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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코리안 민족 교육, 일본인 문제이기도 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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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지난달 24일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 첫 시합에서 승리한 후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지난달 24일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 첫 시합에서 승리한 후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초 한국에 재입국한 후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다. 2002년 처음 한국에 유학한 다음 그 후로 지금까지 합쳐서 5년 반 동안 한국에 살았지만 지금처럼 살기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주변 한국사람들은 늘 친절하고 많이 도와주지만,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

고시엔구장서 한국어 교가 화제 #한국계 교토국제학원 이사장 지적 #한국, 외국인등록증 받는 데 두 달 #일본선 공항서 재류카드 즉시 발급 #한국도 이방인들 불편 살펴보길

우선 외국인등록증 발급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일본 출국 전 한국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때 “입국 후 한 달 내에 외국인등록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입국해서 2주 자가격리 기간엔 외국인등록 신청을 하러 갈 수가 없었다. 격리 중 신청 예약을 했는데 근 한 달 뒤인 4월 1일로 날짜가 잡혔다.

예약일에 맞춰 이날 신청하러 갔다가 또 한 번 놀랐다. 외국인등록증을 받을 수 있는 건 6주 후인 5월 13일이라는 것이다. 예전엔 신청 후 열흘 정도 만에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직원에게 “왜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물어봤더니 “유학생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내가 과거에 신청했을 때도 모두 비슷한 시기였는데 올해 특별히 유학생이 많은 건지. 코로나19로 유학생은 적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외국인등록증 없으면 휴대폰 개통 못 해

한국에서 외국인등록증(사진 아래)이 없으면 외국인이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없어 QR체크도 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뉴스1]

한국에서 외국인등록증(사진 아래)이 없으면 외국인이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없어 QR체크도 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뉴스1]

외국인등록증이 없다는 건 신분증이 없다는 뜻이다. 여권은 있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해서 외국인이 쓰는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것이다. 외국인등록번호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나는 지난해 7월 말 일본으로 출국할 때 외국인등록증을 반납했는데 다시 한국에서 와서 살 생각으로 그동안 매달 월세도 휴대전화 요금도 꼬박꼬박 지불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한국에 돌아가기 어렵게 되고 일본에 있는 사이에 통신사에서 “사용 중인 휴대전화는 완전히 출국한 외국인의 명의로 확인됐다”는 연락이 왔다. 조만간 비자를 받아서 다시 한국에 입국할 예정인데 조금만 연장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2월에 강제로 해지됐다.

외국인등록증. [연합뉴스]

외국인등록증. [연합뉴스]

그래서 5월 13일 외국인등록증을 다시 받을 때까지 내 명의의 한국 휴대전화를 가질 수가 없게 됐다. 한국 휴대전화가 없으면 각종 결제를 비롯한 불편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19로 카페나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한국 전화번호가 필요하고, 없으면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한다. 둘 다 없는 나는 그때마다 번거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최근 친구 명의 전화를 임시로 쓰기로 했다.

나는 그나마 임대차 계약한 집이 있어서 괜찮은 편이다.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 생활을 시작하는 외국인은 여러 가지 계약을 해야 할 텐데 외국인등록증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외국인의 상황을 자세히 쓰는 건 외국인의 목소리는 전달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내가 주변에 두 달 반이나 외국인등록증 없이 사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한국사람은 “왜? 한국은 뭐든지 빠르게 처리해 주는 줄 알았는데”라며 놀란다. 가까이에 외국인이 없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

최근 도쿄대 박사과정에 들어간 한 한국인 지인에 따르면, 일본에선 장기체류비자 받아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공항에서 한국의 외국인등록증과 비슷한 ‘재류카드’를 발급해 준다. 입국심사장에서 두 시간쯤 기다려 발급받았다고 한다. 입국 후 주소지가 정해지면 관할구청에 가서 재류카드 뒷면에 주소를 기재하면 된다.

