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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자신의 문화라 우기는 중국이 노리는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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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명사적 맥락에서 본 ‘김치 전쟁’

중국 유튜버 리즈치는 지난 1월 김치 담그는 영상을 공개하며 김치를 ‘중국 요리’라 주장해 파문을 던졌다. [유튜브 캡처]

중국 유튜버 리즈치는 지난 1월 김치 담그는 영상을 공개하며 김치를 ‘중국 요리’라 주장해 파문을 던졌다. [유튜브 캡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당나라 말기의 선사 임제(臨濟)의 『임제록』에 나오는 말이다. 『법구경』에 연원을 둔 이 살벌한 구호는 인도 불교를 중국화한 선불교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상식이나 통념과 달리, 불교는 본래 인도유럽어족의 사유를 반영하는 서양철학이다. 따라서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그에 반해 중국 문명은 분석과 논리에 취약하며 감각과 경험을 중시한다.

이민족 지배 1000여년 받은 중국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불안 혼재 #모든 게 중국서 유래했다고 강변

후한 시대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한 이래 종교와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예술·과학·의식주·관습 등 중국문명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지만, 화이(華夷)사상에 젖은 중국인들은 수용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 등장한다. 노자가 서쪽 관문을 벗어난 뒤 “그 최후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기』 ‘노자 열전’의 기록을 근거로 도교도(道敎徒)들이 주장한 것인데, 노자가 서쪽 천축으로 가서 부처를 교화했다거나 부처로 전생(轉生)하여 오랑캐 인도인을 교화했다는 설이다.

중국 유튜버 리즈치는 지난 1월 김치 담그는 영상을 공개하며 김치를 ‘중국 요리’라 주장해 파문을 던졌다. [유튜브 캡처]

중국 유튜버 리즈치는 지난 1월 김치 담그는 영상을 공개하며 김치를 ‘중국 요리’라 주장해 파문을 던졌다. [유튜브 캡처]

이에 질세라 중국의 불교도들이 내세운 주장도 있었으니, 『청정법행경(淸靜法行經)』 등에서 보이는 삼성화현설(三聖化現說)이다. 부처가 중국에 3인의 제자, 즉 유동보살, 광정보살, 마하가섭을 파견해 각기 공자·안회·노자로 태어났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외래 문명을 수용하면서 그것이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강변하는 사례는 서양문명과 접촉하면서도 출현하였으니, 서학중원설(西學中源說)이다. 마테오 리치 등의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서구의 천문역법과 기하학 등이 전래하자, 서양 학술의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원을 중국의 고전에서 찾고자 한 주장이다.

서학중원설의 근거 또한 『사기』 ‘역서(曆書)’에 있는데,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천문역법 전문가의 후예가 각지로 흩어져 중원에도 있고 이민족에도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말 민주주의와 과학까지도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만물유래설로 팽창한다. 그러다가 청일전쟁에 패배한 뒤 현실을 자각하면서 소멸한다.

팍스시니카(Pax Sinica), 즉 중국이 주도한 평화체제라는 허구와 상상의 장막을 걷어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직시하게 된다. 즉 중국 역사에서 이적(夷狄)이 중국(중원)을 지배한 기간이 서진(西晉)에서 수(隋)까지 약 260년, 요(遼)·금(金)·원(元) 약 450년, 청(淸) 약 300년으로 무려 1000여 년에 이른다는 냉엄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때문에 중국 문명의 근저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강한 확신과 동시에 역설적인 불안이 존재한다. 화호설과 중원설은 바로 그 확신과 불안이 혼재하는 심리의 표출이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중국을 문명형 국가로 규정하고 중국몽(中國夢)을 말하면서 이렇게 교육한다. ‘5000여년 동안 중단 없이 수준 높은 문명을 유지한’ 중국이 근대 이후 주변 국가로 전락했으나, 공산당의 영도 아래 중국인민의 분투와 항쟁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중이다.

장쥔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연초 앞치마 두르고 김치를 든 모습을 중국 정부 계정인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트위터 캡처]

장쥔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연초 앞치마 두르고 김치를 든 모습을 중국 정부 계정인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트위터 캡처]

이 과정의 가장 큰 장애물이 미국인 건 자명하다. 대한민국이 미·중의 두 강대국 사이에서 곤혹을 치르고 있지만, 중국과의 ‘김치 전쟁’ 또한 문명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중국 공산당의 국가전략을 이해해야 한다. 저간의 상황을 복기해 보자.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의 김치광고에 대해 신화통신이 “김치독은 사천성 김칫독의 표절”이며 “1500년 전 중국 절임식품이 한국으로 넘어가 김치가 된 것”이라고 하자, 국내 언론에서 ‘김치공정’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쟁점이 재발한 계기는, 2020년 11월 중국식 채소절임 파오차이(泡菜)의 국제표준화기구 산업 표준 제정을 김치의 국제 표준으로 왜곡한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의 보도다.

