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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막힌건 파라오의 저주? 미라 22구 행진이 만든 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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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수에즈운하를 막은 3월 23일 이후 이집트에선 각종 사고 뉴스가 줄을 이었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3월 26일에는 남부에서 열차 두 대가 충돌해 32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누군가 긴급 안전장치를 당겨 열차가 급정거하면서 뒤따라오는 다른 열차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바로 다음 날에는 수도 카이로에서 주거용 건물이 무너지면서 18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했다. 기자를 비롯한 두 곳에서 건설 중인 다리의 구조물이 무너졌다. 세 군데 이상의 도시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4월 3일 고대 왕족 미라 22구 이동 #이집트박물관서 문명박물관으로 #고대 전차로 에스코트 의식 정중 #관광대국 이집트 포스트코로나 노려 #고대에 도굴 피해 집단 안장한 미라 #19세기 한꺼번에 발견 카이로 옮겨 #람세스2세,하트셉수트 여왕 등 유명 #부장품 없이 관과 표식, 미라만 남아 #이번에 다시 이동 새 보금자리 찾아 #인터넷에선 수에즈운하 사고 연관설 #100년 묵은 파라오 저주설 재확산 #고고학자 하와스, “지금껏 사고 없었다”

4월 3일 22구의 미라가 옮겨간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 관 두껑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4월 3일 22구의 미라가 옮겨간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 관 두껑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수에즈운하 막힌 게 파라오 저주 탓?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파라오의 저주가 현실이 되나’라는 제목으로 이를 기사로 다뤘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이런 일련의 사건의 4월 3일의 고대 이집트 미라 22구를 이집트박물관에서 2017년 개관한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행사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내용이다. 데일리메일은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왕의 평온을 방해하면 급사할 것’이라는 오래된 저주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7년 부분적으로 개관한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이집트 유물. AFP=연합뉴스

2017년 부분적으로 개관한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이집트 유물. AFP=연합뉴스

영국 제1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대중지 더선은 ‘람세스의 복수: 이집트에서 벌어진 수에즈운하 혼란과 다른 2가지 재해는 람세스 2세의 몸을 옮기려는 계획에 대한 ’파라오의 저주‘ 탓이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로 4월 3일 장소를 옮기는 고대 이집트 미라 22구 중에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중 가장 유명한 람세스 2세의 미라도 있다.
대중지가 아닌 정론지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포스트도 ‘파라오의 저주가 수에즈운하 위기와 다른 이집트 재해를 일으켰나’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이집트의 어려움에 초자연적인 원인이 작용했을까 우려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한 셈이다. 미국 NBC방송과 호주 공영 ABC 뉴스도 이를 전했다.

4월 3일 이입트의 수도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고대 파라오와 여왕, 왕비의 미라 22구가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운구차는 고대 미라를 나일강 덩쪽의 사람이 사는 곳에서 서쪽의 죽은 자들ㅇ이 사는 곳으로 옮길 사용했던 장례 선박의 모습에서 따왔다. AP=연합뉴스)

4월 3일 이입트의 수도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고대 파라오와 여왕, 왕비의 미라 22구가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운구차는 고대 미라를 나일강 덩쪽의 사람이 사는 곳에서 서쪽의 죽은 자들ㅇ이 사는 곳으로 옮길 사용했던 장례 선박의 모습에서 따왔다. AP=연합뉴스)

