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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쓴 양반들의 性 담론 ④] 불륜

중앙일보

입력

어떤 학자는 인간사회의 병리를 따져본 결과 ‘부적절한 관계’ 증후군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는 일 때문에 세상이 망가진다는 주장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선 양반들이 부적절한 성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평가했는지부터 알아보자.

미국의 전직 대통령 클린턴은 다방면에서 재주가 탁월해 언제 어디를 가나 재미있는 화제를 많이 만들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인턴으로 들어온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때는 하마터면 대통령 자리까지 날아갈 뻔했다.

역사상 수많은 명사가 이른바 부적절한 관계로 곤욕을 치렀다. 1차대전 때 독일의 여자 스파이 마타하리는 국가 기밀을 빼내려고 각국의 고위층 인사들과 연달아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어 국제적 물의를 일으켰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좀더 기막힌 일도 있다. 서양 중세의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는 조카딸을 첩으로 삼았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매독에 걸려 코가 떨어져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숱한 명사가 ‘부적절한 관계’로 침몰했다.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선비가 모처럼 말을 타고 나들이를 나갔다 큰 개울 앞에 도착했다. 개울을 건너려고 빙 둘러보니 마침 건너편에서는 아낙네들이 쪼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다들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선비는 벌어진 여인들의 허벅지가 눈에 들어오자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는 상상의 불길이 타올라 오도 가도 못한 채 마상에서 군침만 흘렸다때 늙은 스님 하나가 멀리서 지팡이를 짚고 터벅터벅 걸어와 역시 개울물을 건너려고 짚신을 벗어들었다. 그때야 정신을 차린 선비가 계면쩍은 듯 말을 꺼냈다.

“초면에 실례합니다만, 노장 스님도 시를 지을 줄 아시겠지요? 제가 우선 시 한 구절을 읊어 보렵니다. 스님은 대구(對句)를 지어 보시죠?”
그 말에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변홍합개(溪邊紅蛤開, 개울가에 홍합들이 벌어져 있네).”

스님이 답했다.“속세에 사는 분이라 홍합이라는 고기(肉)를 빌려 시구를 지으셨군요. 소승은 깊은 산에 묻혀 사는 중이어서 고기는 못 먹으므로 분수에 맞게 채소로 시구를 삼겠습니다. 들어보시죠. 마상송이동(馬上松?動, 말 위에 송이버섯이 꿈틀거리고 있네).”

부적절한 관계를 꿈꾸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부적절한 성관계라고 일컬을 만할 사건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선비의 흉중에는 이미 그런 사건이 준비되어 있었다. 선비는 말 위에 걸터앉은 채 낯선 여성들의 허벅지 사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않은가? 관음증 또는 성적 망상의 경미한 증거가 된다.

선비는 여성들의 두 다리에 감춰진 부분을 조개라고 불렀다. 색깔도 선정적인 붉은 조개라고 말이다. 마침 여성들은 빨래를 하느라 쪼그려 앉을 수밖에 없어 가랑이를 벌린 채였고, 속내의가 부실했던 그 옛날이라 보여서는 안 될 부분이 보일락말락했다. 선비는 그 광경에 취해 “홍합들이 벌어져 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선비의 시선에는 두 가지 문제가 깔려 있다. 하나는 선비가 성적 대상으로 상정한 여성들이 익명의 낯선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선비는 성관계에 앞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조개 타령을 읊던 선비로서는 상대 여성의 이름이 무엇이든, 나이와 출신과 성격이 어떠하든 아랑곳할 일이 아니었다. 일단 아름다운 조개라면 그의 남성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에게는 사랑보다 강렬한 성적 자극과 충동이 훨씬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또 한 가지. ‘홍합들’로 지칭된 여성들은 손빨래라는 힘든 노동에 묶여 있었다. 여성들이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의 질곡에 얽매여 있던 순간, 선비는 향락을 꿈꾸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은 노동에 사로잡혀 있으나 부와 권력의 소유자인 선비, 즉 남성은 쾌락을 추구하기에 바빴다. 성희롱과 성적 탐욕은 강자의 몫이었다.

