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들에 "집 가자 어여"…잠수교 도배된 노란 포스트잇

중앙일보

입력 2021.03.25 06:00

김씨의 가족들이 잠수교에 붙여둔 쪽지들. 김씨의 어머니는 ″엄마 글씨를 보고 집에 돌아올 수도 있으니 직접 써서 붙여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권혜림 기자

김씨의 가족들이 잠수교에 붙여둔 쪽지들. 김씨의 어머니는 ″엄마 글씨를 보고 집에 돌아올 수도 있으니 직접 써서 붙여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권혜림 기자

'아들 김성훈, 집에 가자 어여. 엄마는 울 아들이 필요한데.'

최근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낸 '잠수교 쪽지' 내용 중 일부다. 쪽지 속 '아들' 김성훈(25)씨는 지난 7일 서울 잠수교에 자신의 차량을 세워두고 사라졌다. 차량이 계속 방치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시민이 12일 경찰에 신고했다.

소식을 들은 가족은 김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해남에서 서울로 한달음에 올라왔다. 김씨가 혹시라도 읽고 마음을 돌릴까 노란 포스트잇에 메시지를 적어 잠수교 난간 곳곳에 붙였다. 김씨의 형제들은 전단을 인쇄해 붙이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내 글씨체를 아니까, 엄마 글씨를 보고 집에 돌아올 수도 있으니 직접 써서 붙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휴대폰엔 "엄마 아빠 죄송해요" 영상

김씨는 지난달 "일하러 간다"며 해남에서 상경했다. 평소 독립심이 강하고 간섭받기 싫어했던 막내였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를 믿고 지지해줬다. 김씨의 큰 누나는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엄마가 동생과의 마지막 통화 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지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조만간 해남 내려간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김씨의 차 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블랙박스는 잠수교에 도착한 이후로 끊긴 상태였다. 잠수교 CC(폐쇄회로)TV도 김씨의 차량을 비추지 않고 있어 행방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차량에 남겨진 두 대의 휴대폰에는 극단 선택을 암시하는 1분짜리 영상이 있었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큰누나, 작은누나 미안해. 잘해보려고 했는데, 자꾸만 잘 안됐어"라는 내용이었다. 극단 선택 관련 사이트를 통해 일행을 구하거나 개인 파산 회생 단어를 검색한 기록도 남아 있었다.

김씨의 흔적을 쫓다 보니 가족들도 몰랐던 새로운 내용이 나왔다. 김씨는 지난해 이미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휴대폰 용품 관련 사업자 등록을 했다. 지난달 서울에 간다던 김씨는 경기도 오산에 원룸을 얻어 살고 있었다. 거액의 대출도 받았다고 한다. 김씨 아버지는 "금융 내역을 보니 4500만원 이상 대출을 받았더라. 대출을 받고 나서 중간에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씨가 잠수교에 주차해둔 차량. 사진 가족 제공

김씨가 잠수교에 주차해둔 차량. 사진 가족 제공

실종 보름 넘어…가족들은 "답답하다"

김씨 실종 건은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김씨가 사라진 지 17일 째지만 잠수교에서 투신한 건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건지조차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다. 김씨 가족들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CCTV 영상도 하나 찾지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차량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김씨의 인상착의를 올려 목격자나 블랙박스 영상 등도 수소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주차해 놓은 곳을 비추는 CCTV가 없고, 사라진 날로부터 신고 시점까지 시간이 길어 영상 확보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 투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강 순찰대와 협업해서 순찰하고 있고 지난주에는 잠수부도 투입해 수색했다"며 "최종적으로 김씨가 어디에 있었냐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카드사용내역, 병원 이용 내역 등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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