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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예술가의 놀이터? 일터?…“소름 돋을 정도로 감각 뛰어나”

중앙일보

입력

짜욱작가의 '사막여우 컬렉션'. 스프링샤인 제공

짜욱작가의 '사막여우 컬렉션'. 스프링샤인 제공

단순하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그림체, 시선을 끄는 색감. 힙한 편집숍에서 볼 법한 이 '요즘 갬성' 일러스트는 발달 장애 예술가의 작품이다. 사회적기업 스프링샤인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짜욱'이 그린 이 사막여우 캐릭터는 지난해 가수 영탁이 한 방송에 해당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오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짜욱이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게 된 계기는 장애인을 고용해 예술가로 키워내는 스프링샤인의 일원이 되면서다. 스프링샤인은 장애인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기반으로 굿즈를 제작·판매하는 곳이다. 짜욱, 알렉스, 루이지 등 5명의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직원 8명이 함께 일한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모두 '작가 몫'

스프링샤인 소속 작가들에게 특별히 할당된 업무는 없다. 짜욱 작가는 매일 오후 2시에 출근해 6시 퇴근 전까지 스스로 정한 업무량을 소화해낸다. 작품 활동에는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다. 작품 구상부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작가들은 저마다 작품의 특징이 분명하고, 각각 표현하고자 하는 '덕질' 분야가 다르다. 1000종 이상의 동물을 꿰차고 있는 짜욱은 거북이 한 마리를 그려도 '아프리카가시거북' '바다거북' '장수거북'을 구분해 그린다. '공룡 박사' 알렉스는 온갖 공룡을, '개화기 덕후' 루이지는 개화기 시대 관련 주제에만 몰입한다.

'공룡 박사' 알렉스 작가가 그린 그림. 권혜림 기자

'공룡 박사' 알렉스 작가가 그린 그림. 권혜림 기자

효율성과 거리 멀어…'기다림'이 미덕

작품 활동에 열중하는 장애인 예술가들. 스프링샤인 제공

작품 활동에 열중하는 장애인 예술가들. 스프링샤인 제공

장영미 스프링샤인 본부장은 "장애인 예술가들과 일하다 보면 보채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다"며 "영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생산성,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모두 대중을 만나는 건 아니다. 도예 작품은 불량률이 절반 이상이다. 장 본부장은 "워낙 작품이 많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화를 해 놓되, 상품성 있는 작품을 골라 시즌이나 상품군에 맞게 출시한다"고 말했다.

작품은 비장애인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상품성 있게 다시 태어난다. 컵이나 의류 등 기성품에 적용하기 위해 리터치 작업을 거치는 식이다. 비장애인 디자이너들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고민이 많다고 한다. 과도한 각색이 이뤄져 작가가 스스로 그린 그림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면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작가들의 예술성과 창작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온라인으로 판매중인 스프링샤인 제품들. 스토어팜 캡처

온라인으로 판매중인 스프링샤인 제품들. 스토어팜 캡처

"소름 돋을 정도로 감각 뛰어나"

장애인 예술가들이 이곳에 출근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표정'이다. 장 본부장은 "중증 장애의 경우, 대개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소통도 잘 하지 않는데, 점점 표정이 밝아지는 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장난기를 드러낼 때도 있다. 그럴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장애인 예술가의 부모님 또한 자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돌봄 기능을 하는 스프링샤인에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스프링샤인의 비장애인 직원들은 작가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장 본부장은 "비장애인 직원 대부분이 장애인과 일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인데,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이 깨졌다고 말한다"며 "어떤 직원은 '팬이 생기는 이유를 알겠다. 작품에 쓰는 컬러를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각이 뛰어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장 본부장은 "대중에게 장애인 예술을 전달하는 그릇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며 "'봄볕'을 뜻하는 스프링샤인이라는 단어처럼 장애인 예술이 대중들에게 봄볕처럼 따뜻하게 스며들 수 있게끔 재미있고 가치 있게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짜욱 작가가 그린 동물들. 짜욱 작가는 1000종 이상의 동물 이름을 꿰차고 있는 '동물박사'다. 권혜림 기자

짜욱 작가가 그린 동물들. 짜욱 작가는 1000종 이상의 동물 이름을 꿰차고 있는 '동물박사'다. 권혜림 기자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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