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에이징

‘친밀·열정·헌신’ 세 가지 갖춰야 변심 않고 사랑 지속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1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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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호 28면

러브에이징

국내 세도가들의 위선을 조롱하는 단어 ‘내로남불’이 4·7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세계 언론에 등장했다. 170년 전통의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 150국에 지국을 둔 로이터통신은 한국의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한 원인을 ‘Naeronambul(내로남불)’로 적시하고 그 뜻이 ‘My romance, your adultery(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라는 해설도 덧붙였다.

이성·가족·정치인 등 매한가지
상대방과 신뢰·희망 주고받아야

자신의 잘못 ‘모르는 일’ 부정
남 탓만 하는 ‘내로남불’ 성행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 필요

내로남불의 핵심은 내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다. 오만과 탐욕으로 채워진 위선의 표출인데 공자가 지적하는 전형적인 소인배 짓거리다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는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 탓을 한다, 논어 위령공편).

사실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행위는 사피엔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피해자와 갈등·충돌·긴장 등을 직면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남의 잘못을 인내하고 용서하는 일도 본능에 반한다. 타인의 잘못을 쉽게 용서하다간 배상도 못 받고 호구 취급받을 위험성이 있어서다. 자연 인간의 본능은 최대한 자신의 잘못은 부정하고, 남의 잘못은 끝까지 추궁하는 이기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물론 공동체 문화가 정착하면서 개개인이 저마다 이기심을 추구하는 행동에는 제동이 걸렸다. 공동체는 개별적 본능은 억제하고 집단의 이익을 따르는 방향으로 규율이나 상벌 원칙을 만들기 마련인데 구성원 모두가 따르기는 어렵다.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적 이기심과 욕망을 통제하려면 꾸준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명화된 사람은 본능을 드러낼 때 원초적인 모습 대신 복잡한 기교를 이용한다.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체면도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본인의 속내를 속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장 단순하고 흔한 방식이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일”이라며 딱 잡아떼는 ‘부정(否定)’이다. 비록 거짓말은 하더라도 잘못을 무마하려는 노력은 하는 셈이다. 증거가 제시돼 부정 기법이 통용되기 어려울 땐 잘못의 원인을 나 아닌 남 탓으로 돌리는 ‘투사(投射)’를 동원한다. 상대가 돈을 보여줘서 훔치게 됐다는 식이다. 죄책감에 시달릴 땐 ‘기억 착오’로 잘못을 변질시키고, 온갖 궤변을 동원해 잘못을 ‘합리화’ 시키려고도 한다. 가장 바람직한 심리적 기제는 성욕·폭력성 등 원초적 본능을 문화·예술·종교·일·학문 등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또 본능인 이기심을 포기한 채 남을 도와주면서 대리만족을 얻는 이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4·7 선거와 관련된 정치권의 언행은 단순하고 미숙한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여론조사가 민심 이반을 보여주는데도 “거의 이긴 것 같다(부정)”, 20대의 낮은 지지율은 “경험치가 낮아서(투사)”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다 막판까지 수세가 지속하자 “그간 부족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지식화)”며 읍소했다. 선거가 끝나자 잠시 반성 모드를 보이는 듯하더니 또다시 언론 탓, 심지어 유권자 탓(투사)으로 돌리는 분위기를 드러낸다.

사실 선거 결과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은 패인 분석에 분주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의 반응은 담담하다. 부동산 폭등, 코로나19 백신 수급 실패, 왜곡된 검찰개혁, 조국 교수 사태, 윤미향 의원 사건, 외로운 대북정책 등으로 분노와 실망이 누적돼 촛불 정부에 대한 사랑에 마침표를 찍은 촛불 시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오세훈 대신에 막대기를 출마시켰다면 아마 표차는 더 컸을 것”이라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이 대중적 공감을 얻는 이유다.

사랑은 인간 사회에서 개인이건 집단이건 좋은 관계를 지탱시켜주는 보편적, 근원적 감정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려면 ‘끊임없이’ 상대방과 신뢰와 희망을 주고받아야 한다. 혹여 한쪽의 소홀이나 변심으로 신뢰가 불신으로,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면 사랑은 언제라도 떠난다. 사랑의 속성이 ‘유동성’과 ‘유효기간’을 가지는 불안정한 감정인 데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사피엔스는 이기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도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천륜이라는 가족 간의 사랑에도 이기심이 발동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물며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사랑은 당연히 ‘내 삶에 도움이 될 때’라는 기대를 매개로 한 조건부 사랑이다.

사랑은 복잡하고 상호적인 감정이며 내 욕심이나 갈망만으로 얻기는 어렵다. 코넬대 인지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사랑은 친밀감, 열정, 책임(헌신) 등 세 요소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의 균형 상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표 참조〉. 성숙한 사랑은 당연히 세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추고 있을 때다.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이성, 가족, 친구, 정치인, 유권자 등 대상과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은 같을 것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최적의 균형을 이루는 그 지점을 찾아가는 여정은 비록 힘들더라도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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