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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한국은 일본의 소산다사 좇고 중국은 부자 못 되고 늙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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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한·중·일의 아킬레스건 인구 문제

지방시대 4/9

지방시대 4/9

만(晩)·소(少)·희(希)는 1979년 본격화한 중국의 한 자녀 정책 시기 키워드다. 늦게 결혼하고 늦게 낳고(만혼·만산), 적게 낳고(소산), 자녀 터울을 3~4년으로 하는(희) 인구 억제책이다. 반인권적 산아 제한은 인구 폭발이 가져온 식량난을 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78년 후차오무 당시 사회과학원장은 “77년 국민 1인당 평균 식량은 55년 수준밖에 안 된다”고 했다.

중국, 생산가능인구 감소세로 돌고 #고령→초고령 속도 일본보다 빨라 #한국, 65세 이상 20년 후 두배 증가 #일본, 2007년 이래 자연 감소 확대 #‘인재 보너스’ 없으면 3국에 먹구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궤적을 같이하는 한 자녀 정책은 지금 큰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5년 10억2100만명(이하 유엔 인구전망 2019 개정판)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공산당은 2016년부터 전면적 두 자녀 정책을 폈지만 2015~20년 평균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은 1.69명으로 2010~15년(1.64명)과 거기서 거기다. 여기에 62년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가 내년부터 쏟아진다. 약 9억명의 16~59세 인구가 2035년까지 1억명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중국에 전례 없는 도전이다. 세계의 공장을 떠받친 노동력과 사회보장에 비상이 걸렸다. 부자가 되기 전에 늙는다(未富先老)는 80년대 중국 인구학자의 경고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 인구 동태는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숨겨진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요인이 만혼·만산·소산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지난해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2세, 여성 30.8세다. 2001년(남성 29.6세, 여성 26.8세)보다 부쩍 올라가 일본보다 높다. 일본은 남성 31.2세, 여성 29.6세다. 한국 여성의 첫째 아이 평균 출산 연령은 32.3세로 상승곡선이다. 일본은 30.7세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0.84명(지난해), 일본 1.36명(2019년)은 만혼·만산과 떼놓을 수 없다.

한·중·일 인구구성비 추이

한·중·일 인구구성비 추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다. 지난해 3674만명에서 20년 후 2836만명으로 빠진다. 일본은 95년 이래 줄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화율(28.4%)이 가장 높다. 저출산 고령화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맞물려 있고,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옥죌 가능성이 크다.

인구 동태를 나라별로 더 살펴보자. 한국에 2020년은 일대 분수령이다. 사상 처음으로 인구 자연감소가 일어났다. 사망자 수(30만5100명)가 출생아 수(27만2400명)를 앞질렀다. 김수영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인구 고령화로 사망자 수의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자연 감소 추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산다사(少産多死)에 진입했다는 얘기다. 인구 동태는 출산율도, 사망률도 높은 다산다사(多産多死), 사망률이 낮아지는 다산소사(多産少死), 인구가 거의 늘지 않는 소산소사(少産少死)로 옮아간다. 소산다사는 인구 감소형으로 일본이 전형적이다.

한국의 소산다사는 가속화한다. 지난해부터 베이비부머(1955~74년생) 1685만명이 고령 인구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65세 이상은 지난해 809만명에서 2040년 1638만명으로 두 배 늘어난다. 2049년엔 고령화율이 37.7%로 일본을 추월한다. 덩달아 노년 부양비도 가파르다. 지난해는 생산가능인구 5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했지만, 2035년엔 2명당 1명꼴이다. 비대해진 고령 인구는 연금·의료비 등 사회보장비의 블랙홀이다.

