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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ㆍ도밍고 키워낸 오페라 지휘의 아이콘…성추행 의혹에 어두운 말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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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141년 역사 중 47년을 예술감독, 음악감독으로 재임했던 고(故) 제임스 레바인 지휘자. [AP=연합뉴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141년 역사 중 47년을 예술감독, 음악감독으로 재임했던 고(故) 제임스 레바인 지휘자. [AP=연합뉴스]

“그는 반세기동안 말그대로 모든 오페라 가수와 함께 공연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가 17일(현지시간)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을 추모하며 적은 문장이다. 레바인은 이달 9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고 17일 이 사실이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사망 소식이 늦게 전해진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했다. 향년 77세.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별세

레바인은 미국 오페라의 전성기를 만들어내서 끌고 간 지휘자였다. 1971년부터 2018년까지 47년동안 메트의 음악감독과 예술감독으로 2500회 넘는 오페라 무대를 지휘했다. 18세기의 모차르트부터 20세기의 쇤베르크까지, 다양한 작품을 메트의 대표 작품으로 안착시켰다.

그는 경쟁자가 없는 오페라 지휘자였다. 만 두 살에 피아노 음악을 듣고 음정을 구별한 ‘영재’였던 그는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오페라의 드라마를 살려냈다.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러웠고, 색채는 조화로웠다. 1978년 뉴욕에서 데뷔한 테너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음악적 표현의 에너지를 레바인에게서 배운다”며 “그와 함께 노래할 때만큼 서정적이고, 슬프기까지 하는 적은 없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플라시도 도밍고가 “다른 곳에서 네 배, 다섯 배의 출연료를 제안해도 지미(레바인)과 함께 노래하는 무대를 선택한다”고 했던 말도 전했다.

레바인이 메트를 이끈 20세기 후반은 오페라와 성악가의 전성기였다. 파바로티를 비롯한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캐슬린 배틀과 같은 스타 소프라노가 무대를 장악했다. 레바인은 파바로티ㆍ도밍고ㆍ카레라스와 함께 1996년부터 ‘쓰리 테너’ 공연을 지휘하며 세계적 음악팬을 얻었다. 2000년엔 디즈니의 음악 애니메이션인 ‘판타지아 2000’에 미키 마우스와 함께 출연했다. 커다랗게 부풀린 곱슬머리에 동그란 체형으로 이전 세대 지휘자들의 권위적인 모습과 대비된 ‘오페라 지휘’의 아이콘이었다.

메트에서는 레퍼토리 제도를 안착시켜 오페라단의 대표적인 무대를 만들었으며, 공연 영상화 프로젝트인 ‘더 라이브 인(The Live in HD)’에 출연하면서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에도 함께 한 지휘자였다. 메트와 함께 보스턴 심포니(2004~2011년), 뮌헨 필하모닉(1999~2004년)에 동시 재임했을 때는 현존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촉해 연주하면서 현대적 악단의 상을 제시했다.

비교할 사람이 없던 그의 명성은 ‘미투’와 함께 추락했다. 2017년 12월 남성 4명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 하며 오래된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 1968년부터 10대였던 이들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으며 메트는 2018년 레바인을 해고했다.

한 시대를 이끈 오페라 지휘자의 부고에는 ‘성추행’이라는 내용이 함께 하게 됐다. 메트 오페라는 별세를 알리며 “메트와 이룬 성취는 부인할 수 없지만 성추행 의혹으로 결별했다”며 “외부 위원회가 3개월 조사한 결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발표했다. 레바인의 마지막 메트 무대는 2017년 12월 2일 베르디 레퀴엠 연주였다. 올해 1월엔 이탈리아 피렌체의 마지오 뮤지칼레 음악축제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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