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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필드는 스크린 골프장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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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스크린 골프를 통한 골프 입문자가 늘면서 골프산업이 성장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뉴스1]

스크린 골프를 통한 골프 입문자가 늘면서 골프산업이 성장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뉴스1]

그린 위에서 퍼트를 준비하던 골퍼가 캐디에게 물었다. “여기 몇 칸 봐요?” 당황한 캐디가 말했다. “네?”

초보자 급증 여파로 낯선 풍경들 #스크린서 하던 것 필드서 하기도 #에티켓 무시에 안전 사고도 생겨 #매너와 에티켓부터 배운 뒤 공을

스크린 골프가 대중화된 뒤로 생겨난 장면이라고 한다. 골퍼에게 첫 라운드는 나름 엄숙한 의식이었다. ‘머리를 올린다’고 표현했고, 군대 신병처럼 바짝 긴장했다. 연습장에서 스윙을 배웠어도 안전, 에티켓, 규칙 준수, 플레이 시간 등에 대한 교육으로 골프 라운드의 ABC를 배웠다.

골프 초보자인 이른바 ‘골린이(골프+어린이)’가 늘었다. 골프장에 젊은 층이 많아져 분위기도 밝다. 덕분에 골프 산업이 성장했다. 그동안 골프가 너무 폐쇄적이었던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단점도 있다. 한 캐디는 “초보인데도 스크린 골프를 해봤기 때문에 ‘골프를 안다’고 생각하는 분이 꽤 많다”고 했다. 한 골프장 대표는 “경력자와 같이 와서 배우면 좋은데, 그들끼리만 왔을 때는 문제가 간혹 생긴다”고 했다.

스크린 골프와 진짜 골프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7번 아이언으로 130m도 나가지 않는 골퍼가 “스크린에서는 150m 나가는데 골프장이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크린 골프는 이용자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거리를 더 주고 공도 똑바로 나가게 하는 경우가 일부 있다. 걸핏하면 “F12(스크린골프에서 멀리건을 쓸 때 누르는 단축키) 눌러”라고 외친 뒤 공을 다시 치는 골퍼도 있다고 한다. 앞뒤 팀 간 간격, 플레이 시간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벙커와 디봇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도 많다. 골프장의 핵심인 그린은 특히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그린에서 연습 스윙을 하다가 디봇을 만들거나, 골프화 바닥 스파이크로 그린 위를 긁고 다니면 손해를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대회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실격이다. 프라이빗 골프장에서는 회원들이 정한 드레스코드를 지키는 게 예의다.

정말 중요한 건 안전사고다. 노 캐디 골프장의 경우, 앞 팀이 카트를 타고 티잉 그라운드를 떠나자마자 티샷을 하거나, 티잉 구역에 우르르 몰려가 동시에 연습 스윙하다 발생하는 사고가 의외로 잦다고 한다. 볼이 날아가는 각도, 섕크의 위험, 카트 안전도 배워야 한다. “포어(공 조심하라)”라고 외치면 머리를 보호하는 대신 공 쪽을 돌아보다 다치기도 한다.

공만 보이면 앞에 누가 있든 말든 무조건 치는 사람도 있다. 최근 공을 줍던 캐디를 10m 앞에 두고 스윙해 얼굴을 맞힌 뒤에도 끝까지 라운드를 마친 골퍼 얘기가 보도됐다. 안전이나 에티켓 교육을 받지 않은 골퍼로 보인다. 인격적인 문제 가능성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골프에 대한 인식이다. 스크린 골프장에서는 내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한 돈 통까지 비치한다. 그래서 일부 이용자는 ‘골프는 고스톱 18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내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골프의 흥미를 배가시킬 요소다. 다만, 자연과 벗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복잡한 상황을 겪으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스포츠가 골프라는 점을 되새기기를 바란다.

대한골프협회 김경수 경기위원은 “골프에 입문할 때 공 치는 것부터가 아니라, 매너와 에티켓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기본은 ‘골프는 양심과 배려의 스포츠’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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