중국 현 1인당 GDP 도달 시점의 각국 고령자 비율

중국 현 1인당 GDP 도달 시점의 각국 고령자 비율

인구 구성비만이 아니다. 서울·인천·경기의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섰다. 부동산 대책에 따른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는 인구 유입 요인이다. 하지만 대도시권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다. 서울은 0.64명으로 최저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초저출산율의 한 요인인 셈이다. 고령화는 수도권에도 엄습한다. 서울은 2027년, 인천은 이듬해, 경기도는 2030년 고령화율이 21%를 넘는다. 9년 후 베이비붐 세대가 75세로 진입하기 시작하면 수도권에 의료·요양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의 인구 동태는 한국의 근본 모순이다. 노년 부양비는 올라가지만, 청년 실업과 일자리 미봉책으로 인재 보너스가 쉽지 않다. 고령자 상당수는 가처분 소득이 적은 하류 노인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일그러진 인구에 대한 종합 진단과 처방은 없다. 그 틈새에서 나랏돈으로 표심만 챙기려는 하류 정치만 꿈틀거린다.

일본은 인구의 축소 재생산에 들어갔다. 장기간 저출산으로 부모 세대 인구가 준 만큼 합계출산율이 다소 올라도 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동시에 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국면을 맞고 있다. 다사 사회라는 조어가 유행한다. 2019년 후생노동성 통계를 보자. 출생아 수가 86만여명으로 1899년 조사 이래 최저였다. 2020년판 저출산사회대책백서는 이를 ‘86 쇼크’로 부를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사망자 수는 전후 최다(138만여명)로, 덩달아 인구 자연 감소(51만여명)도 최대였다. 자연 감소는 2005년 처음 일어났고, 2007년 이래 확대일로다. 총인구는 2009년 이래 감소세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 10명이 2025년에 고령자 5명을, 2045년엔 7명을 부양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237%) 것은 노동력 감소와 초초고령사회가 한몫했다. 정년을 70세로 늘리고, 고령 고소득자의 의료비 자부담을 강화한 것은 연금·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는 조치다. 평생 현역, 1억 총활약 사회, 지방창생은 저출산·고령화, 지방소멸의 대세에 맞선 정책 슬로건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이 인구 전환을 관리하기 위해 걸어온 길과 실패 사례를 함께 살펴보면 세계 다른 나라에 참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지난해 11월 29일자 사설).

중국은 저출산 고령화가 속도를 내는 단계다. 전면적 두 자녀 정책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중국 공안부가 올 2월 발표한 지난해 호적등록 기준 출생아는 1003만여명으로 전년보다 14.9% 줄었다. 규모는 절대적이지만 2017년 이래 감소세다.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만혼, 육아·교육비 상승, 부동산 가격 급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 적잖게 닮았다. 중국 인구는 2027년 인도(14억6900만명)에 추월당하고, 2031년을 정점으로 줄어든다.

반면 고령화 속도는 한·일 양국 못잖다. 한국은 2018년 고령사회(65세 이상 14% 초과)에 진입한 지 8년만인 2026년 초고령사회(21% 초과)가 된다. 중국은 그 기간이 11년(2025→2036년)으로, 일본(95→2008년)보다 빠르다. 2019년 중국의 고령화율은 11.5%, 1인당 GDP는 1만4500달러다. 이 소득 수준을 이뤘을 당시 한국의 고령화율은 5.5%(92년), 일본은 7.4%(73년), 미국은 8.2%(50년)였다(일본정책투자은행 보고서).

중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은 2010년 10%에서 2030년 3%대로 낮아질 것이란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장기 전망이다. 지난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산아제한 전면 철폐 주장이 제기된 것은 노동력 부족과 미부선로의 위기감 때문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의 앞길에 인구 문제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2019년 말 보고서를 보자. 중국은 2030년대 GDP 규모에서 미국을 앞지른다(영국 경제경영연구소는 2028년). 하지만 중국은 인구감소와 생산성 둔화로 2050년대에 미국에 다시 역전당한다. 중국 천하는 길어야 30년이라는 얘기다. 한국은 2018년 12위에서 2060년 16위로, 90년과 같은 순위로 되돌아간다. 일본은 같은 기간 3위에서 5위로 떨어진다. 2060년 상위 4개국은 미국·중국·인도·독일 순이다. 인구는 나라의 근본이다. 나라의 틀, 국력으로 초점을 넓혀볼 때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