굳이 여성주의라는 프리즘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 탄 선비의 음침한 시선에서 성적 일탈 또는 부적절한 관계를 향한 열망을 읽어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랑방에 앉아 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갓 쓴 양반들도 대개는 선비의 심정을 공유했을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양반들은 총체적 의미에서 부적절한 관계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이야기 가운데 선비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노장 스님의 태도에서도 남성적 욕망이 확인된다. 스님은 “말 위에서 송이버섯이 꿈틀거리고 있네”라고 대꾸했다. 그는 선비가 성적 충동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것은 선비의 조개타령에 대한 간접적 질책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스님도 벌어진 조개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는 은밀한 고백이기도 하다. 만일 스님이 선비의 심리상태에 무관심 또는 무지했더라면 결코 이런 답변을 즉석에서 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좀더 과장해 말하면 스님이 말한 송이버섯은 결국 스님 자신의 흥분한 버섯이라고 단정해도 별 무리가 없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이야기의 속뜻은 선비의 무분별함을 탓하는 데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텍스트는 선비든 스님이든 남성이라면 누구나 부적절한 성관계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기고백과 자기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다. 필자의 짐작대로라면 양반들은 부적절한 성관계를 무조건 비판만 하지는 않았을 법도 하다. 양반들의 생각이 어땠는지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며 좀더 생각해 보자.

“왜 이리 사슴뿔마저 불뚝 섰소”

어느 마을에 머리가 약간 부족한 농부가 살았는데, 운은 좋았던지 아내가 천하절색이었다. 하루는 먼 곳에 급한 볼일이 생겨 부득불 집을 비우게 됐다. 농부는 자기가 집에 없는 사이 혹시 누군가 예쁜 아내와 잠이라도 잘까봐 몹시 걱정이었다. 걱정 끝에 아내의 그것에 누워 있는 사슴을 붓으로 그려놓고 길을 재촉했다. 틈을 엿보던 이웃집 총각이 농부의 아내를 찾아와 간곡히 사정했다. 제발 한 번만 좀 하자고 했지만 농부의 아내는 한사코 거절했다. 총각은 까닭이나 좀 알자고 애원했다.

“바깥양반이 내 거시기에 사슴을 그려 놓고 길을 떠났으니 난들 무슨 방법이 있겠소?”
그 말을 듣고 총각은 기뻐하며 껄껄 웃었다.
“일을 마친 뒤 다시 그려 줄 테니 아무 염려 말아요.”
총각의 우뚝 솟은 콧날을 바라보자 농부의 아내는 점점 몸이 더워졌다. 두 사람은 즉시 벌거숭이가 돼 한참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일을 다 마친 다음 총각이 농부 아내의 거기를 살펴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농부가 그려둔 사슴 그림이 많이 뭉개져 있었다.

총각은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런데 기억이 분명하지 못해 누운 사슴을 그리는 대신 멀쩡하게 서 있는 사슴을 그려 놓았다. 그러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행여 아내에게 무슨 불상사라도 일어날까 싶어 먼 길을 한 달음에 다녀온 농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의 은밀한 부위를 자세히 살폈다. 당연히 누워 있어야 할 사슴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농부는 마구 화를 냈고, 아내는 일이 틀어진 것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꾸며댔다.

“당신은 사물의 이치를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사람도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데, 사슴이라고 늘 누워만 있으라는 법이 있나요?”

“그건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린 사슴은 뿔도 좀 비스듬히 자빠져 있었는데, 이 그림에는 왜 이리 뿔마저 불뚝 서 있는지 모르겠소.”한풀 기가 꺾인 농부는 푸념하듯 말했다.“사슴이 누우면 뿔도 누울 것이고, 사슴이 일어서면 뿔도 서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런 것이 세상의 이치랍니다.” 아내는 더욱 기세등등했다. 농부는 감탄을 연발하며 아내의 등을 토닥거렸다.

