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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보호법 시행 후 말 바꾼 세입자, 법원서 또 승소

중앙일보

입력

서울 시내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세입자 “전세 연장할 수 있나요? 지금 결정해줘야 다른 봐둔 곳에 이사할 수 있어요.”

집주인 “연장은 어려울 것 같으니 그럼 그곳에 말하세요.”

세입자 “알겠습니다.”

집주인과 임대차계약을 끝내기로 합의한 후 말을 바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더라도 유효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7월 새로운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해 세입자에 유리한 판결이 이어지는 추세다.

세입자 A씨는 임대차 계약 만료 3개월 전인 지난해 7월 30일 집주인에게 “계약 연장 안 할 거면 이사 갈 곳이 있으니 빨리 답변을 해 달라”며 계약 연장 여부 결정을 재촉했다. 임대차 3법 시행 하루 전이었다. 이에 집주인은 연장은 어려우니 이사 갈 곳과 협의하라고 말했고, A씨는 알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A씨에게도 그해 8월 3일 새로운 임대차계약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일주일 뒤 A씨는 갑자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 결국 이사를 하지 않아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에게 계약금 전액을 반환하면서 별도로 1000만원의 위약금을 배상했다.

집주인은 서로 임대차계약 종료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므로 임대차계약은 종료된 것이라며 세입자에게 건물을 인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의정부지법 민사9단독 강진우 판사는 지난 13일 세입자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소송비용 역시 집주인이 부담하라고 결정했다.

강 판사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A씨가 임대차계약을 종료할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진정한 의사는 이사 갈 곳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임대차계약을 종료하겠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이주할 곳이 없게 되더라도 이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 집주인 역시 이러한 세입자의 의사를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봤다.

강 판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하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을 위해 특별히 세입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규정이므로 이 취지에 비추어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시적이고 종국적으로 표시한 경우에만 포기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민경 변호사(법무법인 명도)는 “법률 행위에서 의사의 합치가 있었는데도 이를 무효로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번 판결도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사전에 나가기로 합의가 되어도 번복하고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해설과 일치한 판결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세입자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 이내에 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집주인이나 가족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는 갱신을 거절할 수 있지만, 전세계약 만료 최소 6개월 전에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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