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이 세상에 나온 지 125년째 되는 날이다. 1957년 신문편집인협회(현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창립을 계기로 매년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조선인 위한 조선’ 주창 독립신문 #국가와 사회 발전이 신문의 사명
독립신문은 갑신정변(1884년)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서재필(1864~1951) 선생이 주도해 1896년 4월 7일 창간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자 미국으로 망명해 의사가 됐으나 1895년 12월 귀국해 독립신문 창간에 매진했다. 미국 감리교회 선교부가 서울에 설립한 삼문출판사의 책임자였던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도움으로 서재필은 귀국 4개월 만에 첫 신문을 발행할 수 있었다.
흔히 독립신문이라고 하면 한글판만 떠올리지만, 독립신문은 헐버트가 편집을 맡아 영문판(The Independent)을 별도로 발행했다. 영문판은 한글판의 단순 번역물이 아니었다. 독립신문 창간호를 보면 발행일의 요일이 한글판은 금요일로 돼 있지만, 영문판은 화요일로 인쇄돼 있다. 필자가 이날을 추적해 보니 4월 7일은 영문판대로 화요일이었다. 요일이 다른 것은 한글판과 영문판을 별도로 편집했다는 방증이다.
조선에 파견된 감리교 선교사였던 미국인 헐버트는 독립신문이 창간된 125년 전에 조선을 위해 어떤 화두를 던졌나. 영문판 창간호 사설을 보면 한글판에는 없는 일종의 국가 개혁 목표를 제시했다. “조선은 조선인을 위한 조선이어야 하고, 부패를 추방해야 하고, 한글을 쓰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교과서를 하루빨리 한글로 보급하여야 한다.” 사설에 당시 조선의 시급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조선인을 위한 조선’이란 말에는 조선에서 이권을 챙기려 달려드는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조선 조정은 조선인들의 민생에 보탬이 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외국인들에게는 조선인의 이익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담았다. ‘부패를 추방하자’는 주장은 오늘날에까지 적용되는 금언으로서 당시 부패한 조선 관리들을 향해 외친 사회 개혁 요구였다.
‘한글을 쓰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교과서를 하루빨리 한글로 보급하여야 한다’는 말에는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한글 경시를 비판하면서 한글 사용과 한글을 통한 교육 진흥을 촉구한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된 세계 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저술하는 등 한글 자강운동의 선구자였던 헐버트다움이 엿보인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신문의 사명은 어제오늘의 숙제가 아니다. 개화기 이래 우리나라 신문은 국민 소식지와 계몽지로서 문명 진화와 국권 회복에 기여했고, 해방 이후에도 산업화·민주화·선진화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12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론을 펼치고 있는가. 디지털과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정보통신기술(ICT) 혁명 와중에 신문 산업이 처한 생존 위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 큰 위기는 국민 신뢰의 위기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신문이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과제다. 요즈음 우리 신문을 보면 국민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래지향적 시각과 거시적 통찰은 안 보이고 흥미 위주나 정쟁을 부추기는 자극적 기사가 판을 치고 있다. 신문마다 진영 논리에 빠져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이며 국익인지 판단을 흐리게 할 정도다.
헐버트가 125년 전에 주창한 ‘조선인을 위한 조선’ 담론처럼 언론인들이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세로 돌아가길 바란다. 국민 신뢰 회복이 신문의 생존을 돕는 지름길이다.
김동진 전 JP모건 은행 한국 회장·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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