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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원인의 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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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미국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금연하지 못하는 건설노동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 시골 지역에서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사망한 여성도, 동유럽의 IMF(국제통화기금)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던 나라에서 결핵에 걸린 어린이도, 개개인만을 바라본다면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위기 속에서 공공보건 의료 영역 투자를 줄이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71쪽)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17년 국내 언론사 대부분이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인용문은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 일부다. 세 가지 사례 모두 사망 원인과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 듯하다. 그들이 금연하지 않았고, AIDS나 결핵에 걸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원인 뒤에 사회적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흡연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 가입 엄두도 내지 못할 비싼 민간보험, IMF 구조조정으로 인한 공공보건 축소 등이다. 이런 사회적 원인이 바로 ‘원인의 원인(the causes of the causes)’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얻은 교훈은 바이러스가 사회의 가장 허약한 지점에 침투한다는 거다. 올 초부터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 집단감염도 그중 하나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지난달 하순부터 대구·경북·강원·전남·인천·광주 등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코로나 의무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서울이 17일 행정명령에 가세하면서 인권침해 문제가 드러났다. 서울과 인천은 비판에 반응했지만, 다른 지자체는 우이독경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감염 원인은 감염자 접촉이다. 의무검사는 이런 발병 원인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왜 외국인 노동자가 감염자와 접촉을 피할 수 없는지 말이다. 열악한 작업 및 거주 환경 같은 ‘원인의 원인’을 방치하는 한 의무검사 따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