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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달려라, 봉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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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EYE팀 기자

장주영 EYE팀 기자

그에게는 간결한 자세로 착착 치고 나가는 경쾌함이 없었다. 상체는 살짝 젖혀졌고, 휘젓는 팔 동작은 어딘지 모르게 투박했다. 지켜보는 사람은 ‘벌써 지쳤나’ 마음을 졸였지만, 기어코 그는 끝까지 내달렸다. 의지의 마라토너 이봉주(51) 이야기다.

이봉주는 올림픽 월계관을 써보지 못했다. 손기정(1912~2002)이나 황영조와 비교된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망국의 한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봉주와 동갑인 황영조는 타고난 튼튼한 심장으로 풀코스 도전 4번 만에 1992년 바르셀로나 몬주익의 영웅이 됐다. 반면 이봉주는 풀코스 도전 15번 만에 애틀랜타올림픽(1996)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8년 베이징까지 4회 연속 출전했지만, 순위에 든 건 이때가 유일했다.

그래도 이봉주는 한국 마라톤의 역사다. 그보다 잘 뛴 사람도, 오래 뛴 사람도 없다. 아시아경기대회 2연패(1998·2002)와 보스턴마라톤 우승(2001)의 쾌거를 이뤘으며, 40세까지 현역으로 41차례 풀코스를 완주했다. 2000년 세운 2시간 7분 20초의 한국기록은 21년째 난공불락이다.

그는 마라토너로서 치명적인 짝발(253㎜, 249㎜)에다 평발을 타고났다. 달릴 때 오른발이 바깥쪽으로 살짝 틀어지고 오른팔을 많이 휘젓는 특유의 주법은 신체적 약점을 극복한 그 나름의 균형이다. 남보다 덜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게으른 천재도 박수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노력과 꾸준함으로 약점을 이겨낸 사람에겐 더 큰 박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각(鐵脚)의 최근 소식은 믿기 어렵다. 이봉주는 근육긴장이상증으로 1년째 투병 중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비틀어지는 신경성 질환이다. TV에 출연한 그는 “다시 뛰지 못할까 두렵다”면서도 “내 인생은 하프 조금 지났다. 이젠 정신력이다”고 재활을 다짐했다.

2000년 시드니의 이봉주를 기억한다. 그는 15㎞ 지점에서 상대와 엉켜 넘어졌다. 상대는 경기를 포기했다. 이봉주는 툭툭 털고 일어나 24위로 결승선을 지났다. 쓰러져도 포기 않고 완주하는 것, 그게 원래 그의 방식이었다. 좀 느리면 어떤가. 다시 달려라, 봉달이!

장주영 EYE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