“맞아, 당신은 정말 모르는 것이 없어. 나는 왜 이런 것도 모르지?”
농부는 그 뒤로 아내를 더욱 사랑했다고 한다.이야기 속의 농부는 지능이 낮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어떤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증거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렇지만 결국 아내의 궤변에 속고 만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농부는 아내를 더욱 끔찍이 아꼈다고 했다. 영락없는 바보 이야기인 셈이다.

어찌 보면 정작 바보는 농부가 아니었다. 그는 아내의 성기에 그림을 그려 일종의 정조대를 채울 정도로 세심했다. 뿐만 아니라 농부는 자기가 그린 그림의 특성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부적절한 관계 뒤에 새로 그린 타인의 그림이 자기의 그림과 어떻게 다른지도 정확히 인식했다.

이처럼 철저한 농부가 아내의 거짓말 몇 마디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갈 수 있겠는가? 농부는 아내의 부정을 확신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냥 덮어두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천하절색인 아내를 잃게 된다면 자신의 손해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계산을 그도 할 줄 알았다.

어진 이를 만드는 스님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부적절한 관계의 당사자인 농부의 아내와 총각에 대해 양반들은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총각은 갓 쓴 양반들의 표상으로 읽힐 만하다. 양반들은 총각에게 면책특권을 줌으로써 자기들 스스로의 일탈 욕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농부의 아내에게도 면책을 허용했다는 점이 내 관심을 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억압된 성 의식과 다르다. 양반들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한마디로 잘라 대답하기는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양반들의 성 담론에서 확인된 한 가지 사실은 양반들이 부적절한 성관계에 빠질 위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양반들의 이런 확신은 독신생활을 하며 수도에 전념하는 스님들에게도 적용됐다.

이름난 스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글쓰기에 탁월했다. 골계(滑稽)에도 뛰어나 인기를 끌었다. 그런 스님이었건만 바람기만은 좀체 극복하지 못했다. 그 시절 관서지방에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미모가 수려했을 뿐만 아니라 시문(詩文)도 잘 지어 명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스님은 벼르던 끝에 그 기생을 찾아갔다. 둘 다 시를 잘 쓰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실력을 겨루기로 했다. 먼저 기생이 운(韻)을 정하고 스님은 그에 맞춰 시를 읊조렸다.

“그대의 아름다움 정말 고와라.정이 깃든 그대 교태 내 마음 사로잡네.어둠 속에서 그대를 만난다면 내 간장 무쇠라 한들 어찌 녹아나지 않을쏘냐.”기생은 스님이 자기에게 마음을 두고 있음을 눈치채고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스님이 어찌 여인을 거느릴 수 있습니까” 하며 아양을 떨었다. 스님이 답했다.“거느리지 않지만 거느릴 수는 있지. 옛날 아란존자는 석가여래의 큰 제자였는데, 마등가라는 여인과 서로 통했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아란은 중이 아니요, 마등가는 여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냐?”

기생이 되물었다. “스님께서도 그 재미를 아시나요?”“그대는 내 인생의 진미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구나. 불교에는 극락세계가 있느니라. 내가 그대의 옷을 벗겨 엉덩이를 살살 간질이고 나서 그대 그곳을 깊숙이 꿰뚫으면 바로 거기 극락의 재미가 있느니라. 그것이 다름 아닌 극락세계로다! 그 순간에 이르러 그대는 나의 참됨을 알게 되리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기생은 입 안의 침이 말라왔다. 침을 삼키며 가까스로 하는 말이 “요놈의 얄미운 대머리여! 알았다니깐요”였다. 다시 스님이 대답했다. “그대는 내 윗대머리만 알았지 아래 있는 대머리는 아직 구경도 못했느니라. 당장이라도 그대에게 아랫대머리 맛을 보여주고 싶다. 나무관세음보살!”스님은 기생을 끌어안고 조용하나 힘차게 그 일을 시작했다. 기생은 너무 황홀해 숨이 넘어갈 듯했다. 기생은 속삭이듯 말했다. “스님은 정녕 나를 속이셨소. 스님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본업인데 어찌 나만은 이렇듯 죽이시나요?”

