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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수사 막판 뒤집어"···김진욱, 이성윤 사건 檢 재이첩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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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연합뉴스

12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2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의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검찰로 되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지난 3일 수원지검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지 9일간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 김 처장은 “불필요한 공정성 논란을 야기하거나 수사 공백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공수처·검찰·경찰국수본 3가지 안 #9일 동안 재고 쟀던 '김진욱 스타일'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날 오전 공수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 사건을 검찰 수사팀에 다시 이첩하여 수사를 계속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재이첩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공수처가 자체 수사팀을 아직 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수처 검사·수사관 등 구성에 3~4주가 소요되는 상황에서 동시에 수사를 진행하려면 수사 공백이 불가피하고 공정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검사 범죄 공수처 직접수사가 최선이지만…”

김 처장은 “공수처 직접 수사, 검찰로의 재이첩,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이첩 등의 3가지 선택지 가운데 가급적 직접 수사를 택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검사 등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가 공수처의 설립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수처법 제25조 제2항은 ‘(공수처 검사 이외) 검사의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원지검이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에 연루된 이성윤 검사장과 이규원 검사를 공수처에 이첩한 것도 이 조항 때문이다.

김 처장은 이에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서는 게 가장 좋다”면서도 “그러나 수사 인력이 준비되지 않은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결심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1달 뒤 수사하면 뭉개기 논란…피하겠다”

물론 수사 인력 채용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사에 착수하는 방법도 있었다. 김 처장은 하지만 “그럴 경우 불필요한 공정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성윤 검사장을 봐주기 위해 사건을 뭉개고 있다는 논란을 원천적으로 피하겠다는 의미다. 김 처장은 “수사는 공정해야 하는 동시에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처장은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서 수사 인력을 파견받아 수사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특히 검사를 파견받아 수사하는 건 공수처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밖에 없었다고 김 처장은 밝혔다.

이성윤 검사장. 연합뉴스

이성윤 검사장. 연합뉴스

“경찰 이첩도 부적절”…이성윤 셀프 수사 위험

김 처장은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이첩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할 경우 이 검사장 등에 대한 강제 수사 시 영장 청구 과정에서 중앙지검이 검토를 맡을 수 있는데, 이때 중앙지검장인 이성윤 검사장이 관여할 위험이 있다는 점 등 때문이다.

또한 김 처장은 “이 사건이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불법 출금을 요청한 것으로 지목되는 피의자도 검사, 이 검사에 대한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람도 검사, 외압을 받았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검사”라고 하면서다.

“LH 사태 관련 경찰 수사력에 여론 의문도 고려”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의 내부 정보를 활용한 땅 투기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도 변수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번 결정을 놓고 초대 공수처장으로서 중립성과 독립성, 공정성, 이에 대한 외부 평가까지 두루 고려하는 특유의 ‘김진욱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처장 스스로 “전날(11일)까지 공수처가 직접 수사하는 안에 무게를 뒀지만 결국 막판에 뒤집었다”고 밝힌 대목이 대표적이다. 김 처장과 가까운 한 변호사는 “어떤 결정을 할 때 굉장히 신중한 김 처장의 성격이 이번에도 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수사하든 검찰 또는 경찰 국수본으로 보내든 어떤 경우에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김 처장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법조계 일각에선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해선 공수처가 전속 관할권을 갖는다”며 “이첩받은 사건을 재이첩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해석이 맞는다면 검찰이 사건을 기소하더라도 법적 절차상 하자 탓에 공소기각 판결이 날 수 있다. 피의자인 이성윤 검사장도 같은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김진욱 “검찰 수사 뒤 공수처가 기소 맡을 수도”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애초에 수원지검이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려 할 때 김 처장은 ‘현재 공수처는 수사인력이 없는 불완전한 공수처이기 때문에 공수처법상 사건을 이첩받을 수 있는 완전체로서의 공수처가 아니다’라며 반려했다면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수원지검. 중앙포토

수원지검. 중앙포토

김 처장은 “추후 수원지검으로 간 사건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여지를 열어 놓았다. 공수처법 제24조 제1항에 따르면 공정성 논란 등을 고려해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 이럴 경우 공수처와 검찰 사이에서 사건이 3번 오간 셈이 돼 ‘핑퐁’ 논란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김 처장은 “검찰이 수사한 이후 기소는 공수처가 맡을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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