‘파라오 저주’ 100년 전 투탕카멘 때 확산  

‘파라오의 저주’ 또는 ‘투탕카멘의 저주’는 생긴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낡디낡은 레퍼토리다. 사람들과 미디어의 입에 오르내린 ‘저주 시리즈’ 중에서 거의 고전급이다. 이미 수많은 영화나 공포물의 소재가 됐다.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21세기 소셜 미디어에 버젓이 나온 것이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대략 기원전 1549/1550~기원전 1292년)의 후반인, 대략 기원전 1342~기원전 1325년에 이 나라를 통치했던 파라오다. 이집트 중부 룩소르에 있는 그의 묘지는 영국 금융인 조지 허버트 카나번 경의 후원을 받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굴했다. 다른 묘지 아래에 자리 잡아 도굴을 피한 덕분에 거의 완벽한 파라오의 관과 황금 가면, 5000점 이상의 부장품이 발견됐다.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이슬람 지구인 푸스타트에 있는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이송되는 고대 이잡트 미라의 관뚜껑. 진동 방지 장치가 된 상자 안에 넣어 이동했다. 로이터=연합뉴스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이슬람 지구인 푸스타트에 있는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이송되는 고대 이잡트 미라의 관뚜껑. 진동 방지 장치가 된 상자 안에 넣어 이동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투탕카멘 묘의 발견은 1922년 11월 4일 이뤄졌으며 1923년 2월 17일까지 모든 부장품을 발굴했다. 그 뒤에 미처 2달이 지나기 전인 1923년 4월 5일 후원자인 카나번 경이 56세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전 세계에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이를 보도한 영국의 한 대중지가 그의 죽음이 ‘파라오의 저주’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다.

지난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뤄진 파라오의 황금 행진의 모습. 미라를 옮기는 차량마다 해당 미라의 주인공 이름이 영어와 아랍어,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신성 문자로 적었다. 미라 운송 차량이 지나가는 길은 고대 이집트인 차람의 사람들이 지켰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뤄진 파라오의 황금 행진의 모습. 미라를 옮기는 차량마다 해당 미라의 주인공 이름이 영어와 아랍어,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신성 문자로 적었다. 미라 운송 차량이 지나가는 길은 고대 이집트인 차람의 사람들이 지켰다. 신화=연합뉴스

1912년 타이태닉 침몰 때도 ‘미라의 저주’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국가들이 이집트에서 수많은 고대 보물을 자국으로 가져가 박물관에 채워 넣으면서 미라와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묘한 호기심과 함께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미라의 저주’라는 황당한 주장이 탄생했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기도 전인 1912년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최신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침몰하자 ‘미라의 저주’라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카나번 경의 죽음과 함께 발굴을 전후해서 숨진 사람에 대한 조사 결과 의문의 죽음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억측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수에즈 사고가 파라오의 저주 때문이라는 일부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집트의 유명 고고학자인 자히 하와스 박사는 이집트 일간 인디펜던트에 “그런 소문을 듣고 경악했다”며 “수십 개의 고대 이집트 무덤을 발굴했지만 아무도 불운이나 질병, 죽음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미라 운송 행사에서 운송 상자 안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가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미라 운송 행사에서 운송 상자 안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가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는 테쿰세의 저주설 횡행  

사실 ‘저주 시리즈’는 수시로 전 세계 미디어를 달군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멀쩡한 나라에서 이런 ‘초자연적인 저주’를 다룬다. 소셜 미디어는 더욱 열광한다.
미국에선 ‘테쿰세의 저주’가 유명하다. 미국에 저항하다 1813년 목숨을 잃은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 테쿰세가 ‘20년마다 0으로 끝나는 해에 당선한 미국 대통령은 임기 도중에 죽을 것’이라고 저주했다는 이야기다. 1960년 당선한 존 F. 케네디가 63년 암살당하면서 비로소 확산된  ‘저주설’이다.
따지고 보니 묘하게도 미국에서 임기 중 사망한 대통령은 여기에 해당한다. 1840년 당선한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이듬해 폐렴으로 숨졌으며 1860년 처음 당선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암살당했다. 1880년 당선한 제임스 가필드와 1900년에 재선한 윌리엄 매켄지는 각각 암살당했다. 1920년 당선한 워런 하딩은 1923년 심장마비로, 1940년 재선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45년 뇌출혈로 각각 숨졌다.
하지만 1980년 처음 당선한 로널드 레이건은 암살미수범의 총에 맞았지만, 목숨을 건지고 무사히 재선했다. 2000년 당선한 조지 W 부시는 2005년 그루지야에서 연설하다 수류탄 공격을 받았지만 무사했다. 이 두 대통령이 예외가 되니까 이번엔 ‘이들이 인디언들에게 잘 해줘서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덧붙었다. 끈질긴 생명력의 저주론이다.