“자고로 불법이 신통해 사람이 사물을 죽게 만들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느니라.”마침 그 순간 어떤 사람이 방 안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엿보다 놀라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니, 스님! 지금 무슨 짓을 하십니까?” 스님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라를 위해 어질고 훌륭한 아이를 만드는 중이다”하며 마지막 기운을 쏟아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너나없이 다들 웃었다.

이 이야기에는 길게 군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핵심은 부처님의 법과 계율을 따라 수행에 정진하는 고승이나 성현(聖賢) 말씀대로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는 고사라도 성적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아도 선비들의 부적절한 성관계가 자주 발견된다.

세종 때 부사정(副司正) 벼슬에 있던 김방은 안숭직이라는 선비의 기생첩 금련과 몰래 간통했다. 선비 노회신 역시 금련과 간통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김방은 화가 치밀어 자기 집 종들을 거느리고 노회신을 찾아가 마구 구타했고 말안장과 산호 갓끈 등 기물을 몽땅 때려부쉈다. 형조로부터 이 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은 김방에게 무거운 벌금형을 내렸다.(세종 14년 3월23일)

젊은 양반의 산나물 타령

따지고 보면 김방이나 노회신은 선비의 체면을 돌보지 않고 남의 첩을 건드렸다. 상대 여성이 기생 출신이어서 나름대로 합리화할 소지는 있었다. 어쨌든 김방은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연적인 노회신에게 앙갚음을 했다 도리어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다.

연적과의 경쟁을 불필요하게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경제적 타산 때문이었을까? 금련 같은 기생에게는 아무래도 대가성 선물을 제공해야 성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시·공간적으로 편리해서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양반들의 부적절한 성관계는 일차적으로 자기 집안의 여종들을 대상으로 했다. 갓 쓴 양반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래 이야기를 한번 읽어 보자.

어느 젊은 양반이 여종을 몹시 탐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아내가 잠들면 몰래 여종의 처소로 나가고는 했다. 그런 일이 워낙 자주 있다 보니 아내도 눈치를 챘다. 아내는 잠든 척하며 바깥양반의 꼬리를 밟기로 작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내는 살금살금 양반의 뒤를 밟았다. 행랑채 문틈으로 마침 단잠을 깬 여종이 양반의 요구를 거절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는 왜 하필 흰떡 같은 부인을 버려두고 못나고 하찮은 저한테 오셔서 자꾸 못살게 구십니까?”“부인이 흰떡이라면 너는 산나물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지 않으냐? 먼저 떡을 맛있게 먹고 그 다음에 나물을 먹지 않는다면 소화가 안 되느니라.”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양반은 여종과 입을 맞추며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다. 아내는 잠자리로 되돌아갈밖에 달리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이튿날 젊은 양반 내외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안방에서 무슨 일인가를 상의하게 됐다.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젊은 양반은 자꾸 하품을 했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다 겸연쩍었던지 혼잣말을 했다.

박저생, 아내를 쇠꼬챙이로 때려

“요즘 이런 병이 생겼으니 참으로 괴이하다. 괴이해!”젊은 양반의 아내가 그 말을 받았다. “그야 물론 다른 까닭이 있을 턱이 없지요. 날마다 그리도 많은 산나물을 잡수신 까닭이지요.”시아버지는 마침 나물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어디서 산나물이 나서 나도 안 주고 너만 혼자 그렇게 많이 먹었느냐”며 진지하게 캐물었다. 얼굴이 붉어진 젊은 양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버렸다.

딱히 아내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젊은 양반은 집 안에서 딴 짓을 했다. 실은 늙은 양반들도 많이들 그랬다고 한다. ‘부부간에는 손님처럼 대하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지키느라 아내들에게 내밀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선비들이어서 정력이 남아돌아 그랬을까? 또는 그저 단순히 정력을 과시하는 것이 사회적 습관이라서 그랬는가? 지금 제기된 가능성은 일단 개연성이 있어 뵈는데 실상은 좀 더 다차원적이고 다중적이었을 수 있다.

