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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년, 생각 다른 청년 공부하듯 이해해야 갈등 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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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28면

[러브에이징] 세대간 장벽 없애려면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인 청년층이 4·7 재보선 선거를 계기로 권력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스윙보터(swing voter)로 급부상했다. 정치권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묘안 마련에 분주해 보인다. 마음이 다급한 차기 대권 주자들은 1000만원(대학 미진학 청년), 3000만원(군 복무 청년), 1억 원(20세) 등 국고를 동원한 현금 지원 방안을 제안한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기득권층은 청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청년은 명예, 노인은 실용적 이익 #중년은 아래·위 세대 절충점 모색 #성장 배경·추구 가치 달라 세대 차 #투명한 진실로 겸허하게 접근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 간에는 신체적 차이만큼 정신세계도 다르며 이견과 갈등이 상존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성인기를 청년·중년·노년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본질적인 특징과 차이점을 분석했다.

우선 청년들은 감각적 기쁨을 추구하며 열정적이고, 충동적이다. 인생 경험은 짧고 미래가 길다 보니 두려움이 적고 내면에는 확신·희망·용맹으로 가득 차 있다. 남에게 속아본 일이 많지 않아 마음이 고귀해서 돈이나 실리보다 명예·승리·우월감 등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잘못도 사악함보다는 교만 때문에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청춘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느낌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노인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살아온 세월은 길지만 남은 생이 짧은 노인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주로 옛일을 회상하며 지낸다. 지나온 세월 동안 속았던 경험도 쌓여 타인을 대할 때 의심이 많고 나쁜 면을 먼저 본다. 이기적이며 고귀한 가치보다 실용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년과 노년 사이에 낀 중년은 인생의 황금기인데, 아래·위 세대의 중간 지점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행동한다. 지나친 자신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고, 타인을 마냥 믿지는 않지만 불신하지도 않는다. 매사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려고 노력하며 열정과 용기, 고귀함과 실리를 지혜롭게 조율하려고 노력한다.

2400여 년 전 분석한 인생의 시기별 특징이지만 지금도 많은 현대인이 공감한다. 단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던 시대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체적 황금기는 30대 초반, 정신적 황금기는 49세로 봤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긴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정신 발달과정에서 청년은 초기 성인기(20~40세), 중년은 중기 성인기(40~65세), 65세 이상은 노년기로 구분한다. 시기에 따라 생각과 행동은 구별되지만 신분 사회, 변화가 더딘 사회는 모든 세대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일이 흔했다.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하는 사안도 많았고 윗세대로부터 답습해야 할 일이 많아 기득권층이 사회에서 어른 역할을 하기도 쉬웠다.

반면 대한민국은 지난 60년간 경제 분야에서 고속 성장을 지속하면서 사회문화적 상황이 급변해 왔다. 2021년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청년층·중년층·노년층은 성장 배경부터 후진국·중진국·선진국으로 판이하다. 동 세대 간에도 처한 환경이 다르면 소통이 쉽지 않다. 하물며 세대 간 장벽까지 겹친 상황에서는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다.

실제 지금의 20대는 1인당 국민소득이 출생 시 8000~1만 달러, 20세 때는 2만5000~3만 달러다. 출산율은 1.2~1.7명인 시대에 태어났고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70~80%다. 30대는 이들보다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났지만(1인당 국민소득 2000~7700달러), 출산율은 이미 2명 이하였고 대학진학률도 70%를 웃돈다. 성인기에 들어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000~2만4000달러였다. 이처럼 한국의 20·30 세대는 중·노년층과 비교하기 힘든 유복한 국가에서 태어나 각 가정의 귀한 자녀로 성장했고 교육 수준도 높다. 생각과 행동이 유연하고 합리적인 선진적 청년들이다.

반면 지금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기득권층인 586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80~210달러, 출산율 5명대(4.6~6.2명)인 후진국 시절에 태어나 성장기를 보냈다. 경제 발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20대는 중진국(1인당 국민소득 5000~7100달러)에서 시작했다. 교육 수준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절반, 대졸자는 30% 정도다. 아쉽게도 사회문화적 환경이 경제 발전을 못 따라가고 권위적인 문화까지 잔존해 가정·학교·군대 등에서 폭력을 일상으로 접하고 살았다. 비록 지금은 인생의 황금기를 선진화된 국가의 기득권층으로 살지만 가난하고 폭력적인 후진적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낸 586세대는 출생 이후 줄곧 선진 문화를 접한 20·30 세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미래에서 온 신인류처럼 그들의 선진적인 생각과 행동이 낯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기득권층이 진정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난해한 현대 미술을 공부하듯, 겸허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혹여 자신들의 성장기 때 형성된 후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그들을 유혹하다간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20·30 세대의 뇌에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기술이 탑재돼 있다. 거짓과 선동, 감언이설, 선심성 공세, 비리와 불법 등에 대해서는 실시간 진위를 파악한 뒤 공유할 능력을 갖춘 세대다. 청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기성세대라면 그들이 선진 시민임을 명심하면서 늘 투명한 진실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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