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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체감 경제지표 악화일로…'국민행복지수'는 역대 최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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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삶이 악화한 것이 각종 체감지수로도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집값은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등 경제적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1일 민간 정책연구소인 국가미래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4분기 국민행복지수’는 50.88로 전 분기 대비 23.53포인트 하락했다. 2003년 1분기 지수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4분기(113.95)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다. 이전에는 카드사태가 있었던 2004년 4분기의 55.97이 가장 낮았다.

자료: 국가미래연구원

자료: 국가미래연구원

국가미래연구원이 개발한 이 지수는 1인당 소비지출과 정부·가계부채, 고용, 환경, 물가, 소득분배 등 34개의 주요 항목 값을 분석해 측정한다. 2003년 1분기를 기준(100)으로 매 분기 발표한다.

국민행복지수가 급락한 것은 삶의 질 항목 중 주택가격상승률 폭증에 따른 주거지수 하락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국가미래연구원은 설명했다. 실제 서울에서 내 집은 물론 전셋집을 마련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KB주택가격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9억 6480만원으로 2009년의 2배 이상으로 올랐다.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도 5억 9739만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월 가격(4억 4778만 원)과 비교해 보면 1억 4000만 원가량 오른 것이다. 지난해 7월 전월세상한제와 주택임대차법 개정안을 시행한 후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여기에 코로나19 방역 강화로 1인당 교양오락비, 1인당 실질최종소비, 가계의 교육비지출이 크게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집값 급등에 따른 주거 여건 악화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해 건강 및 교육환경이 나빠진 부정적 요인이 워낙 컸다”라며 “국민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과 함께 실질 최종소비를 늘리고  가계부채를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민경제고통지수도 통계 집계 이후 최악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제 고통을 계량화한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도 약 3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지표로,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이 고안해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ㆍ2월 ‘경제고통지수’는 각각 6.3ㆍ6.0을 기록했다. 지난해 낮은 물가 덕에 4 정도의 수준을 오가다가 올해부터 갑자기 수치가 뛴 것이다. 이는 2017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올들어 크게 오른 경제고통지수와 서민고통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들어 크게 오른 경제고통지수와 서민고통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1월에는 실업자가 157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5.7%로 2000년 2월 이후 가장 높았다. 80만개에 이르는 노인 공공일자리 사업 개시가 지연된 여파가 컸다. 지난달 실업률은 4.9%. 공공일자리 사업이 시작되면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1월보다는 숫자가 나아졌다. 그래도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가 1년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는 등 고용 충격은 여전하다.

여기에 심상치 않은 물가 상승세가 짐을 지웠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1.1%)은 1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는데, 전달보다 상승 폭이 가팔라졌다. 재난지원 명목으로 돈이 많이 풀렸고, 경기회복 기대감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라 물가 상승 압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범위를 서민 대상으로 좁히면 고통의 강도는 더 크다. 기관에 따라 고통지수를 구하는 요소를 달리 사용하기도 하는데,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2017년 생활물가상승률과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을 더한 ‘서민경제고통지수’를 내놓은 바 있다. 경제고통지수보다 서민 생활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산식을 적용하면 지난 1월 서민경제고통지수는 17.1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높다. 그다음으로 높은 게 지난달(16.9)이었다. 이는 취업 의사가 있는 잠재 구직자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취업을 희망하는 사람까지 포괄하는 체감실업률이 계속 악화한 여파로 분석된다.

추경호 의원은 “고용 상황의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환율과 유가 상승 등으로 국내 물가가 당분간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제고통지수와 서민경제고통지수는 올해도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어느 때보다 서민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만큼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과 소비자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성실하게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1일 ‘성실근로자 울리는 5대 요인’ 보고서에서 ▶주택가격 급등 ▶월급보다 오르는 생활물가 ▶소득보다 많은 세금 ▶ 실업급여 재정적자 확대 ▶ 국민연금 고갈을 근로자 부담 요소로 꼽았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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