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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근처 세운 차에 흰 얼룩? 환경조정위 "업체가 도색비용 물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9년 서산 석유화학단지 인근에 세워둔 차량에 발생한 흰색 얼룩. 환경부는 인근 A 업체에게 86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지난 2019년 서산 석유화학단지 인근에 세워둔 차량에 발생한 흰색 얼룩. 환경부는 인근 A 업체에게 86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굴뚝에서 배출된 물질로 인해 차량이 오염됐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해당 굴뚝을 제외하고는 다른 오염원을 찾을 수 없다면 업체가 배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7일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소재 A 업체에게 "차주 14명에게 86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신청인이나 업체 측이 결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60일 이내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충남 서산에 위치한 대산석유화학단지 위성지도.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점이 피해 차량들이 세워져있던 곳이다. 자료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충남 서산에 위치한 대산석유화학단지 위성지도.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점이 피해 차량들이 세워져있던 곳이다. 자료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한경부에 조정을 신청한 76명은 대부분 서산시 대산읍 주민들이다. 이들은 2019년 6월 대산석유화학단지의 3개 석유화학제품제조업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내려앉아 주차해둔 차량에 흰색 얼룩이 발생했다며 차량 88대에 대한 도색과 수리 비용 배상을 요구했다.

오염물질을 배출한 것으로 지목된 사업장은 정유‧석유화학 공정 과정 중에 발생하는 가연성 가스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불에 태우는 굴뚝(플레어스택)을 가지고 있다. 굴뚝은 차량들이 주차된 지점에서 1~2㎞ 이상 떨어져있다.

플레어스택은 연기가 나오는 입구에 불꽃이 일고 온도가 높아, 여느 굴뚝에 설치하는 대기오염물질 자동측정기기(TMS)의 설치가 어렵다. CCTV 등으로 오염물질을 관리하긴 하지만, 굴뚝에서 어떤 물질이 얼마나 배출되는지 정확하게 측정된 자료를 얻기가 불가능하다.

오염물질, 공장 있지만 연결 못 지은 서산시

서산시는 2019년 6월 처음 피해가 접수된 뒤 피해보상에 대해 논의했지만, 원인물질과 배출 사업장을 정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지난해 3월 환경부 환경분쟁조정위원회로 사건이 넘어왔다. 당시 서산시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차량 표면의 이물질에서 규소, 알루미늄, 철 등을 검출했지만, 이 물질이 지목된 3개 사업장에서 나왔다는 연관성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위원회는 서산시의 감정 결과가 ‘피해와 사업장 간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근거로 보기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산시 측이 피해 발생 후 시일이 지난 뒤 성분 감정을 의뢰했고, 그동안 신청인들이 피해 차량을 지속해서 운행한 사실을 고려할 때 감정물이 오염됐을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했다.

분쟁조정위 "굴뚝 외 오염물질 발생할 원인 없어"

위원회는 이 사건 오염물질로 인한 피해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한 것으로 보아 특정 시설에서 물질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거나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 불완전연소된 가스가 다양한 고분자탄화수소 등 오염물질로 배출된다. 위원회는 공장 가동실적, 행정 지도점검 내역, 신청인이 제출한 촬영 사진 등을 근거로 일부 사업장이 피해 시기에 가동 중지됐고, 불완전연소가 일어난 정황을 확인했다.

위원회는 풍향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오염물질 일부가 바람을 타고 신청인들의 차량에 묻어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피해 발생 원인으로 추정할만한 다른 오염원이 없는 점 등을  반영해 “피신청인 A주식회사에서 발생한 오염물질로 인한 신청인들의 차량 피해의 개연성을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피해 발생 확인이 불분명한 62명을 제외하고, 신청인 14명에 대한 차량 피해를 인정해 A 주식회사가 총 860만원을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결정문은 지난 6일 신청인과 피신청인들에게 송달됐다.

나정균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은 “환경피해는 당시 오염물질 측정자료가 없는 경우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100% 입증하기 곤란해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며 “이 경우 오염물질 발생 정황, 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인과관계를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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