이어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의 발뺌, 유엔 주재 중국대사 장쥔(張軍) 트위터의 김치 영상, 구독자 1400만 명 유튜버 리즈치의 ‘중국 요리’ 해시태그, 랴오닝성 아나운서 주샤의 막말, “한국의 의심과 피해망상”이라는 공산당 중앙 정법위원회의 망발 등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관영매체, 외교공관, 인플루엔서, 댓글부대의 4각 편대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중국식 여론몰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제조 공정, 발효 방식, 유산균 종류, 맛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이런 혼선의 빌미는 김치의 중국 명칭이 확립되지 못한 점이 제공했다. 2013년 농림부가 ‘맵고 신선하다’는 뜻의 신치(辛奇)로 정했지만 여러 이유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김치를 자신의 문화라 우기며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김치 시장의 규모가 작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는 점이다. 둘째, 김치가 지닌 건강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서의 인지도다. 셋째,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연구와 사례로 입증된 방역식품으로서 김치의 기능성이다. 넷째, 한류와 연계되어 나타나는, 미래 식량으로서의 가치다. 다섯째, 돼지고기 중심의 중국 음식문화가 접근하기 어려운 방대한 규모의 이슬람 할랄식품 시장으로 진입하는 능력이다. 여섯째, 청소년 세대에 대한 한류 영향력의 차단이다. 일곱째, 가장 근간이 되는 것으로서 동아시아 문명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는 한국문화의 세계적 위상에 대한 방비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인터넷 ‘애국청년’ 집단 샤오펀홍(小粉紅)의 주공격 대상은 20세기 이래 중국사에 큰 영향을 준 국가들이다. 일본은 20세기 초 중국 근대화의 모델이었으며, 프랑스는 저우언라이·덩샤오핑 등이 근로유학생으로 사회주의를 학습한 곳이다. 미·중 관계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덩샤오핑의 경제 정책은 박정희식 개발을 모델로 하며, 현재 중국 문화산업 정책과 대학정책의 상당 부분이 한국의 카피캣(copycat)이다.

결론적으로 ‘노자화호설’ ‘서학중원설’ ‘김치 중국유래설’은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너무나도 중국적인 발상이자 방식이다. 그러나 중국이 진정한 문명형 국가가 되고자 할 때, 먼저 없애야 할 것은 바로 “중국이 5000년 지속하여 온 세계의 중심이며, 모든 것이 중국에서 유래한다”는 과장과 허위다.

문명의 근본적 속성은 개방성·포용성·다양성이다. 중국 문명을 비롯한 역사상 모든 문명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었으며, 이는 과거도 현재도, 나아가 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국과의 김치 전쟁에 대한 일곱 가지 대응 방안

‘김치 전쟁’은 중국사의 문명사적 맥락 및 중국공산당의 국가 전략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종합적·체계적·장기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김치는 한식과 한류의 대표주자이며 한국 문화의 상징이고,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먼저 김치 전쟁이 문명의 충돌이자, 가치관의 대립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고 학계와 산업계가 공조해야 한다.

셋째, 김치 전쟁의 대응은 한국 문명에 대한 새로운 탐구의 계기가 돼야 한다. 비교와 교류의 관점에서 한국문명을 파악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적 맥락과 전(全) 지구적 환경에서 접근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넷째, 수입 김치엔 식품안전관리 인증기준(HACCP)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한편, 국내 김치의 경우 채식주의자를 위한 김치 등 다양한 김치 개발과 또 고급화 전략이 필요하다. 다섯째, 학술적·이론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김치를 비롯한 한식 관련 각종 문헌을 발굴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 및 이들 자료의 현대어 번역과 주요 언어별 번역도 필요하다.

여섯째, 글로컬하게 진행해야 한다. 이슬람권의 식품규격인 할랄 인증과 유대교의 코셔 인증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다양한 SNS의 활용, 한류와의 연계, 국가별 문화별 특성을 반영하는 신제품의 개발이 필요하다. 지역적 특색을 살린 각종 김치 발굴과 스토리텔링, 브랜드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일곱째, 김치의 중국어 명칭 제정이 시급하다. ‘신치(辛奇)’는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동포 어문학자 정인갑은 전래 문헌에서도 보이는 ‘천차이(沈菜·침채)’를 제안한 바 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명칭을 만든 뒤 확고하게 정립시켜야 한다.

이동철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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