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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도 대출규모도 농사 목적 아냐"…농지법 위반 투기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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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주최로 열린 '농지 이용한 투기세력, 철저하게 수사 감사하라!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주최로 열린 '농지 이용한 투기세력, 철저하게 수사 감사하라!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이어 3기 신도시 예정지에서 LH 직원과 다수의 외지인이 농지법을 위반해 투기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년부터 지난달까지 3년간 시흥시 과림동에서 매매된 농지(전·답) 131건 중 투기 목적의 매입으로 추정되는 사례 37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의 조사에 따르면 농지 투기 의심 거래 중 18건이 농업이나 주말농장 용도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토지 매입대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로 충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기 목적의 농지 매입 추가 폭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농지 이용 투기세력의 철저한 수사·감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농지 이용 투기세력의 철저한 수사·감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농지법(제6조)에 따르면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이번 조사에선 이를 위반한 토지 매입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지난 2일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LH 직원을 비롯해 외국인과 사회초년생 등도 농지 투기 의심자에 포함돼 있다. 토지 소유자들은 주로 제2금융권인 북시흥농협과 부천축협에서 대출을 받아 농지를 매입했으며 18건 중 15건은 채권최고액이 거래금액의 80%를 넘었다.

강남 살며 “농사한다” 신도시 내 농지 매입

참여연대 등은 토지 등기부 등본에 기재된 농지소재지와 토지소유자의 주소를 토대로 농업활동이 어려운 경우로 추정되는 토지 거래 9건도 투기 의심 사례로 꼽았다. 토지소유자의 주소지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인 사람만 6명이었으며 경남 김해와 충남 서산도 있었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서울 송파구와 충남 서산에 사는 사람들이 몇 시간씩 걸려서 과림동으로 농사를 지으러 오겠느냐”며 “농지소유자의 주소지가 해당 토지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경우 농지법이 규정한 ‘자기의 농업경영’ 활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측이 농지 투기가 의심되는 토지에 대한 현장조사를 한 결과 농업과 다른 용도로 이용하거나 오랜 기간 방치한 사례도 있었다. 일부 농지는 철재를 취급하는 고물상이 들어서거나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막고 농지를 장기간 방치한 곳도 확인됐다. 이 외에도 이른바 ‘쪼개기 수법’으로 다수 공유자가 농지를 매입한 것도 농지법 위반 의심 사례로 봤다.

민변·참여연대, 농지법 위반 혐의 수사 촉구

김남근 변호사(민변 개혁입법특위 위원장)는 “비농업인의 농지 취득의 문을 대폭 열어주고 있는 현행 농지법이 농지의 보존과 관리를 매우 어렵게 하고 농지 투기와 농지 전용을 부추기고 있다”며 “헌법의 경자유전(耕者有田·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함) 원칙에 부합하게 농지소유와 임대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농지법 위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농지법이 허술하게 운용되도록 역할을 방기한 각 기초지자체와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중앙정부·광역지자체 등에 대해 공익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장조사 결과 농지법 위반 혐의가 높은 사례들에 대해서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수사촉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사저 부지로 농지 산 文 대통령에 불똥 튈까

文 대통령 사저 부지(경호처 포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文 대통령 사저 부지(경호처 포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농업 종사 사실과 의지를 허위로 꾸며서 농지를 매입하는 ‘농지법 위반’ 투기에 대해 시민단체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농지법 위반 여부와 형질 변경 등이 논란이 된 경남 양산시의 문재인 대통령 사저 부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문 대통령 관련 언급은 없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야당의 농지법 위반과 형질 변경 등에 대한 의혹 제기에 이례적으로 “좀스럽다”는 반박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퇴임 후 거주할 목적으로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일대의 토지를 매입했으나 야당은 이 중 1844㎡(약 558평)가 농지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정상적인 법 절차를 거쳐 토지 매입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 1월 해당 농지가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로 형질이 변경돼 특혜라는 지적이 나왔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농사를 짓겠다며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한 농지를 매입한 뒤 1년도 지나지 않아 땅의 사용 용도를 바꾼 것”이라며 “이게 바로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혐오하던 부동산 투기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박현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금융부동산팀장)는 중앙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기자회견은 현행 농지법상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농지 취득이 가능해 투기로 이어지는 현실을 지적하는 취지로 마련됐다”며 “청와대 해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농지를 취득했고 투기로 이어진 것은 아니기에 농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이번 기자회견과 해당 논란은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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