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본인 부고기사 읽고 싶어 죽은 척, 괴짜 음악가의 첼로 협주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클래식 음악 역사상 유명한 괴짜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프리드리히 굴다(오른쪽)와 그가 1980년 작곡한 첼로 협주곡을 한국 최초로 녹음한 첼리스트 김민지. [사진 스테이지원, 중앙포토]

클래식 음악 역사상 유명한 괴짜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프리드리히 굴다(오른쪽)와 그가 1980년 작곡한 첼로 협주곡을 한국 최초로 녹음한 첼리스트 김민지. [사진 스테이지원, 중앙포토]

첼로가 짧고 격정적인 연주를 한다. 이어 클라리넷, 플루트, 트럼펫, 호른 같은 관악기에 드럼까지 더해진 오케스트라가 이어받는다. 빠른 2박의 음악은 무도회장에서 나올 것처럼 경쾌하고 흥겹다. 정신없는 서커스에서 나올 법한 행진곡으로 총 5악장의 음악은 끝이 난다. 종잡기 어려운 독특한 작품이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굴다 작품 #첼리스트 김민지, 한국 최초 녹음

규정하기가 힘들고 ‘이상한’ 이 작품은 프리드리히 굴다(1930~2000)의 첼로와 윈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굴다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피아니스트 중 하나였지만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린 괴짜였다. 연주와 함께 작곡도 한 굴다는 첼로 협주곡을 1980년 썼다. 첼리스트 김민지(42)가 지난달 말 음반으로 냈고, 한국 최초의 녹음으로 기록됐다.

김민지는 “어떻게 이런 곡이 있을까 싶도록 독특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3악장에는 ‘1분 30초 동안 특정한 주법으로 즉흥적으로 연주하라’는 지시어가 있다. 그걸 갑자기 만들어내야 한다. 곡 전체에 걸쳐 첼로 한 대가 관악기들의 큰 음량을 뚫고 나와야 해서 숨 쉴 곳이 없는 음악이다.” 무엇보다 김민지는 “노골적으로 거리의 음악을 쓴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굴다는 바흐·모차르트·베토벤의 조형미를 살려 결점없이 연주한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다. 오스트리아에서 타고나 어린 시절 데뷔했고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16세에 우승했다. 김민지는 “굴다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정말 좋아해 파고들어 가다 이 곡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영재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주목받던 굴다는 곧 평범하지 않은 행보를 시작했다. 10대 시절 나치 정부가 재즈를 금지하자 재즈 공연을 연 이후 50년대 본격적으로 재즈에 빠져들었다. 직접 색소폰을 불기도 했고, 칙 코리아와 같은 재즈 뮤지션과 함께 무대에서 파격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또 클래식 공연에서도 재즈식 즉흥 연주를 펼쳤다.

가장 유명한 기행은 99년 가짜 부고 사건이다. 그는 그해 부활절 즈음에 자기 죽음을 직접 오스트리아 언론사에 팩스로 보낸 후 본인의 부고 기사들을 일별했다. 이후 소속사를 통해 본인이 살아있음을 알린 굴다는‘부활 파티’라는 제목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독주회에는 클럽 댄서들을 등장시켰다. 그는 “살아있을 때 나를 비평하던 이들이 내가 죽은 후 어떤 평가를 할지 궁금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1년 후엔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

김민지는 “20세기 가장 독특했던 예술가의 자유로운 생각이 담긴 작품”이라고 첼로 협주곡을 소개했다. “굴다에 대해 이런 일화를 들었다. 연주를 마친 그가 갑자기 옷을 다 벗고 일어나면서 ‘나는 자유롭다!’고 외치며 나갔다고. 작곡가의 정신을 음악 곳곳에서 발견한다.” 굴다는  하와이안 셔츠, 중동 스타일의 모자, 옅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다. 70년엔 본인이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며 ‘정말 푸른 도나우(Donau so blue)’라는 재즈 앨범을 내고는 “재즈 싱어 ‘알버트 골로윈’과 함께 했다”고 사람들을 속였다.

음악학자 알렉산더 카펜터는 2017년 논문에서 굴다의 기행에 대해 “음악 장르에 대한 높은 수준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클래식 음악이 정제된 상태로 표현되는 점, 음악회가 정해진 관습에서 열리는 상황, 음악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청중 등을 비판하려는  행동이었다는 뜻이다. 김민지는 “첼로 협주곡에도 고급 예술과 대중음악의 구별을 무색하게 하는 많은 시도가 들어있다. 전자 음악과 락의 음향이 중세 시대풍의 음악과 경계 없이 섞인다”고 소개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