내가 일본에 살았을 때 몇 가지 일을 계기로 외국인의 인권에 대해 민감하게 여기게 됐다. 대학 국제교류서클에서 활동하면서 새로 온 유학생들과 가까이 지냈다. 이들이 수도요금이나 가스요금 등을 계약할 때 도와주면서 외국인으로 겪는 어려움을 자주 경험하게 됐다. 대학원에서 통번역을 전공할 때는 실제로 법원이나 경찰에서 한·일 통역 일을 했다. 당시 한국인의 불법체류 등 출입국관리법 위반 사건이 많았고 그 배경은 다양했다. 물론 규칙을 어기면 안 되는 거지만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어려운 일본사회의 문제도 같이 알게 됐다. 통역자로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었지만 아사히신문 입사 후에는 재일코리안 관련 문제나 무국적자의 인권 등에 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취재했다.

이번에 일본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에서 필요한 자료를 일본에서 구하거나 한국 연구자 대신 인터뷰를 하는 일도 맡게 됐다. 일본학연구소가 1979년 설립될 때 자금을 지원해 준 재일코리안 왕청일 이사장을 인터뷰하고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왕 이사장은 교토에서 태어나서 자란 재일코리안 2세 사업가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번에 걸쳐서 왕 이사장을 만났는데 그때 나에게 고민 하나를 털어놨다. 왕 이사장은 일본에서의 재일코리안 민족교육에도 힘써 온 사람으로 교토국제학원 이사장도 오래 맡았다. 교토국제학원은 원래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시작했고, 1958년에 교토한국학원, 2003년에 교토국제학원이 됐다. 교토국제학원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는데 내가 왕 이사장을 만났을 때는 고교 야구부가 봄에 열리는 선발고교야구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할 수 있을지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 활동 어려우면 한국에 도움 안 돼

연장 10회초 적시타를 친 쓰지이 진 선수. [연합뉴스]

연장 10회초 적시타를 친 쓰지이 진 선수. [연합뉴스]

일본 고교 야구 전국대회로는 여름에 열리는 대회가 유명하지만, 봄의 선발대회도 있다. 여름 대회는 도도부현대회에서 우승한 학교가 출전한다. 봄의 선발대회는 위원들이 결정한다. 전년도 가을의 도도부현대회나 지역대회 성적으로 출전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발표 때까지 출전 여부를 알 수가 없다. 교토국제고는 지난해 가을 긴키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기 때문에 선발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왕 이사장은 “교가가 한국어로 돼 있어 선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합 중에 양쪽 팀의 교가를, 시합 종료 후엔 이긴 팀의 교가를 틀어주는데 전국대회 때는 그것이 전국 방송에 나오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교가를 일본어로 바꾸면 출전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봤다. 왕 이사장은 조금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그건 바꿔야지. 선수들이 불쌍하잖아”라고 말했다.

출전 학교 명단은 지난 1월 29일 발표됐다. 나도 궁금해서 뉴스를 봤는데 교토국제고가 선발됐고, 그 순간 왕 이사장이 웃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출전이 발표되자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교가가 한국어’라는 사실이 크게 보도됐다. 게다가 첫 시합에서 역전승하고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교가가 고시엔구장에 울려 퍼져 더욱 화제가 됐다. 나도 유튜브로 전광판에 한글 가사가 뜨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가사를 일본어로 바꾸는 일 없이 출전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교토국제학원이라고 하면 한국계 학교라는 사실은 알기 어렵다. 2003년에 교토국제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때는 학교교육법 1조교로 인가를 받았을 때였다. 1조교는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학교 이름에서 한국이 사라진 것이다. 왕 이사장은 교토한국학원 개교 50주년 기념 책자에 1984년에 완성한 혼다야마(本多山) 캠퍼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재교토 동포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열정의 역사이며, 민족 차별 철폐의 강한 바람의 역사였다.” 부근 주민들의 반대 운동 등으로 건설이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왕 이사장은 “재일코리안의 민족 교육은 우리 재일코리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인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한외국인 문제 또한 한국의 문제다. 외국인이 활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결코 한국에 도움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영화에 빠졌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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