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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댓글 파워 이 정도였어? 기업 넘어 정부도 움직인다

중앙일보

입력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 2'에 출연한 최호진 동아제약 대표. [유튜브 캡쳐]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 2'에 출연한 최호진 동아제약 대표. [유튜브 캡쳐]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 정부 부처의 대응을 끌어냈다. 이달 초 동아제약의 채용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적 질문이 있었다는 댓글이 알려지면서다.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현장 지도와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16일 ‘성차별 없는 채용 정착‧확산 추진’ 대책을 발표했다. 여가부는 올해부터 기업‧기관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성별 균형 인사관리 역량 강화 교육’을 세 차례 실시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고용부는 고용 과정에서의 성차별이 적발될 경우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 절차를 마련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차별 채용 피해자에 대한 구제 절차 마련은 여성단체 등에서 수년 전부터 도입 필요 목소리를 내왔던 정책이다.

유튜브 댓글 폭로전…"면접서 차별"

정부가 채용 성차별을 없애겠다고 대대적으로 나선 시작점은 유튜브 채널 ‘달라스튜디오’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지난 5일 ‘네고왕 2’에서는 장영란이 동아제약을 방문해 해당 회사의 생리대 제품 할인 협상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같은 날 이 영상엔 “지난해 동아제약 채용 과정에서 차별이 있었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어 면접 당사자인 A씨가 올린 면접 후기가 인터넷에서 공유됐다.

A씨는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면접에서 ‘군대 갈 생각이 있냐’는 등의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면접 후기를 통해 “여성은 절대 채용하지 않겠다는 인사팀(남성)의 굳은 의지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상엔 “3년 만난 남친(남자친구) 있으면 결혼 금방 하겠네.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둬서 안 되네 했던 곳이라 기억난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동아제약은 최호진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댓글로 게재했지만 A씨는 “사과문 같지 않은 사과문”이라고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을 냈다. 13일에는 고용부에 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미투' 양상, 줄 이은 "나도 당했다"

지난 5일부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엔 자신의 성차별 면접 경험을 공유하는 여성의 증언이 쏟아졌다. A씨를 시작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18년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미투’ 운동과 비슷하다.

A씨 폭로 이후 성차별 면접 경험을 공유한 B씨(27)는 중앙일보에 “2019년 한 중견기업 면접을 들어갔는데 구색 맞추기 위해 면접에 부른 것처럼 느껴졌다”며 “분하지만, 당시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성차별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모 대기업 공채 1차 면접 때 남자 넷이랑 나 하나 들어갔는데 나만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쓰기도 했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동아제약 본사 앞에서 성차별 면접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동아제약 본사 앞에서 성차별 면접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오랜 문제, 댓글에 물 위로 올라와"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문제가 쌓여왔기 때문에 유튜브 댓글 하나가 이만큼의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2017년에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원자를 대거 탈락시키며 성차별 채용 문제가 공론화됐고, 이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라며 “대다수 여성에게 성차별 채용의 경험과 분노가 쌓여온 상황에서 A씨의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에서 활동하는 이슬아 노무사는 “지금까지는 성차별 채용이 이슈화가 되지 않았거나 차별로 인식하지 못해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며 “동아제약 댓글을 시작으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유의미한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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