참여에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는데,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정의용 “쿼드-백신 연관 없다”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협의를 앞둔 지난 1일에도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화 브리핑에서 “(쿼드와 관련해)한국 친구들과 매우 긴밀히 협의해 왔다. 몇몇 이니셔티브에 (한국이)비공식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며 “한국 친구들과의 더 긴밀한 협의나 참여를 언제든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쿼드 공식 참여를 요청받은 적 없다”고 했다. 또 “개방성, 포용성 등 우리의 원칙에 부합한 어떤 협의체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기존의 신중한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미국산 백신 확보를 위해 쿼드 참여 등의 반대 급부를 미국에 제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백신 분야는 미ㆍ중 간 갈등이나 쿼드와는 연관이 직접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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