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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로라도 마시겠다"…'손님 북적' 유명 카페의 착시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의도 '더현대서울' 백화점 5층에 위치한 블루보틀 카페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 유튜브캡처

여의도 '더현대서울' 백화점 5층에 위치한 블루보틀 카페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 유튜브캡처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백화점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단연 카페들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원조인 블루보틀을 비롯해 테일러커피·카멜커피·미켈레커피 등 지역별로 유명세를 탄 곳들이다. 지난 25일, 평일 오후임에도 5층에 위치한 블루보틀 카페는 대기번호가 130번이 넘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를 걸어놓고 3시간째 백화점에 머물고 있다는 한 여성은 “(코로나로)가뜩이나 하고 싶은 걸 못하는데 카페도 못 가나 싶어 오기가 생겨서라도 마시고 가겠다”고 했다.

유명 카페 열풍은 ‘착시현상’?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커피전문점(카페) 시장은 약 5조4000억원으로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고, 국민 한 명이 카페에서 쓰는 돈도 연평균 약 10만4000원으로 세계 3위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이런 기류에 변화를 가져왔을까.

“코로나로 커피 매장들은 직격탄을 맞았어요. 일부 인기 카페들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만 보면 안 돼요. 그거는 착시현상이라고요. 임대료 부담에 폐업하는 카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지난 26일 서울 중구 스테이트타워 남산 빌딩 1층에 오픈한 스타벅스 '별다방점'을 이용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전세계 스타벅스 최초로 대형 디지털 예술작품 전시벽(아트 월)을 매장 내에 설치했다. 뉴스1

지난 26일 서울 중구 스테이트타워 남산 빌딩 1층에 오픈한 스타벅스 '별다방점'을 이용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전세계 스타벅스 최초로 대형 디지털 예술작품 전시벽(아트 월)을 매장 내에 설치했다. 뉴스1

한 커피업계 종사자의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카페들은 매장 내 시식금지, 1시간 이내 이용 권장, 4인 이상 이용 금지 등 사회적 거리두기 제재의 타깃이 됐다. 국내 1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코리아조차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6.1% 줄어 11년 만에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정도다.

연일 장사진을 이루는 카페 열풍에 대해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정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소셜미디어(SNS)를 방문하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동조현상과 함께 코로나로 지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가 커지고 있다”며 “커피는 큰 비용 부담없이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심비(가격대비 만족)’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대표적인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유일한 취미 맘 편히 누릴래요”

코로나로 카페는 매장별로 양극화가 심해졌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커피 문화는 한층 적극적으로 변했다. 대표적인 게 홈카페 열풍이다.

코로나에도 증가한 커피·커피기기 수입량.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에도 증가한 커피·커피기기 수입량.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직장인 김연주(39·서울 혜화동)씨는 최근 이탈리아 브랜드인 ‘드롱기’ 커피머신을 구입했다. 커피 원두를 넣으면 자동으로 에스프레소·아메리카노·카페라떼 등을 만들어 주는 전자동 제품이다. 내친김에 서울 동부이촌동, 부산 등에서 맛있다는 원두들을 택배로 구매해 맛보는 중이다. 김 씨는 “평소 카페투어가 유일한 취미였는데 코로나 이후 제약이 많아져 삶의 질이 떨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였지만 대만족”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원두를 넣으면 종류별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브레빌(왼쪽)'의 반자동 커피머신과 '필립스'의 전자동 커피머신 모습. 사진 각 업체

코로나 이후 원두를 넣으면 종류별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브레빌(왼쪽)'의 반자동 커피머신과 '필립스'의 전자동 커피머신 모습. 사진 각 업체

개인용 커피머신도 점점 고급화하고 있다. 코로나 전엔 원두를 갈아 필터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내리는 ‘커피메이커’나 물과 캡슐커피를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 ‘캡슐 커피머신’이 일반적이었다. 가격은 10만~30만 원대 정도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엔 원두를 갈아 필터에 담아 잘 다져넣고 추출하는 ‘반자동 커피머신’이나 원두와 물, 우유를 넣으면 종류별로 커피가 나오는 ‘전자동 커피머신’을 들이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브레빌(호주)’ ‘유라(스위스)’ ‘밀레(독일)’등 수백만 원이 넘는 제품들이 즐비하다.

고가 커피머신 2~4배 팔린다 

필립스의 경우 지난해 6~12월 커피머신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88.6% 증가했으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립스 관계자는 “전자동 커피머신인 ‘5400 라떼고’의 경우 100만원 안팎의 고가지만 인기 색상의 경우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며 “집에서도 전문 매장처럼 제대로 된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예전보다 프리미엄 제품들이 잘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빌 역시 올해 1월 매출이 1년 전보다 무려 282% 증가했다.

국내 최대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에선 올 들어 일반 생활공간과 홈카페 공간을 구분하는 가림막(파티션)과 공간박스 판매가 지난해 초 대비 200% 이상 늘었다. 인기 브랜드의 카페장의 경우 후기(리뷰)가 300개 가까이 달리는 등 관심이 몰리고 있다.

코로나가 키운 ‘개인’ 커피 주도권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이디야커피의 커피 배달 서비스 모습과 캡슐커피 3종. 사진 이디야커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이디야커피의 커피 배달 서비스 모습과 캡슐커피 3종. 사진 이디야커피

사람들은 배달로라도 커피를 마시려고 했다. 전국 2100여점에서 커피 배달 서비스를 운영 중인 이디야커피를 살펴보니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배달 매출이 전달보다 57% 증가하며 최고치를 찍었다.

주문은 하루 중 11~14시, 17~20시에 집중되고 있다. 점심·저녁 식사시간 전후 매장을 이용하던 기존 고객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이디야는 집과 사무실에서 더 다양한 맛의 커피를 즐기려는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11월 3가지 종류의 캡슐커피를 내놓고 지난달 기존 커피믹스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이디야커피 배달판매 증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디야커피 배달판매 증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오는 1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21 서울카페쇼’를 준비 중인 엑스포럼의 오윤정 이사는 “그동안 한국은 카페에서 소비되는 커피 문화가 주를 이뤘지만 코로나 이후 개인이나 가정을 중심으로 커피를 즐기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커피 업계 종사자들도 커피 드립백이나 가정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생지(빵반죽), 작은 크기의 시럽을 만드는 등 B2C(기업-소비자간 거래)로 전략을 바꿔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커피 매장은 홈카페와 함께 여전히 건재할 것으로 봤다. 오 이사는 “한국에선 집이나 직장이 아닌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욕구가 크다”며 “카페는 이미 ‘사랑방’같은 역할을 하는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개인 수요는 물론 기업이나 브랜드와의 협업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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