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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64) 불면의 좋은 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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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불면의 좋은 시간
구중서(1936∼ )

잠 아니 오는 밤을 반기면 어떠하리
마음과 말을 엮어 시를 쓰면 되리라
모처럼 고요한 때를 알뜰히 거두겠네

새벽에 일찍 깨면 머릿속이 맑아라
생광스레 생각난 말 다듬고 가려내어
머리맡 엷은 불 켜고 엎드려 적으리라

- 우리시대현대시조선101/150 ‘모자라듯’

코로나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려고 애를 쓸수록 잠은 더욱 멀리 달아난다. 하얗게 밤을 새우고는 낮에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잠 안 오는 밤을 오히려 반긴다. 모처럼 조용한 때를 만났으니 시를 쓰겠다는 것이다. 머리맡에 엷은 불을 켜고 엎드려 그 시간을 보람 있게 활용하겠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불면이 오히려 축복이다.

인간의 적응력은 위대하다. 코로나19 상황이 1년을 훌쩍 넘기자 이 처음 겪는 현상에 적응하는 갖가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았다. 이 기회를 자기 성찰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모처럼 경험하는 느림과 멈춤 속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볼 수도 있다. 시인들은 시집을 내면 서로 보내주는데 내게 오는 시집의 양이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팬데믹이 시인들에게는 오히려 창작열을 자극하는 것일까? 문학 평론으로 일가를 이룬 구중서 선생도 요즘은 시조 쓰기에 좋은 시간이리라.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