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본준 ‘독한 경영 2.0’ 가속도, ESG 신사업 키운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29호 14면

LG그룹 구본준(69) 고문이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의 경영철학을 상징하는 키워드인 ‘독한 경영’도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LG그룹 지주사인 ㈜LG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방식으로 새 지주사 LX홀딩스를 설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구 고문은 오는 5월부터 5개 계열사(LG상사·LG하우시스·판토스·실리콘웍스·LG MMA)로 구성된 LX그룹을 이끌고 독자 노선을 걷는다. LX그룹의 덩치는 작지 않다. 지난해 기준 매출만 19조원에 이른다.

LG서 5월 분가하는 LX그룹 #실리콘웍스 등 5개 계열사로 구성 #폐기물처리·관광·의료업 등 도전 #LG전자 구원투수 역할 해낸 경험 #성과주의 통한 고강도 혁신 강조

이번 계열 분리는 LG 가문 특유의 가족경영 전통에 따른 것이다. LG그룹에서는 2004년에도 공동 창업주 가문인 허씨 일가가 비슷한 방식으로 독립해 GS그룹을 세운 전례가 있다(GS홀딩스를 중심으로 LG칼텍스·LG홈쇼핑·LG건설 등 13개 계열사 편입). LG그룹에 정통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가족회의에서 계열 분리할 5개 회사를 정한 걸로 안다”며 “당초 구 고문이 원했던 LG유플러스는 논의 끝에 남기고, 대신 LG하우시스를 포함시키는 걸로 절충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오너 가문 구성원들이 가진 ㈜LG 지분율이 엇비슷해서 어느 누구도 고집을 부릴 구조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구 고문은 2018년 형인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 별세 후 구광모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기까지 ㈜LG를 이끌며 징검다리 역할에 충실해왔다.

LG그룹·재계 복수의 취재원 전언을 종합해보면, LG그룹은 계열 분리 후 선택과 집중을 중시해온 구광모 회장의 ‘실리 경영’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비주력 사업을 더 정리하고 자동차 전자장비 등 이미 공을 들이고 있는 신성장 사업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LX그룹은 구본준 고문이 과거 이끌었던 LG상사를 주축으로 새로운 분야 도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 투자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진정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 맞춤형 신사업 추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예컨대 LG상사는 지난 24일 열린 주총에서 2009년 이후 12년 만에 사업목적 추가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새로 추가한 사업은 ▶폐기물 수집·운송업과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운영업 ▶관광·숙박업 ▶통신판매업·전자상거래 ▶디지털 콘텐트 제작·유통·중개업 ▶소프트웨어·플랫폼·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운영·판매업 ▶데이터베이스·온라인정보제공업 ▶의료 검사·분석·진단서비스업이다. 폐기물 관련 사업으로 시대적 흐름인 ESG 경영의 핵심인 친환경 분야에 도전하면서,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급증할 관광·숙박업과 의료 진단서비스업 등을 포섭할 계획을 염두에 뒀음을 뜻한다.

구 고문은 각계 인사들과의 교류, 각종 서적과 신문 정독 등으로 LX그룹의 비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ESG와 포스트 코로나 투자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LG상사는 지난해 1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안정적 재무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신사업 도전 여력이 충분하다. LX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은 각각 재무구조 개선과 실탄 확보로 그룹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데 나설 계획이다. LG하우시스는 자동차 소재와 산업용 필름 부문 매각을 추진 중이다. LG상사 산하의 판토스는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예정이다.

구 고문은 이른바 독한 경영으로 혁신이 절실했던 LG전자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경험이 있다. 그가 LG전자 대표에 오른 2010년 10월 당시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 진입 타이밍을 놓쳤다는 평가 속에 영업손실 누적으로 고전 중이었다. 전문경영인 체제였던 LG전자가 총수 가문 일원인 구본준 체제로 급히 재편된 배경 중 하나였다. 당시 구 고문은 LG전자를 맡자마자 임직원들에게 “독한 조직문화를 LG전자의 기업 DNA로 삼겠다” “독한 실행으로 승자가 되자” “싸움닭 같은 투지로 임하자” 등의 표현을 쓰며 고강도 혁신을 강조했다. 인화를 강조하는 LG그룹의 기업문화에서 이례적 구호였다.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2011년 LG전자 모든 임직원의 출퇴근 시간을 1시간씩 앞당긴 8·5제를 도입했는가 하면, 인사고과에도 성과주의를 엄격히 적용해 타성에 젖은 조직문화를 개선시키는 데 힘썼다. 2012년엔 업무 효율성 중심의 스마트워크를 강조하면서 윗선에 올리는 모든 보고서 분량을 A4용지 5매 이내로 제한했다. 형식을 중시해 불필요하게 힘만 빼는 보고서 작성문화를 없앤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체질 개선 노력에 힘입어 LG전자는 2014년 영업이익 1조원대를 회복했다.

구 고문은 LX그룹에서도 성과주의를 재차 강조한 ‘독한 경영 2.0’으로 기틀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또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고문은 과거 자신이 몸 담은 회사마다 공통적으로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에 적극 힘썼다”며 “내부에서는 비슷한 희소식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실리콘웍스는 올 초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600%라는 역대급 성과급 지급을 확정했는데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LG그룹 일부 계열사들은 경쟁사 대비 임금 수준이 뒤떨어진다면서 직원들 반발이 거세자 급여 인상에 나서기도 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