위에서 읽은 예화를 음미해 보면 아내가 남편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질책만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문제의 장본인인 젊은 양반도 자신의 바람기를 적극 변호하지 않는다. 그들 부부는 서로 적절히 타협했다. 아내는 눈치껏 알아서 견제했고, 남편은 요령껏 아내의 눈을 속였다. 여종도 어느 정도는 그 관계를 즐기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그러나 이런 평화 공존은 한낱 갓 쓴 양반들의 희망에 불과했을 수 있다. 역사적 실상은 좀 더 직접적인 투쟁 또는 거칠고 복잡한 대립관계가 일반적이었다. 일례로 세종 때 고관을 지낸 이맹균이라는 양반 집안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 이맹균의 부인 이씨(李氏)는 남편이 여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자 질투심이 발동해 여종을 때려 죽였다. 이 일이 문제가 돼 세종은 이맹균을 관직에서 파면했고, 이씨 부인에게 수여했던 작첩(爵牒)도 박탈했다.

사건 당시 이씨 부인의 나이는 70세에 가까웠는데, 슬하에 자식이 전혀 없었다. 당시 양반들은 이 일을 두고 이맹균을 탓하기보다 그의 부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실록의 편찬자들도 노파의 “질투가 지나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비난할 정도였다.(세종 22년 6월17일)

사회 일각에서는 남편의 부적절한 관계를 둘러싸고 부부싸움이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 태종 때 박저생이라는 고관이 있었는데, 그 집안이 정말 그랬다. 박저생은 본래 색을 밝히는 편이었는지 한번은 지방관으로 나갔다 기생놀음에 빠져 파면되었다. 서울 본가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집안의 여종들을 늘 가까이했다. 질투를 느낀 아내가 반대하고 나서자 박저생은 조리 도구인 쇠꼬챙이로 아내를 마구 때렸다. 마침 장인이 조정 대신이어서 박저생을 사헌부에 고발했다. 결국 그들 부부는 조정의 명령으로 이혼했다. 그리고 박저생은 경상도 사천으로, 그 아내 이씨는 전라도 김제로 귀양 갔다.(태종 2년 6월11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설도 있지만 워낙 심하다 보니 국가가 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이쯤 되면 완전히 패가망신한 꼴이다. 바로 이런 극단적 예에 비추어 갓 쓴 양반들은 부부간에 그저 알아서 눈치껏 적당히 통제하고 눈감아주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의견이 제출된 것 같다.

마님의 찢어진 아랫배를 꿰매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예에서는 부적절한 관계를 주도한 쪽이 한결같이 남성들이었다. 농부의 아내와 총각의 경우는 모호한 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경우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성관계를 맺자고 먼저 애걸한 쪽은 남성이었다. 그렇다면 양반들의 담론에서 여성이 부적절한 관계를 주도한 예는 영영 찾아볼 수 없을까?

어느 양반의 부인이 친정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주인 양반은 부득불 종놈을 하나 따라가게 했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염려돼 바보 종놈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평소 가장 바보스러워 뵈던 노총각 종 막돌을 떠보았다. “막돌아! 너 옥문을 아느냐?”

막돌은 모른다고 대답했고, 양반은 다소 안심이 됐다. 그때가 마침 여름이어서 모기 한 마리가 달려들자 막돌은 되물었다. “나리, 저게 금방 말씀하신 옥문 아닌가요?” 양반은 마음이 놓여 안심하고 부인 행차에 막돌을 붙여 보냈다. 막돌은 마님을 모시고 길을 떠나 한참을 가다 함께 개울을 건너게 됐다. 물이 너무 깊어 막돌은 마님을 업어 건네지 못했다. 그들은 갈아입을 옷이 없어 속옷까지 다 벗고 건너게 되었다. 마님이 보았더니 막돌의 물건이 큼직한 것이 아주 좋아 보였다. 마님이 막돌을 희롱했다.

