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람들이 무서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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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을 중퇴한 김경철군(가명,19세) 은 고등학교 때부터 정신과진료를 받아왔다. 병명은 '사회불안증'. 초등학교시절, 유난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그는 이른바 '왕따'를 당하는 아이였다. 부모에게 털어놓았으나 딴 아이보다 좀 더 민감한 아이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부모는 "남자가 뭐 그런 일에 주눅이 드느냐! 아이들이 그러면 너도 강하게 네 목소리를 내야지" 라며 한마디로 무시해버렸다. 점차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 그는 불안반응이 더욱 악화되어 고등학교조차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에서도 그의 두려움은 계속됐다. 모임, 과제 발표 등 사람들 앞에 나서야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휴학하고 치료센터를 찾았다.

사회불안증은 대인공포증, 무대공포증, 연단공포증, 발표불안, 이성(데이트)불안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고 있다. 최근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에 걸릴 확률(평생 발병율)이 4~13%에 이른다. 잠재 인구를 생각하면 수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주장이다.

사회불안증은 대개 10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메타인지행동연구소 최영희 원장은 발병율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 이는 사회가 상대적으로 여자보다 남자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모든 병이 그렇듯 사회불안증도 조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증세를 단순히 '소심함' 정도로 치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물론 고등학교까지는 무난히 지나갈 수 있다. 문제는 대학 때부터이다. 이미 상당기간 시적인 불안이 굳어진 아이에게 노출 빈도가 높은 대학생활은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자신을 숨기는 데 한계에 부닥치면서 심한 경우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따라서 '왕따'를 당하거나 지나치게 소심하고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자녀가 있다면 아이를 내몰기보다 세심한 대화와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약물보다 인지행동치료가 효과 있어

사회불안증은 약물치료를 하기도 한다. 브리핑을 하거나 연주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약을 먹는 이들이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두려워하는 상황에 노출되기 10~20분 전 약을 먹고 일을 마치는 방식으로 근본처방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불안증은 약물치료보다 인지행동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최영희 원장은 주장한다. 약 10주간에 걸친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불안의 원천을 찾아서 생각을 바꾸거나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회피하던 상황과 직면하는 훈련을 반복함으로써 불안의 굴레를 벗고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된다.

같은 증세로 고민하는 사람들끼리의 자조모임도 결성돼 함께 노출훈련 기회를 갖기도 한다. 부모와 환자들은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인내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 곧 시험의 계절이다. 최원장은 "면접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가슴이 쿵쿵 거린다면 일단 무엇을 불안해 하는 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라"고 권한다.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 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러한 생각이 정상적인 사고인지를 판단하고 좀 더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치하는 훈련을 해보는 것은 불안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중의 관련 책을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움말:메타인지행동연구소 최영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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