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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사업만 키운다, 구광모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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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구광모 LG 회장

구광모 LG 회장

LG전자가 5일 이사회를 열고 스마트폰 사업(MC사업본부)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 1월 20일 권봉석 사장이 사업 재검토를 발표한 지 75일 만이다. 그동안 베트남 빈그룹이나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구글 등에 스마트폰 사업을 매각하는 협상을 벌였지만 모두 무산됐다고 한다.

LG 스마트폰 사업 26년 만에 철수 #구 회장 취임뒤 ‘선택과 집중’ 강조 #연료전지·LCD 등 적자사업 접어 #롤러블 등 2만 건 넘는 특허 활용 #차 전장, AI·로봇 미래사업에 집중 #3700명 고용승계, AS는 계속 제공

LG폰은 1995년 LG정보통신이 개발한 화통으로 첫선을 보였다. LG정보통신은 2000년 LG전자와 합병했다. 이후 10년가량 LG전자는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2005년 초콜릿폰, 2007년 프라다폰은 당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LG전자는 2010년 3분기에 2800만 대를 팔며 세계 휴대전화 시장 3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글로벌 점유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스마트폰 글로벌 점유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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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이후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지만 LG전자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LG전자는 2010년 첫 스마트폰인 옵티머스를 출시한 이후 G와 V시리즈, 벨벳, 윙 등을 선보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피처폰의 영광을 잊지 못한 LG전자 경영진이 기술이 아닌 마케팅에 집중한 것이 ‘악수’였다”고 지적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하자 LG의 고민은 깊어졌다. 스마트폰 사업은 2015년 2분기 이후 23분기 연속으로 영업 적자를 냈다. 누적 적자는 5조원대였다. 하지만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쉽게 접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가전을 비롯해 전기차와 미래형 모빌리티(이동수단)의 허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철수 결정엔 구광모 LG 회장의 결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회사 안팎에선 보고 있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구 회장은 연료전지와 액정표시장치(LCD), 전자결제 등 적자 사업의 과감한 철수를 선언했다. 구 회장은 권 사장 등 LG전자 경영진과도 오랜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사업을 종료하는 게 중·장기 관점에서 전략적 이득이란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앞으로 LG전자는 자동차 전장과 인공지능(AI)·로봇 등 미래 신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스마트폰·이동통신 분야의 특허 2만4000여 건은 신사업과 연계한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철수 결정으로 업계가 주목했던 롤러블폰은 볼 수 없게 됐다. 롤러블폰은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 가전 전시회인 ‘CES 2021’에서 5초가량 티저 영상으로 공개했다. 화면이 접히는 폴더블폰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LG전자는 앞으로 진행할 신사업에 롤러블 기술을 연계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종료해도 6세대(6G) 이동통신과 카메라, 소프트웨어 등 핵심 모바일 기술의 연구개발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LG폰 출시부터 철수까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LG폰 출시부터 철수까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제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만 남는다. 삼성전자도 시험대에 놓여 있다. 여전히 세계 1위지만 10년을 지켜왔던 20%대 점유율이 지난해 무너졌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19.5%였다. 그 뒤를 애플(15.5%)과 화웨이(14.4%)가 추격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LG전자가 철수하면서 ‘원톱’인 삼성전자에도 악재”라며 “인재 공급이나 연구개발, 부품 공급 등에서 차질을 빚으면 ‘한국 폰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LG폰 빈 자리 잡자, 삼성 ‘7만원 보상’ 샤오미는 ‘공짜폰’

LG전자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사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LG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63%에 그쳤다. 다만 국내에선 삼성전자(64.6%)와 애플(25.6%)에 이어 LG전자는 6.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부터 LG전자의 V50을 반납하고 갤럭시S 시리즈로 갈아타는 소비자에게 7만원의 웃돈을 주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수리비와 보험료 10%를 깎아 준다. 애플은 지난 2월엔 서울 여의도에 국내 두 번째로 애플스토어를 열고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짓하고 있다. 샤오미는 지난달 출시한 중저가 스마트폰인 ‘홍미노트10’의 공시 지원금을 대폭 확대했다. 사실상 ‘공짜폰’으로 판매 중이다. 업계에선 그동안 LG전자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 운영체계(OS)를 사용했던 것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나 샤오미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LG전자는 MC사업본부의 모든 인력(3700여 명)을 다른 부서나 LG마그나·LG에너지솔루션 등 계열사에 분산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LG폰 소비자에 대한 사후서비스(AS)는 불편함 없이 제공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스마트폰 OS 업그레이드는 출시 후 2년, 단말기 보수는 4년 정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LG전자의 스마트폰 철수는) 미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존 인력의 재배치로 핵심 두뇌의 이탈 우려도 적다”고 말했다.

5일 코스피 시장에서 LG전자의 주가는 전날보다 2.54% 내린 15만4500원에 마감했다.

최현주·김경진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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