4월 3일 미라가 지나는 길을 고대 이집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4월 3일 미라가 지나는 길을 고대 이집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옛소련에는 티무르의 저주설이 확산  

저주론은 공산권에서도 있다. 옛 소련에선 티무르의 저주가 그럴싸한 이야기로 돌았다. 1941년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고고학자들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로 보내 14세기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정복자 티무르의 묘를 발굴하게 했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에 따르면 티무르의 석관에는 ‘누구든 내 안식처를 건드리는 자는 내가 한 것보다 심한 침략을 받게 될 것’이란 저주가 적혔다고 한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무덤을 열었다. 그런 뒤 불과 며칠 만에 소련은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았다. 이 전쟁에서 소련은 2600만 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1942년 스탈린은 다시 고고학자를 보내 티무르의 석관을 닫게 했다. 그 뒤 소련은 1943년 2월 초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쟁을 수세에서 공세로 돌렸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봐도 역사 끼워 맞추기다.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곁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미라들이 나와서 5km쯤 떨어진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4월 3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곁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미라들이 나와서 5km쯤 떨어진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집트선 4월 3일 ‘파라오 황금 행진’

이런 저주설 끝에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선 4월 3일 18명의 왕과 4명의 왕비 또는 여왕을 포함한 22구의 미라가 정중하게 이동했다. 이집트 관광·고고학부는 이 행사를 ‘파라오의 황금 행진’으로 이름 붙였다. BBC는 이집트 당국이 이번 행사에 수백만 미국 달러를 들였다고 보도했다.
BBC방송은 이들이 1902년 지어진 복숭앗빛 이집트 박물관 건물에서 나와 5㎞ 떨어진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까지 30분에 걸쳐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라는 시대순으로 17왕조 시대(기원전 1580~기원전 1550년)의 파라오인 세켄엔라 타아 2세부터 20왕조 시대(기원전 1189년~기원전 1072년)의 파라오인 람세스 9세까지 줄지어 이동했다.
BBC는 이 가운데 이집트를 67년간 통치하며 이집트와 이웃 히타이트가 체결한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인 카데시 조약을 맺은 람세스 2세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이 조약을 새긴 부조의 복제품이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 전시돼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을 기린다.

4월 3일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고대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가 새 단장을 하고 행인들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월 3일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고대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가 새 단장을 하고 행인들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의 거대한 사원과 자신의 조각상을 비롯해 이집트 전역에서 거대 건축물을 남겼다. 덕분에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됐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이집트 탈출과 관련된 파라오 후보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이집트 박물관에선 그의 미라를 비롯한 일부 유명 파라오의 미라를 특별전에서 공개해왔다. 관객들은 입장료 외에 상당한 액수의 관람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1998년 이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90세로 사망한 노인의 미라인데도 람세스 2세는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해 보였다.

이집트의 알델 파타 엘 시시 대통령이 미라 이동 장면을 직접 나와서 보고 있다. 관광은 수에즈운하와 더불어 이집트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의 알델 파타 엘 시시 대통령이 미라 이동 장면을 직접 나와서 보고 있다. 관광은 수에즈운하와 더불어 이집트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 대통령 친히 관람…행사 공들여

