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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생·화] 한화도 수베로 감독의 '고유 권한'을 존중한다

중앙일보

입력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왼쪽) [뉴스1]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왼쪽) [뉴스1]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10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8회까지 1-14로 뒤졌다. 선발투수가 7점, 불펜 추격조 세 명이 7점을 차례로 내줬다. 이미 전세는 두산 쪽으로 넘어간 상황. 앞서 던진 투수 셋은 모두 투구 수 40개를 넘겼고, 불펜에는 다음 경기에 투입돼야 할 필승조만 남아 있었다.

카를로스 수베로(49)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내야수 강경학을 9회 초 첫 투수로 내보냈다. 강경학은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안타 3개를 맞고 추가 4실점 했다. 계속된 2사 1·2루 위기에서 외야수 정진호가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정진호는 공 4개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채워 이닝을 끝냈다. 한화는 최종 스코어 1-18로 졌다.

수베로 감독은 한화가 창단 26년 만에 처음으로 영입한 외국인 사령탑이다. 미국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잔뼈가 굵었고, 2016년부터 4년간 메이저리그(MLB) 코치로 일했다. 첫 시즌부터 다양한 경기 운영방식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내야와 외야 포지션 경계를 없앤 시프트, 선발투수 두 명이 한 경기에 앞뒤로 출격하는 '탠덤' 운용 등이 대표적이다.

패배가 거의 확실해진 경기 마지막 이닝에 야수들을 투수로 투입한 이 장면도 금세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MLB 경기에선 한쪽으로 크게 승부가 기울었을 때 가끔 볼 수 있는 작전이다. LA 다저스 포수 러셀 마틴도 2019년 8월 팀이 9-0으로 이긴 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감독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목적은 단 하나. 불펜을 아껴두기 위해서다.

모두가 환영한 방식은 아니다. 이 경기를 중계한 A 해설위원은 격한 반감을 드러냈다. 해설 도중 "올스타전도 아닌 정규시즌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장료를 내고 이런 경기를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 같으면 안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수베로 감독은 태연했다. 그는 다음날인 11일 "지금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내겐 평범한 일인데 이렇게 이슈가 될 줄 몰랐다. 앞으로도 내 입장에선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놀라움으로 다가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 위원의 발언을 전해 들은 뒤엔 "그렇다면 누군가 9회에 1-14 스코어를 뒤집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불펜을 아껴 라이언 카펜터가 나오는 다음 경기에 집중하면, 3연전을 2승으로 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결과는 정확히 수베로 감독의 의도대로 나왔다. 한화는 11일 경기에서 두산을 꺾었다. 3-2 살얼음판 승부에서 전날 휴식한 필승조 김범수-강재민-정우람을 차례로 투입해 1점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설사 한화가 이날 필승조를 내고 패했더라도, 10일의 선택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선수 기용과 투수 교체는 프로야구 감독에게 주어진 고유 권한이다. 수베로 감독은 불펜 소모를 줄여 11일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데 집중했다. 감독의 역할과 책임은 거기까지다. 그 확률을 더 위로 끌어 올려 '승리'에 도달하게 만든 건 한화 선수들의 몫이다.

투수 출신인 정민철 한화 단장은 "수베로 감독이 야구 규칙과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상식적인 운영이었다. 감독들은 저마다 팀 운영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고, 구단은 그 운영방식을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이어 "프런트는 경기 운영과 관련해 현장에 절대 피드백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선수 기용 문제는 어디까지나 수베로 감독의 고유 권한으로 남겨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화 구단도 수베로 감독의 야구관과 판단을 신뢰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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