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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게에 노래방·이층침대···기상천외 가로수길 매장 노림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에 설치된 전시물. 유지연 기자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에 설치된 전시물. 유지연 기자

매장 한가운데 탈의실 문을 열면 노래방이 등장한다. 또 다른 탈의실 내부에는 이층 침대가 놓여있고 한쪽 벽에는 달리는 기차 속 장면이 재생 중이다. 커피숍에 가려면 재즈가 흐르는 호텔 복도를 지나 객실을 통과해야 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문을 열 때마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순간 이동한다.

오는 10일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여는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아더스페이스 3.0’ 얘기다. 단순히 옷·가방 쇼핑이 아니라 전시와 체험 등 ‘놀이’에 초점을 맞췄다. 우주에서 영감을 얻은 그래픽 아트, 계단 벽과 천장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움직이는 거울과 선반 등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들이 5층짜리 건물을 가득 채웠다.

매장 한 가운데 놓인 탈의실의 문을 열면 노래방 기기 가운데 놓인 탈의실의 문을 열면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매장 한 가운데 놓인 탈의실의 문을 열면 노래방 기기 가운데 놓인 탈의실의 문을 열면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아더에러 관계자는 “온라인숍만으로는 우리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장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 자체가 매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낯설고 놀라운 경험에 주력” 

젠틀몬스터의 도산공원 매장에 설치된 로봇 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묘사했다. 배정원 기자

젠틀몬스터의 도산공원 매장에 설치된 로봇 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묘사했다. 배정원 기자

지난달 문을 연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도산공원 매장도 미래 세계를 구현한듯한 공간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6족 보행 로봇,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묘사했다는 로봇 팔, 폭격을 맞은 듯 무너진 건물 잔해 등 SF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젠틀몬스터 측은 “고객에게 낯설고 놀라운 경험을 주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매장을 폐점하고, ‘웅녀의 신전’이라는 카페를 운영 중이다. 매장 내외부는 동굴 같은 분위기를 구성했고, 쑥을 원료로 한 음료를 판매한다. 미샤의 대표 상품인 개똥쑥 토너·에센스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문을 닫게 된 매장을 재단장해 한시적으로 카페를 운영 중인데,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쇼핑과 엔터 경계 모호해져    

젠틀몬스터 매장 1층에 들어서면 무너진 건물 잔해를 표현한 전시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배정원 기자

젠틀몬스터 매장 1층에 들어서면 무너진 건물 잔해를 표현한 전시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배정원 기자

이렇듯 코로나19 장기화에도 새롭게 문을 여는 오프라인 매장은 소비자 체험에 방점을 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쇼핑은 오히려 뒷전이다. 누구나 와서 구경하고, 만져보고,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공간에 더 가깝다. 지난달 오픈한 여의도동 현대백화점이 ‘백화점’이라는 단어를 빼고 ‘더 현대 서울’로 작명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으로 쇼핑을 위한 백화점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휴식 공간이 되려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통적인 ‘놀이’ 공간인 야구장에는 쇼핑의 기능이 더해질 전망이다. SSG 랜더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스타필드 복합쇼핑몰 위에 야구장을 지어 쇼핑과 레저를 동시에 즐기거나 야구장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배달받는 별도 앱을 개발하겠다는 등의 아이디어를 언급했다. 일본 라쿠텐의 홈구장 ‘생명 파크 미야기’처럼 테마파크형 야구장을 만들어 본업인 유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얘기다.

“브랜드는 바이럴 싸움 중”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인사동에 동굴을 컨셉으로 한 '웅녀의 신전'이라는 카페를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인사동에 동굴을 컨셉으로 한 '웅녀의 신전'이라는 카페를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이 시기에 패션·화장품·유통업체가 오프라인 매장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오랜 ‘집콕’에 지친 소비자들이 보복 소비에 나서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올해 본격적으로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부터 비대면 쇼핑, 온라인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줄 서는 맛집과 카페의 인기는 전혀 식지 않았고, 올해는 더 잘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고객에게 재미있는 볼거리와 경험을 제공해 ‘시간’을 점유하는 매장이 곧 ‘돈’을 점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발걸음을 잡기 위한 오프라인 패션·화장품 매장의 기상천외한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지금 브랜드의 성패는 바이럴(입소문) 싸움에 달렸다”며 “이미 멋진 자극에 눈이 높아진 소비자에게는 더 센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유통 상식을 뒤엎는 마케팅 전략을 가진 브랜드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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