“네 다리 사이에 고기 막대기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
“예, 본래 어렸을 적부터 자그만 혹이 하나 있었습죠. 나이를 먹으면서 이게 자꾸 커져 이만해졌습니다.”
그러자 마님이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나도 본래 두 다리 사이에 움푹 팬 데가 있었는데 점점 커져 이제는 깊은 구멍이 되고 말았구나. 네 고기 방망이로 깊이나 한번 재 보았으면 좋으련만!”

이 말을 들은 막돌은 몸뚱이에 불이 타올라 견딜 수 없었다. 마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개울을 건너자마자 누가 보거나 말거나 정신없이 그 일을 했다. 양반은 마누라를 떠나보내 놓고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동네 산꼭대기에 올라가 살피고 있었는데 믿었던 바보 종 막돌과 마누라가 한창 그 짓을 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양반은 소리 소리치며 쫓아갔다. 막돌은 태연한 표정으로 송곳과 노끈을 꺼내 무엇을 고치는 시늉을 했다.

"마님이 말에서 떨어지셨는데 온몸을 살펴보니 배꼽 아래 한 치 정도 째진 데가 있어 그냥 놔두면 풍독(風毒)이 생길 것 같았습죠. 그래서 지금 구멍을 꿰매려는 중이옵니다.”양반은 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서라. 그 구멍은 날 때부터 있는 것이니 그냥 놔둬도 일없다!”

양반이 아내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제 아무리 노력해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마님은 사내종 막돌의 씩씩한 물건이 탐났고, 막돌도 마님의 곱고 부드러운 속살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문을 벗어나기 무섭게 상대방의 몸을 희롱했다. 결국 바보가 되고 만 사람은 두 사람을 굳게 믿었던 주인 양반뿐이다.

마님과 사내종의 부적절한 관계는 발각되었다. 그때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마님은 기절한 것으로 가장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도 모르는 체했다. 꾀 많은 ‘바보 종’ 막돌은 다시 바보 노릇을 연출해 위기를 무난히 넘겼다.

그러나 이야기에서처럼 사내종과 안방마님의 부적절한 성관계는 극히 드물었다. 여종과 주인 양반의 관계가 매우 흔했던 것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일탈의 관계를 주도할 마님의 권력이 주인 양반에 비해 워낙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마님의 탈선은 주인의 장기 부재 또는 죽음을 기화로 삼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성의 부적절한 관계는 용서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다시 구체적 예를 살펴보자. 성종 때 사내종 막산이 자기의 옛 마님과 동거하다 발각됐다. 본래 주인 양반 강순은 역모 사건에 관련돼 사형을 당했다. 강순이 죽은 지 한 해도 안 돼서 마님은 막산과 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 마님은 강순이 역적으로 처벌되는 바람에 남의 집안 여종으로 신분이 강등됐다.

종이 되고 만 그녀는 막산의 아내가 되기를 갈망했다.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그녀는 막산의 본처를 매로 때려 쫓아내고 자기가 그 집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양반 노릇을 못할 바에야 사랑하는 막산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양반들은 타락한 여성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사헌부 관리들은 이 사건을 국왕에게 보고하면서 요점을 이렇게 간추렸다. “그 여인은 음탕하고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윤리를 땅에 떨어뜨렸으므로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형법에 따라 그 여인과 막산의 목을 베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풍속을 바로잡으소서.”

본래 양반의 아내였던 한 여성이 집에서 부리던 사내종의 아내로 변신해 종의 자녀를 낳아 기르며 산다는 사실을 양반들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마침 그 무렵에는 사면령이 선포돼 있어서 웬만한 죄는 모두 용서받았다.

그럼에도 양반들은 여주인과 사내종의 부적절한 관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임금도 양반들의 의견을 따랐다.(성종 2년 3월17일) 국왕과 양반들은 마님 출신 여성의 부적절한 관계를 조선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내가 하면 연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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