이집트 사상 2번째 여성 군주로 알려진 하트셉수트의 미라도 이번 행진을 거쳐 이동했다. 이번 황금 행진을 위해 이집트 당국은 많은 공을 들였다. 고대 장례식 때 사용했던 고대 선박의 모형을 만들어 그 안에 미라를 모시고 차량에 실었다. 현재 룩소르가 있는 나일 강 동쪽의 고대 도시 테베에서 나일 강을 건너 강 서쪽의 ‘왕들의 계곡’에 마련한 무덤으로 이동할 때 사용했던 장례용 선박을 본떴다.
미라는 질소가 충전된 상자에 안치해 환경 변화에도 손상당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이동 차량은 모두 충격 방지 장치를 설치했다. 차량 주변에는 모터사이클이 호위했으며, 말 두 마리가 끄는 고대 전차를 재현해 이를 따르게 했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이 고대 이집트인 복장으로 행렬을 이끌도록 했다. 도로도 새로 포장해 차량이 부드럽게 지나게 했다고 BBC는 전했다. 파라오의 행진은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 시시 대통령이 직접 나와 관람했다.

이집트 최고의 고대 이집트 학자인 자히 하아ㅗ스 박사.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 최고의 고대 이집트 학자인 자히 하아ㅗ스 박사. 로이터=연합뉴스

신왕조 미라 도굴 피해 한데 모아

이번에 이동한 대상은 이집트 신왕조(기원전 1550~기원전 1069년)의 파라오와 여왕 및 왕비의 미라다. 이들의 미라는 독특하게도 모두 한 두 곳에 모여 있었다. 1881년 아브델 라술이라는 도굴꾼이 염소가 굴에 빠지는 바람에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에도 미라의 보물을 노린 도굴꾼이 많아 고대 사제들이 골머리를 앓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무덤을 옮기는 등 별 방법을 다 사용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람세스 2세의 경우 다른 왕비의 묘에 옮겼다가 72시간 만에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 도굴꾼의 눈을 피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고대 사제들은 50구가 넘는 파라오와 여왕 및 왕비의 미라를 다시 아마포로 싸고 거기에 누구인지, 어떻게 옮겼는지를 기록된 뒤 목관에 넣고 굴속에 한꺼번에 넣고 보관했다. 이 집단 미라 무덤은 현재 TT320(과거에는 DB320)으로 불린다.
이번에는 도굴 없이 오랜 세월이 지났다. 보물도 없었다. 1881년 이를 발견한 도굴꾼 아브델 라술은 이를 프랑스인 고고학자에게 조금씩 팔려다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미라 운송 행렬 사이로 기수들이 고대 이집트의 전차의 모습을 재현해 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라 운송 행렬 사이로 기수들이 고대 이집트의 전차의 모습을 재현해 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집트, 관광자원 미라 글로벌 홍보

결국 1898년 발견한 왕족 미라는 모두 카이로로 옮겨졌다. 대부분은 룩소르에서 선박에 실려 나일 강을 거슬러 카이로까지 갔다. 현지 주민들은 울면서 고대 파라오가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고 한다. 일부 여성은 머리를 풀어헤쳤다고 한다. 극히 일부는 기차 1등 칸에 실려 이동했다. 3000~3500년 뒤의 후손들이 고대 파라오에게 왕과 왕비에 걸맞은 대우를 했다.
이미 고대에 여러 곳을 거쳐 TT320을 안식처를 찾았던 이들은 이미 100년도 더 전에 카이로로 옮겨져 박물관을 새 거처로 삼았다. 그러다 이번에 새집으로 옮긴 것이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파라오의 저주나, 미라의 저주를 부를 한도 없다. 미라와 관련된 초자연적인 현상이 보고된 적도 없다.
이렇게 황당한 파라오나 미라의 저주설이 확산하면 득을 보는 건 이집트 관광 당국이다. 이집트는 기존의 이집트 박물관 외에 이번에 미라들이 옮겨간 이집트 문명 박물관, 그리고 올해 개관 예정인 기자의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을 보유하게 된다. 이집트 박물관에 몰려 있던 유물을 분산하면서 보다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특별전을 열어 이집트의 고대 문화유산을 강조하고 관광 수익도 극대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집트는 파라오의 과거가 아닌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이동 퍼포먼스로 이집트는 이들을 관광자원으로서 전 세계에 다시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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